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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1.2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9-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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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월 22일 금요일




사람들은 대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겉으로 드러난 그 문제 자체만을 생각하고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때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그저 미봉책에 불과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놓으면 다음에 똑같은 문제가 또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런 일을 막으려면 그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가 일어나게 한 근원이 무엇인지를 따져서 그 근원을 손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문제는 죄의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만 그 때 뿐입니다. 당장은 조금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는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또 제 자리입니다. 또 다시 하나님 앞에서 온갖 죄를 저지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만 골라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또 다시 징계하시지만 똑같은 일이 다시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징계를 받은 후에는 죄와 싸웠을 것입니다. 한 동안은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았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서서히 다시 죄를 끌어들이기 시작하고 또 죄를 짓는 자리로 가까이 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 것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만으로는 죄를 짓는 일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도는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꼭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멀어지십니다. 은혜도 잃어버리고 성도의 기쁨과 소망, 능력도 잃어버립니다. 성도의 복된 삶을 지켜 나가는 일이 불가능해 집니다. 그런데, 죄를 멀리하는 삶은 단순히 하나 하나의 죄와 싸우는 일로만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래서 죄를 멀리하려면 죄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 근본을 다루어 내야 합니다. 


9장 23절을 보면 무엇이 죄의 근본인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여기 죄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죄는 자랑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랑할 것들을 하나 둘 쌓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것, 그렇게 자신의 높음을 증명해 내고, 그렇게 자기를 높이는 일을 통해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겉으로 드러나는 죄는 이렇게 자랑거리를 더 많이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나 자신이나 나에게 덧붙여지는 것들을 자랑하려는 그 자랑에서 벗어나는 길 밖에 없습니다. 24절은 그 방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모든 죄의 근본이 되는 자기 자랑을 끊어내는 방법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랑거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와 자신에게 덧붙여지는 것들에 대한 자랑을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랑으로 바꿔내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교만이 만들어 내는 죄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삼게 되는 것, 자신이 아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게 되는 변화는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26절에 나와 있는데요. 바로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려면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에 내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지울 수 없는 표시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마음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서 10장에 이르는 동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문제를 계속해서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이 마음을 다루어 내는 일이 되지 않으면, 신앙이 마음을 바꿔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자기를 자랑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일을 더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고, 그 일을 자신을 자랑하는 일보다 더 기뻐하게 되는 일을 굉장히 특별하고 고차원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바꾸어 내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나를 자랑하고 나를 알고 있다는 것, 나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워 ‘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이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실은 참 성도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랑을 내려놓는 것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본성이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일의 짜릿한 만족감을 포기하기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자랑을 끊어내면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죄도 끊어집니다. 그 동안 그렇게 우리에게 양심의 가책을 주었고, 우리를 얽매었던 죄들, 그리고 우리에게서 구원의 확신과 은혜를 빼앗아 가고, 좌절감을 안겨 주었던 그 죄를 끊어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자기 자랑을 내려놓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라고 한다면, 그런 자기 자랑쯤은 기쁘게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도의 신앙생활은 방향은 분명해야 합니다. 성도는 정말로 하나님과 자신이 그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신앙의 우선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을 소망하며 그 곳을 향해 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여전히 내 안에 나를 자랑하고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려는 그런 마음은 없는지 살피면서 그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주님께 마음의 할례를 허락해 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또 그것을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이 가장 자랑스러워지고 그래서 더 이상 자기를 자랑하게 만드는 유혹에 지지 않는 그런 복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할례를 허락하셔서 이 복되고 행복하며 능력있는 마음을 지닌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