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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2.2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12-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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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예수님 덕분에 이 세상에는 이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그런 뜻인데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했고,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이제까지 살아가던 삶으로부터 돌이켜 회개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이런 배경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래서 회개하면 안되기 때문에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 성도의 삶과 신앙을 위해서 주신 말씀들은 모두가 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진짜로 이 세상에 들어왔다면, 또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말씀들로 들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12장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회개한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들입니다. 


무리 수만명이 모여서 서로 밟을 지경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룩이 외식, 그러니까 위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위선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 때문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평가 때문에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그 사람의 중심이나 내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주님이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은 바로 몸을 죽이고 더 이상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도 죽이고 영혼도 영원히 지옥에 던져 넣을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위선과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은 똑같은 감정입니다. 위선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판을 중시하는 태도 같지만 실은 그 평판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이고, 반대로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인정하면 주님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혹시 힘있는 사람들이 잡아갈 때, 먼저 무엇을 말할까 궁리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말씀도 결국 사람들을 두려워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사람들, 그러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두려워서 하게 되는 선택이니까요. 만약 주님을 더 두려워 한다면 그 사람은 사람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거짓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대답할까 궁리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궁리에서 나온 말은 주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거스르는 말이 되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수만명이 모여 서로 밟고 밟힐 지경이 된 군중들 앞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다는 것이 참 의미심장하지 않으십니까? 주님은 아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크게 두려워 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에 대해서, 반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은 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오는 부자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부르지만 실은 이 어리석음은 우리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입니다. 돈을 믿고 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 그러니까 맘몬은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적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능력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을 두려워 하거나 반대로 돈을 믿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가 없습니다. 경제적인 삶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은 돈에 대한 자랑과 신뢰의 정반대편에 있는 돈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주님은 돈이 자랑이나 신뢰,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도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할 때, 구체적으로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 사용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섬김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쌓이는 우리 보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시는 깨어있음에 대한 교훈은 이 모든 말씀들을 하나로 묶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 돈을 무서워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하나님만 두려워 하며, 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우리의 영광을 위한 투자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주님이 알 수 없는 때에 갑작스럽게, 반드시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마지막 재판관 되시는 우리 주님 앞에 서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서, 항상 우리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만 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그래서 또 두려워하고 있기도 한 그런 것들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로 사랑해야 하고 또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이시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보장해 주며, 반대로 우리를 지옥에 영원히 던져 넣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한 번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며 여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쓸 때, 우리는 주님 원하시는 회개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또한 거리낌 없고 담대하게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 다시 오심을 믿고 소망하며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말하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참 성도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