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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1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35-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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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12일 금요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갑자기 이상한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성전 2층에 레갑 족속을 모아놓고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은 유다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세지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하는 그런 일이 될 것이지만 굉장히 독특한 명령임에 분명했습니다. 상황은 이제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계하시기 일보직전입니다. 게다가 레갑 족속은 대대로 술을 먹지 않는 족속이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성전 2층에 모아다 놓고 그들에게 포도주를 먹이라니 그냥 겉으로만 보면 이것은 이들을 심각하게 타락시키기 위한 일처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이니 그렇게 했습니다. 레갑 족속들을 성전 2층의 한 방에 모아놓고서 잔뜩 차려놓은 포도주를 먹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레갑 족속들은 그 포도주에 입도 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 


레갑 족속은 겐 족속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을 때, 그와 함께 왔다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게된 이방족속들이었습니다. 원래는 북쪽 이스라엘에 살고 있었는데,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예룻살렘으로 망명해서 거기서 살게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포도주에 입을 대지 않았던 것은 레갑의 아들이었던 이들의 직계선조인 요나답의 유언 때문이었는데요. 요나답은 예후가 아합 집안을 멸절시킬 때, 그 예후와 더불어서 북이스라엘의 바알 선지자들을 숙청하는 일에 함께 한 사람이었는데, 그 때 그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견하고는 자기 자손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레갑 족속들이 언급한 그 네 가지를 금하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때가 주전 840년이었으니까 그 유언을 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2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레갑 족속들은 자기 조상의 유언을 모두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킨 유언은 단지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언에 따라서 집도 짓지 않고 그저 장막에 살았고 땅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농사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유랑자들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우직하고 변함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조상의 유언 하나 지키려고 2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불편하고 불안한 생활을 계속 이어갔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 사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포도주를 못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선지자가 마시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려고 하셨던 것은 바로 이들의 이런 변함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정통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닙니다. 그저 아주 오래전에 단지 몇 사람이 들어와 생겨난 작은 부족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켜려고 애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 조상이 남긴 어찌보면 굉장히 불편하고 불안하며 필요없게 여겨지는 그런 유언을 지키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유언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존경하는 훌륭한 선조의 유언이었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갑 족속의 이런 모습을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유다 백성들의 모습은 레갑족속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고, 그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 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통탄해 하시면서 어찌 레갑 족속은 자기 조상의 유언 하나 지키는데도 저렇게 신실하고 진지한데, 나의 백성인 너희들은 하나님인 나의 말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레갑 족속들의 모습을 그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삼아서 말이지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과 이 땅의 교회들의 모습은 과연 그 당시 유다백성들과 더 닮아 있는가 아니면 레갑 족속을 더 많이 닮아있는가? 아무래도 레갑족속을 더 닮아있다는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은 그 당시 유다백성들을 더 많이 닮아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사실 더 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유다백성들처럼 하는데, 레갑 족속과 같은 삶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는지 우리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왜 오늘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 중에 레갑 족속이 아니라 유다백성들을 닮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사람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 문이 좁기 때문입니다. 좁다는 것은 불편하다는 것이고 힘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잘 안가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숫자에 속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신앙은 오히려 소수결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의 길을 그 길 자체가 좁은 문으로 들어간 뒤에라야 보이는 그런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유대백성들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레갑 족속들의 답답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삶의 방식을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삼으셨고, 또 그들에게 복된 약속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꾸 다수인 유다백성들의 길 위에 세우려고 하지 말고 소수인 레갑 족속들의 길 위에 세우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바른 것이고 그래서 영광스럽고 향기로운 것이 될테니까요. 


우리가 유다백성들의 길이 아니라 레갑족속의 길을 갈 때, 우리 삶은 하나님께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삶은 그 누군가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오늘을 사는 레갑족속으로 세우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가 담겨지는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