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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05.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28-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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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5일 금요일





예언서들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너희가 이런 징계를 받고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은 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이다.’, ‘그렇지만 너희가 그 자리에서 내 말을 듣고 돌이키면 다 용서해 주고 또 고쳐주겠다. 다시 복되게 해 주겠다.’ 예언서의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예언서들은 바로 그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정말 지루할 정도로 그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고난 가운에 있을 때, 그들이 붙들어야 하는 것도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지키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들이니 결국 예언서는 그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더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계를 경고하시고 돌아올 것을 명하시고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는 아주 커다란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장애물은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귀’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어서 잘 알듯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그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어딘가 불안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잘못을 알려주고 돌아올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고마워하고 돌이켜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런 소리를 굉장히 귀찮아 하고 심지어는 그런 말을 전해주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거부합니다. 사실 이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고, 예언자들은 전혀 어려움 없이 자기의 소명을 다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언서들을 보면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고 또 그 말씀을 전해주는 예언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사람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여기고 그 말씀 듣기를 좋아하는 정도는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있는 거리와 반비례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싫어하게 됩니다. 불쾌해하고 화를 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거리가 가깝고 관계가 좋으면 그만큼 더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들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아프고 힘든 말씀도 달게 듣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원래 말씀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데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덜 필요한 사람들이 말씀을 더 사모하고 달게 여기니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에 대한 우리 자신의 태도를 기준으로 해서 어느 정도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설교가 잘 들리지 않거나 하나님 말씀을 읽기가 싫어질 때 그 때는 우리의 영혼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그 때야 말로 정말로 하나님 말씀이 더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을 때, 극복해야 했던 두번째 장애물은 바로 거짓 선지자라는 장애물입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아니 더 좋지 않은 상황에 있을수록 더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거짓 선지자들의 메세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만큼 더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만드는 더 치명적으로 어려운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해서 그냥 가짜인 것이 분명하게 그렇게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그러니 외견상으로는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듣기에는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더 매력있으니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이야기에 더 쉽게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해서 다 사람들의 영혼에 해를 끼치려고 그런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의가 사람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싶어하고 마음에 불편함을 주기 싫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귀에는 훨씬 더 쉽고 기분 좋게 들려지구요.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 제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벽을 모두 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불쾌함과 반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이 주는 호감입니다. 이 두 가지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들려지는 거짓 메세지에는 귀를 기울이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전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처럼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그 반대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를 헤치려는 목적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런 메세지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실 시대를 막론하고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의 어려움 한 가지가 놓여있습니다. 내가 듣는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를 분별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해 진 후에, 내가 말씀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그 말씀이 나를 판단하도록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떻게 들리느냐와 상관 없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충분히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말씀도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모는 거칠 수도 있고 달콤하고 부드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모는 그 말씀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별하게 해 주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들려오는 말씀 앞에 자신을 가져다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말씀의 외모에 속지 않고, 그 외모 속에 들어있는 말씀의 진위를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직하고 분명한 귀를 주셔서 주님의 말씀의 세우시고 바로 잡으시며 풍성하게 해 주시는 온전한 은혜 가운데 안전히 머물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