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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1.08. 신년특별 기도회 -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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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예레미야 33장 1-3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 모두가 다 ‘평안하다, 다 잘 될 것이다’라고 외칠 때, 혼자서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이 임할 것이다’라고 정직하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다 이런 정직한 메세지에 귀를 기울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저 하루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지금 당장 부족함도 없고 근심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이야 어떻든지 간에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메세지를 싫어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왕과 귀족들, 그리고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레미야의 메세지가 껄끄러웠습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시위대의 뜰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선하게 대해주시고 평안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물론 의롭게 사는 삶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것, 그리고 손해와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대는 떨쳐 버리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막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혼란에 빠집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것인가?’라는 불평과 회의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아마 예레미야의 마음 속에서도 그런 불평과 회의가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예레미야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예레미야는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일을 만드시고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레미야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것부터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을 당하거나 또 그것 때문에 찾아오는 영적인 침체 속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잊게 되기 쉽습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만, 그리고 자신이 당한 일에만 붙잡히기 쉽습니다. 저는 그 당시 예레미야도 어느 정도는 그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이미 예레미야가 다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다시 들려 주셨겠지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일을 행하시는 분, 그러니까 일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다시 붙들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믿음, 혼란스러움 속에서 회복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어려움과 혼란스러운 일들까지도 주관하시고 섭리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며,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도 이 세상과 나를 향한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 믿음, 하나님에 대한 이 확신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셨던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믿으면 됩니다. 그려면 우리는 그 혼란과 어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과연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올까요? 무려 5321번이나 나온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이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원하신다는 뜻이고, 또 우리가 기억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원래 이름이란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을 구별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과 다른 존재들을 확실하게 구분지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있을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스스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생각하고 그런 분으로 믿으라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를 때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면서 불러야 할까요? ‘여호와’라는 이름은 대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려주는 이름일까요? 원래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와’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요. 이 ‘하와’라는 동사는 ‘있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무엇보다도 ‘있는 분’으로 ‘계시는 분’으로 인식하며 믿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정하시고, 예레미야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 이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저 계실 뿐 아니라 언제나 항상 변함 없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미래에도 변함이 없으실,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런 분이십니다. 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항상 다시 기억하고 믿어야 할 우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항상 변함 없이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셔야만 모든 일의 처음과 나중을 다 보시고 아실 수 있고 또 주관하시고 섭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을 만드시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까? 주관하시고 섭리해 가시는 분이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지요?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여호와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또 우리 하나님을 이 이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또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며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먼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아무리 먼 미래에도 변함 없이 계실 것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과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여러분, 이 말씀 좋아하시지요? 정말 많은 성도들이 그럴 것 같은데요. 아마도 구절 중에서 ‘크고 은밀한 일’이라는 말이 매력적이어서 더 그럴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문제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그 답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처럼 혼란에 빠졌을 때, 그 때는 우리 속에서 답을 찾으면 안되고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서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어도 하나님께서 답해 주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항상 동일하게 계시면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 모든 일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응답하겠고…”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런 은혜로운 약속을 들어도 우리는 별로 놀라거나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으신 적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응답’이 무엇이지요? 응답은 ‘반응’이고 또 ‘대답’입니다. 그게 ‘응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자꾸 ‘내가 구하는 바로 그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그리고 기도를 해 놓고 내가 구한 바로 그것이 오나 안 오나 그것만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뭘 놓치게 되지요? 하나님의 ‘반응’을 놓치게 되고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답’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답’을 주신 경우에도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가 바라는 것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답’을 기대하고 또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응답’되지 않는 기도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르면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 다음에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답’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십니다. 그렇다면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일까요? 도대체 무엇보다 크다는 뜻이고 왜 은밀하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하나님에게서 대답을 찾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자기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 자기가 이해하는 자기 자신의 인생의 문제로부터 출발합니다. 거기서부터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탄식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화도 내면서 기도를 시작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문제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다보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을 보여 주십니다. 더 큰 게 뭘까요? 뭐보다 크다는 뜻일까요? 내 문제에 묶여 있는 나보다, 그리고 그 문제보다 크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나보다 크고 내 문제보다 클까요?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찾는 기도자는 기도 중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도하기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감추어진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크고 은밀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주는 것입니다. 


성도 이것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찾는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진짜 유익입니다. 비록 문제는 그대로 있어도,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해도 이렇게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는 것, 나아가서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말입니다. 흔히들 기도가 인생을 바꾼다고 말하는데요. 기도가 진짜로 인생을 바꾸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는 기도는, 그 기도를 드린 사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며 나아가서 자신과 이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하니까요. 그렇게 자기 자신이나 눈에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서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짜를 보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는 기도는 그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존재와 삶을 온전하게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삶에 필요한 것이 있거든 그것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붙들고 일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것에만 묶여있지 마시고 더욱 더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보다도 더 큰 답, 우리 자신보다도 더 큰 답을 주실 것이며, 그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이런 ‘응답’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여호와라 부르며 하나님께 많이 부르짖는 한 해, 그래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것들을 더 많이 보는 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여호와라 믿고 부르게 하소서. 언제나 계시고 동일하시며 일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를 부르며 기도하게 하소서. 또 기도드릴 때,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참된 눈을 허락해 주소서. 이런 기도 속에서 아름답게 변해 가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