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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1.06. 신년특별기도회 - 조금 빌리지 말고



20160106NYP (#1).mp3.zip






본문 : 열왕기하 4장 1-7절





기도는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나 자신으로 충분한데 그저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언제나 우리의 ‘없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그 없음을 하나님의 있음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없음’이나 ‘부족함’은 그 자체로 진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그 없음과 부족함을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으로, 부르짖음 들어있는 기도로 바꿔내면 됩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이 땅의 부족함과 불완전함들을 채우시고 고쳐 주실 것입니다. 이 원리는 개인이든 교회든 어디든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우리 개인의 부족함을 위해서는 많이 기도합니다. 자주 부르짖지요. 그렇지만 교회의 부족함이 있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일은 자꾸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또 현실적인 해결책만 찾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우리의 최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없음을 있음으로, 부족함을 충만함으로 바꿔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족함이 보이시거든 최선을 다해서 헌신해 주시고, 또 최선을 다해 부르짖어 주십시오. 그 부족함 때문에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마시고 그 ‘없음’을 ‘부르짖음’의 이유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 삶도, 우리 교회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채워주심으로 있고 또 충만해 질 것입니다. 


‘무엇이 있느냐?’는 엘리사의 질문에 여인은 ‘한 그릇의 기름 밖에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빨리 밖에 나가서 그릇을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조금 빌리지 말고 빌릴 수 있는대로 많이 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서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큰 그릇도 별로 없을 것이고 작은 그릇들조차 변변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엘리사는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인은 아들과 함께 나가서 이웃들에게서 빌릴 수 있는 그릇을 모두 빌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그릇에 기름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습니다. 그 작은 기름 그릇에서 나온 기름이 빌어온 그릇들을 모두 채우고서야 멈췄습니다. 그릇이 더 없느냐고 묻는 여인의 질문에 그 아들이 다른 그릇이 없다고 했을 때, 바로 그 때 흘러내리던 기름이 딱 멈춰섰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없고 부족한 상태로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은 움츠러들게 마련입니다. 자기 바깥을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지요. 그래서, 내게 있는 것, 내가 가진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부족함에 묶여 버리기가 참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은혜 없이 사는 사람들, 부족한 은혜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은혜가 전부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은혜 이상의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없이 산 세월이 오래되었을수록 그 사람에게는 영적인 갈급함이 없습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기름 한 그릇 밖에 없다’고만 생각하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사는 처음부터 여인에게 이웃에서 그릇을 빌려와서 그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면 기름이 언제까지 나올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될 수 있는대로 가능한 한 많은 그릇을 빌려 오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기름을 붓자 부어도 부어도 끝이 나질 않았습니다. 정말 무한정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름은 빌려온 마지막 그릇을 다 채우자 딱 멈췄습니다. 만약 애초부터 엘리사가 이런 정보를 알려 주었다면 여인과 아들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이웃 뿐만 아니라 더 먼 동네에 가서라도 그릇을 빌려 왔을 것입니다. 빚을 더 내어서라도 그릇 만드는 사람에게 특별주문을 해서 어마 어마하게 큰 그릇을 준비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테니까요. 


엘리사가 그것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다른 그릇이 없다고 말했을 때, 기름이 그친 것을 보면 기름은 원래 그릇이 다 채워지지 않는 한, 무한정 흘러나오게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아는 은혜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자기가 아는 은혜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을 기대하거나 소망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볼 때 커다란 비극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 여인이 자기 집에 있는 작은 그릇과 그 그릇 속에 있는 적은 양의 기름이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그것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인이 끝까지 거기 묶여 있었다면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 기름 한 그릇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기껏해야 자기 집에 있는 변변치 못한 그릇들 몇개를 채울만큼의 기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든지, 그리고 우리가 누려본 은혜가 얼마나 크든지 간에 우리가 그것에만 묶여 있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 그런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집 바깥으로 나가기를 바라십니다. 집 바깥으로 나가서 될 수 있는 한 큰 그릇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빌려 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준비한 그릇의 용량만큼 은혜의 기름을 무한정 채워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그릇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에 가득 채워진 그 기름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수 있는 기름의 전부라고, 내가 알고 누리고 있는 은혜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수 있는 은혜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나가서 그릇을 빌려와야 합니다. 될 수 있는대로 큰 그릇을, 그리고 많이 빌려와야 합니다. 그럴만큼의 열심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그릇들을 빌릴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우리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저절로 붙이게 되는 믿음의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이 그런 위대함을 지니게 되었던 것은 그만큼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커다란 일들을 감당해 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성경에 믿음에 대한 많은 설명들만 기록해 두시지 않고,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넣어 놓으신 것은, 비유적으로 말씀드리면 바로 우리가 그들에게서 그들의 ‘큰 그릇’을 빌리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들이 준비한 그릇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셨을 때, 과연 그들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누렸는지 그것을 실제로 보고 알게 해서, 우리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런 큰 그릇을 준비하려는 소원과 열정을 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신앙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할 때, 그들이 한 일에 놀랄 때가 많지만, 실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어주신 은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은혜의 크기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그릇의 크기였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스데반은 기독교 역사 속의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 공개처형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는 성경의 증거를 대할 때마다 ‘와! 스데반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저런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하다. 정말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와, 정말 하나님의 은혜는 대단하네. 그 능력이 엄청나네. 스데반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이었으면저런 고통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저만큼의 은혜를 받고 싶다. 저렇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내 속에 담고 싶다. 그래서 나도 저런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리고 싶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이 우리 생각에는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그저 ‘작은 그릇에 담긴 기름’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그 만큼의 기름도 가치가 있고 쓸모가 있지만, 우리는 그만큼의 기름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성경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에게서 그들의 큰 그릇을 빌려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지금 나에게 있는 이 ‘한 그릇’의 기름을 더 많고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게 하는 마중물로 삼아 그 모든 그릇들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이런 열심, 이런 열정이 우리에게 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준비한 모든 그릇들을 은혜로 가득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만큼의 하나님의 은혜, 그렇게 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오히려 속상해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는 모든 빚을 갚고 생활의 필요까지 넉넉하게 채워줄 수 있는 만큼의 기름을 받을 수 있는데, 그저 작은 기름병의 기름을 보면서 만족하고 있는 자녀를 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시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은혜도 무한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혜를 담을 더 큰 그릇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합니다. 남에게 빌려 올 수 있다면 빌려와서라도 될 수 있는대로 많이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릇들을 채워달라고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준비된 우리의 그릇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으로 가득 가득 채워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 은혜의 힘과 능력으로 올 한 해를 너끈히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밖으로 나가 큰 그릇을 많이 빌려와서 그릇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이렇게 기도하겠습니다. 


“올해는 내가 아는 은혜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소서. 밖으로 나가 더 큰 그릇을 많이 빌려오게 하소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열정과 열심을 주소서. 그래서 그 그릇들을 가득 가득 채우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크고 넓은 삶을 살게 하소서. 이른 큰 은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