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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3.1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겔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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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3월 17일 목요일




에스겔 20장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기 전에 아주 오랜 역사동안 반복되고 반복되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20장의 시작은 유다의 장로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고 싶어서 에스겔을 찾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이제 더 이상 그들이 묻는 것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맹세하십니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 정말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 맹세하는 것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지 하나님께는 걸맞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는데 그것은 이번에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게나 완고해 지신 것일까요?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 동안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이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해 주신 말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궁금해지자 질문을 가지고 쪼르르 달려왔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더 이상 용납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대답을 들려주시기 전에 이전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베풀고 언약을 맺어도 그 때뿐이지 단 한 번도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한 적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의 길과 생명의 길로 주신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분명하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지키라고 하신 안식일을 깨뜨리고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항상 더러운 우상숭배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그들을 징계하시고 벌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계십니다.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다” 약간씩 표현은 달라도 이 말씀이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똑같은 내용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하시는 속 좁은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광이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온 세상을 아우르고 있는 모든 질서와 가치를 바로 세우는 첫번째 단추의 역할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엄한 손을 드셨다가도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혹은 다른 곤경에서 건져 주시는 것을 본 다른 이방족속들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그 손을 내리셨던 것은 이방족속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이루셔야 할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이방족속들에게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자체로 선교사로 부름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켜 버리신다면, 분명 아직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족속들이 하나님을 오해할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저렇게 스스로 벌을 내리고 망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불러낸 잔인하고 몰인정한 신이 여호와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심각하게 더럽혀 집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될 길이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해서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특별한 은혜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린 아주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들은 원래부터 ‘세상의 복’이 되기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부르심과 은혜의 이유가 그들 자신의 유익에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것을 완전히 망각할 때마다 그들은 심각한 죄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위한 왕같은 제사장들로 부름받은 것인데 그 사실을 잊고 오히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려주어야 할 세상과 닮아갔던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죄용서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우리 신앙 조차도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하고 선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조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들의 거룩함을 통해서면 보여지고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믿는다고 하나님이 증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 믿으라고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한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해도 그렇게 하려고 애쓰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하게 되고, 우리들 또한 더럽혀지고 오염되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소명을 잃어버리면 스스로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 이 땅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조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그리고 교회들이 다시 자신을 향한 부르심을 깨닫고 거룩한 삶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