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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26-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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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4일 목요일





오늘 함께 읽은 예레미야 26장과 27장은 하나님께서 똑같은 시대, 똑같은 왕의 다스림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똑같은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말씀을 주신 상황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장 모두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두 예언이 주어진 시기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지만 두 예언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더 주시지 않으시고 26장에서 27장으로 넘어가면서 확정된 징계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의 메세지를 전하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성전의 멸망을 선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유다 백성들이 그 메세지에 충격을 받고 회개하고 제 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되는 유다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에 이제는 성전을 실로같이 폐허로 만들어 버리실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 말씀 그대로를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메세지를 잘 듣고 있던 그들은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셨다는 내용에 이르자, 정말 노발대발하면서 예레미야를 잡아 죽여야 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런 이야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발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이 때 유다의 고관들은 이 일을 아주 신중하게 처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나는 이미 너희들 손에 있으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나를 해친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물으실 것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일을 아주 상식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이야기 속에서 예레미야의 진정성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정말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니 예레미야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레미야는 그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서도 해꼬지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그 뿐이었습니다. 거기서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한 것은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였는데, 비록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를 해치지 않은 것은 참 잘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위험으로 몰아넣으시면서까지 얻어내려고 하셨던 반응을 내놓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27장에서 다시 하나님의 뜻을 들려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을 향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징계의 뜻을 전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참 안타깝지요? 유다백성들은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그 한 걸음을 떼놓지 못해서 결국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가야했으니 말입니다. 


제가 보니 신앙은 항상 한 걸음 차이입니다. 정말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되는데,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오면 되는데, 그 한 걸음을 더 내딛지 못해서 항상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정말 풍성한 은혜와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동안의 몸과 영혼에 붙은 타성과 습관을 떠나지 못해서 항상 불만족스럽게, 기쁨도 은혜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만약 이런 모습이 떠나야 할 죄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복되어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그 한 걸음을 더 내딛지 못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는 곳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 멈추면 거기까지 가야 얻을 수 있는 은혜는 나와 상관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적당히 하는 사람들이 잘 하는 것같지만 신앙인에게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는 지점까지 가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진짜 복과 은혜가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한 채로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27장에도 은혜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누군가가 아무리 유다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다고 해도 그 말은 절대로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취소될 수 없는 일이니 괜시리 바벨론에게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무시무시한 징계를 경고하셨지만 정작 진짜로 유다백성들에게 벌을 주실 때가 되자, 그 징계를 최소화시키시고, 완전히 낙심하지 않도록, 일단 잡혀가기는 하겠지만 징계의 기간이 끝나면 분명히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고 벌 주실 때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징계하시거나 어려움을 주시면 더 이상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서 말이지요. 그러나,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서 우리에게 징계를 주실 때, 하나님은 그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최대한 많이 배려해 주십니다. 연약한 우리가 완전히 낙심하고 믿음을 잃어버릴까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의 선포 뒤에는 언제나 회복의 약속이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징계 조차도 최대한 연기되고 또 감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을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향한 깊은 배려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 진하게 들어있는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 않도록 평소에 하나님의 나를 향한 마음을 헤아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에게는 평강의 이유가 될 것이고 하나님께는 계속해서 우리를 부드럽게 사랑하시며 우리가 원하는 모양의 은혜를 베풀게 해 드릴 수 있는 이유가 될테니까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사는 우리들로서 언제나 변함 없이 평안가운데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