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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2.2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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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2월 22일 화요일




누가복음 5장 27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것과 낡은 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 옷의 조각을 떼어 헌 옷에 붙이는 사람이 없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넣는 사람도 없다. 서로 어울리지가 않고 또 둘 다 망가뜨릴 뿐이다. 이런 말씀을 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옛 것을 더 좋아하고 옛 것을 옳다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새로 담근 술보다 오래된 술이 더 좋은 것처럼 옛 것, 그러니까 자기에게 익숙해져 있고 이미 옳다고 받아들은 것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정말 강하지요. 그래서 이것을 깨뜨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새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이 더 좋은 것이거나 옳은 것일 때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적으로는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신앙이란 항상 진리 위에만 흔들림 없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장부터 7장까지를 보면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새 것’이 소개되고 있고, 그 새 것이 그저 옛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옛 것이 옳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드는 것인지 그 실제적인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새 것’을 ‘새 것’으로 알아보고 받아들여서 그 ‘새 것’이 주는 엄청난 유익을 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이런 사람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그런 복을 받은 사람은 바로 7장에 등장하는 ‘어떤 백부장’이라고 소개된 사람입니다. 중간에 보면 이 사람은 벌써 새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이고 백부장이었지만 회당을 지어 주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사람이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그 콧대높은 유대인들에게조차도 존경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결국 예수님마저 놀라게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서 보인 모습은 그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었으며,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향해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지요. 물론 백부장은 죽을 병에 걸린 자기 백부장이 자기 믿음대로 고쳐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두번째 ‘새 것’이 주는 복을 얻은 사람은 바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계실 때, 그 곳에 찾아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던 ‘죄를 지은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인은 시몬의 집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편견으로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도 본 척 만 척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로 다가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일로 예수님도 비난하고 여인도 비난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지요. 그 여인은 이미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통해 받은 죄 용서의 은혜의 기쁨과 감사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그 행동은 바로 그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그 여인에게 죄 용서와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백부장과 죄 지은 여인.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은 옛 것에 붙들려 있지 않았으며 기꺼이 새 것이 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백부장입네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그 였지만 그저 예수님 앞에서는 한 없이 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이리 저리 오고 가라고 할 처지가 못 된다면서 예수님이시라면 그저 말씀만으로 자신의 하인을 고쳐 줄 수 있을 테니 그렇게 해 달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말대로 그저 말씀 한 마디로 그의 하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인은 남들 앞에 나설 처지가 아니었지만 그저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모든 비난과 부끄러움을 무릅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다 귀한 향유 한 병을 모두 가져다 부었습니다. 그래서는 그 여인은 자신이 죄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듣는 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더 이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죄인이 아니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 특히 그들 중에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신 소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옛 기준으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세례 요한이 와서 금식을 했더니 그들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부치더니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고서는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예수님을 비난한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스스로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로 옛 것을 고집하느라고 예수님을 소개하러온 세례 요한도, 그리고 그 세례 요한이 오심을 선포했던 메시야 예수님도 모두 배척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제가 오늘 말씀드린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마음과 생각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더욱 더 굳어져서 그저 익숙해져 있는 것에만 붙들려 있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더욱 더 그 마음이 새로워지고 또 열린 상태가 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둘 중에서 어디에 속해 있는지 스스로를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항상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한 없이 새로운 분이십니다. 항상 새롭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굳어져 있으면, 그렇게 굳어져 있는 상태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항상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믿는 것이 다고, 지금 내가 누리는 은혜가 다 겠거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다 겠거니, 예수 믿는 것이 뭐 새로울 것이 있나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는 점점 더 굳어져 갈 수 밖에 없고, 새롭게 부어 주시는 은혜와 진리는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과 율법사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많이 알고 있고 많이 누리고 있지만 마음이 굳어져 있고 생각이 굳어져 있는 그런 상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굳어지지 않도록, 그저 옛 것만 고집하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부드럽고 은혜와 진리를 향해 활짝 열려진 그런 상태로 남아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고 지키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진리는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할 것이고, 또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서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