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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01. 새벽기도회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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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1일 월요일




우리는 오늘 21장 첫구절부터 참 불쾌한 내용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이 원래 간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간사할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바스훌입니다. 20장을 보면 바스훌은 예레미야가 바른 예언을 했다고 해서 자기의 권력으로 예레미야를 붙잡아서 때리고 나무 고랑을 목에 씌우고 성전의 베냐민 문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쳐들어 오니까 시드기야 왕의 부탁으로 예레미야를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면 혹시나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자신들을 도와주실지도 모른다고 말이지요. 시드기야 왕도 우습지요. 그 때, 성전에서 예레미야가 그 수모와 고난을 당할 때는 나몰라라 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니까 예레미야를 욕보인 당사자를 보내 그런 도움을 청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가볍고 간사한지 정말 신물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찌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정말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불편하게 하시면, 그 때는 하나님을 귀찮게 여기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또 자기가 아쉬워지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도움을 구합니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왕이었고, 바스훌은 제사장 중에서도 성전의 최고 관리자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쉬울 때만 잠깐씩 찾아 도움을 구하는 그런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 오자 예레미야를 찾아 기도를 부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아도 우리의 요청을 들어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문제는 이런 방법이 항상 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바스훌을 통해 예레미야에게 그런 부탁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들이리라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성에 있는 것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 동안은 그런 식으로 어려움을 모면해 왔습니다.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식으로, 그리고 귀찮고 불편해 질 때면 하나님을 모르는 척 하는 식으로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정말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방법이 없는 상황인데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도와주시지 않는 것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직접 유다백성들과 시드기야 왕을 치시겠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것은 심지어는 짐승까지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야 말로 큰 일이 난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살 길은 열어 주셨습니다. 만약 느부갓네살 왕에게 항복한다면 포로로 잡혀가기는 하겠지만 목숨은 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 수 있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카멜레온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 태도와 모습을 바꾸면서도 충분히 편안하게 하나님의 도움만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는 신실하지 않은 우리를 그냥 봐 주시고 또 언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내 편을 들어 주시다가 갑자기 “나는 내 대적이라”라고 말씀하시며 도움의 손길을 거두어 가실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지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꾸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을 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변함 없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완전히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행할 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필요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말이지요. 


성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답게 믿어야 합니다. 변함 없고 우직하게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하며 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태도와 모습을 바꾸지 말고 말이지요. 그게 가장 지혜롭고, 안전하고, 은혜롭게 하나님을 신앙하는 방법입니다. 항상 이 지혜로운 길, 안전하고 은혜로운 길로 다니며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시고, 정말로 도움이 필요할 때 내 편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