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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2.3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18-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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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누가복음 18장과 19장에는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해서 하신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기도하는 한 미망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와 올수록 사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증거들이 뚜렷해 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 세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왕들이 다스리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증거들이 더 많아지고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정의와 진리가 승리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마치 대답 없는 부름처럼 그 응답이 더디기만 하지요. 그래서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을 약해지게 만드는 그런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키는 일이며, 그 믿음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그 하나님이 적어도 불의한 재판관 보다는 선한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끈질기게 기도했던 그 미망인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정의가 바로 서게 해 달라고,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온 세상을 놓고서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자리 자리를 놓고서도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마 무언가 바르게, 그리고 정직하게 해 보려고 애써 본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는 중에 얼마나 쉽게 자기 의에 빠지게 되는지 말입니다. 또 그런 자신과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그 사람들을 무시하기 쉬운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기도하는 삶을 살면서도 절대로 그것을 자신을 높이는 수단과 이유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저 예수님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 그저 주님 앞에서 기뻐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때 어린아이들처럼 생각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신 것만 기뻐합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아얘 자신이 무언가를 행해서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과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연결시킬 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그저 어린아이처럼 기뻐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의 길을 물었던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면, 애초에 우리는 아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또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것은 100퍼센트 은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중요한 것들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그 나라에서 영원한 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마치 맹인의 눈이 다시 열리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해 활짝 열려져야 합니다. 


삭게오는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보는 눈이 다시 그리고 활짝 열려진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자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주고, 만약 자기가 다른 이들에게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하나님 나라로 받아들여진 기쁨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삭게오가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청년과 어떻게 다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의 길을 찾다가 찾았지만 자기 재산 때문에 그 길 앞에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삭게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지도 않으셨는데, 마치 자신이 부자청년 이듯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 그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기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이 띄여지고 그의 눈에 하나님 나라가 밝히 보이게 되자 더 이상 다른 것은 그의 보물이 될 수 없었고, 그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는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알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마땅히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일단 주인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에게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 살아가면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이 땅이 전부인 듯이 살아가는 그런 삶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실제의 삶 속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은 결국 이 세상에서 결론을 내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쌓아놓아야만 하는데, 이런 삶은 우리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과는 정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꾸짖으신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재산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교회를 장사하는 곳처럼 운영하고 이용하려고 드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가 이렇고 장로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비록 그들이 그런 직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없고 그래서 땅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오셔서 그 간의 모든 일들을 청산하시고 상 주실 사람에게는 상 주시고 벌 주실 사람에게는 벌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만이 성도들의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빨리 눈을 열어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삭게오처럼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가장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나 혹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일이 불편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두 가지를 확신하며 그것을 붙들고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하늘을 보는 눈이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사는 우리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눈이 활짝 열리는 복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