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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3.09.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겔 9-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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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3월 9일 수요일




가끔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 시대에 예언서들은 거의 설교되지 않습니다. 설교되더라도 그 중에서 은혜로운 말씀이나 회복과 소망을 이야기하는 말씀들만 골라서 설교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회복과 구원의 소망이 선지서들의 결론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지서들이 쓰여질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그 죄 때문에 초래될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보다는 슬프고 어둡게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자기 감정으로 평가하려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내용들 자체가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언서의 말씀들은 좀처럼 설교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누구라서 죄를 지적하고 엄한 징계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분노의 말씀을 보고 듣는 것을 즐거워 하겠습니까?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말씀들도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본능적인 감정이 아니라 올바름을 기준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더 거룩해지고 더 온전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9장에서는 드디어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에스겔이 본 환상 속에서 였지만, 이제 징계는 실질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천사를 의미하겠지요. 그렇다면 이들은 그 동안 예루살렘을 보살피고 보호하고 그 주민들의 삶을 붙들어 준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의 역할이 바뀝니다. 이제는 그 손에 무기를 들고 성을 나섭니다. 이전에는 성 안에서 성을 보호하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서는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성을 멸망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여섯이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허리에 서기관들의 먹그릇을 차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영광은 그룹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성소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성전 문지방에 한 차례 머물러 섰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서기관 복장을 한 사람에게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서기관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그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들을 구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의 이마에 그려준 표시는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으며 또 자신의 동족들이 그 말씀을 떠날 때 그것을 보고 슬퍼하며 통곡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멸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표시였습니다. 


에스겔은 10장에서도 1장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수레들을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 수레 위에 있는 생물들이 ‘그룹’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성소에서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번에는 그 그룹들 위로 옮겨갔습니다. 거기 잠시 머물던 하나님의 영광은 이번에는 성전 동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 환상을 더 보는 동안 거기 잠시 머물러 있었고, 그 다음에 11장 23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은 결국 예루살렘 바깥으로 빠져 나갑니다. 


결국 기회를 주시고 또 주셔도 유다백성들은 자기 죄에서 빠져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는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마치 느린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느릿 느릿 보여줍니다. 본문 말씀에서 움직여 가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부터 그랬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 거하기를 즐거워 하십니다. 그들이 가는 곳으로 함께 가고, 그들이 머무는 곳에 함께 계시를 좋아하시지요. 그렇다면, 그런 그 분이 당신의 백성을 떠나시는 일을 좋아하실까요? 어느 날 갑자기 ‘에이, 너희들 다 맘에 안들어. 나 갈꺼야.’하시고 떠나버리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움직여 가는 모습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가다가 한 참 머물고, 또 조금 가다가 한 참 머물고, 천사에게 시키셨던 일이 완수되었다는 보고를 들으시고서야 움직이시고,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또 한 걸음 움직이시고…. 사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와 행하셨던 일들은 한꺼번에 하셔도 충분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일부러 지체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시고 천천히 행하셨고 그렇게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셨습니다. 정말 떠나기 싫지만 떠나실 수 밖에 없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고, 9장부터 11장 까지의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질 때 비로소 신앙다운 신앙이 된다고 믿습니다. 무엇을 하고 하지 않고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런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을 이해한다면 그저 따라오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 그 말씀들이 우리의 죄악과 어두운 면을 들춰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이야기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말씀들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진짜 마음을 읽고 헤아릴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의 인도자와 보호자와 공급자가 되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진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엄한 징계를 선포하실 때에도, 그리고 그 징계를 주실 때에도 똑같습니다. 


못내 옮기기 싫은 발걸음을 옮겨 가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마음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응답들이 모여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오래 오래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진짜 바라시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대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우리 안에 충만하게 머물러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