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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0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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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2일 화요일





예언서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 꾸짖고 질책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예언서들의 대부분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은 너무나 표현이 강하고 거칠어서 읽는 사람이 불편하고 거북해 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언서들이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른 길에서 심각하게 탈선했을 때 그 탈선을 바로 잡거나 혹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 당하게 될 징계와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예언서들이 그런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참 성도들, 그래도 아직은 그 영혼의 감각이 완전히 둔해진 성도들이 아니라면 예언서들을 읽을 때,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잠잠히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렇지 않은데, 나에게는 이런 죄가 없는데 내가 왜 이런 말씀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교회,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을 생각하면서 그 옛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아프고 거친 말씀들이 혹시 오늘날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없을지라도 속해 있는 지역교회나 혹은 이 땅 위의 교회들이 그런 죄를 짓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언서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불같은 분노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떠나 빨리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설득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서들이 정말로 강한 어조로, 그리고 가장 신랄하게 꾸짖는 것은 일반백성들의 죄가 아니라 왕들이나 타락한 제사장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레미야 23자와 24장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죄에 대해서 엄중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를 하기 위해서 본문을 찬찬히 읽어 나갈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무겁고 불편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오늘날로 치면 저와 같은 목사와 설교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선지자들이나 예언자들은 아닙니다. 그 분들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말씀 그대로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그런 분들이지만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결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은 그저 이미 기록되어 있는 성경말씀을 들고 강단에 서서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 해야 하는 일 자체는 성격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역할은 심각한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평안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평안하지 않다고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낙심과 절망가운데 있을 때는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에 대한 희망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평안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서 평안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임무가 됩니다. 오늘날의 설교자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같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나 성도들 중에서는 목회자의 설교자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언제나 위로와 격려가 되는 그런 메시지만 전해야 하는 사람이 설교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편합니다. 다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 일을 잘 하는 설교자를 좋은 설교자로 생각하고, 설교자 자신도 그 일만을 잘 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런 풍토가 오랫동안 계속된 결과 이제는 바른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려는 성도들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목회자들도 굳이 그 역할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방송을 틀어보면 위로와 격려의 메세지는 넘쳐나지만 교회와 성도들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기 위한 쓴 말을 하는 메세지들은 좀처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제 자리를 지킬 수가 없고, 언제나 어긋나가기가 더 쉬운 존재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일들이 계속될 때 결국 ‘죄’의 문제는 전혀 다를 수가 없어지고 그래서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는 성도들과 교회들이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엄청난 부작용을 만들어 냅니다. 


원래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이 탈선하게 되는 것은 목회자들과 성도들 모두의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아무래도 성도들이 아니라 목회자들, 정확하게는 설교자들에게 있습니다. 원래 설교자들의 임무는 사람이 기뻐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구실을 가져다 대도 양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3장 14절을 보면 그런 선지자들, 그리고 목회자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이 다 내 앞에서 소돔고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이랬습니다.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아도 그저 괜찮다, 잘 한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신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악을 행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악을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스스로 죄에서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진노와 징벌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선지자들도 그들의 거짓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던 백성들도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사가 쓴 소리 하지 않으면서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성도가 불편한 소리를 듣지 않고서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은 항상 바르기 보다는 그릇되기가 쉽고, 바른 길 보다는 그렇지 않은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인데,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돕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중요한 소명이요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그 목회자 뿐 아니라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함께 망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로서 모두 자신이 짊어 져야할 불편한 짐을 묵묵히 잘 지고 가는 그런 목사와 그런 성도의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불편함 때문에 더 평안해 지고 더 은혜로워지고 하나님 앞에 더 영광스러워 지는 그런 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