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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6.04.24. 주일오후 - 이렇게 기도합시다2(전교인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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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6년 4월 24일

본문 : 누가복음 11장 9-13절




벌써 한 참 된 일이지만 우리는 1월과 2월 전교인 기도회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다니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고 이야기했는지 를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들이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라서 살아가면서 다른 어떤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만이 하나님의 뜻이 가장 선하고 가장 온전하고 가장 바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손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시려고 하셨던 일을 가로막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일은 사무엘의 말대로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를 너무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내가 좋고, 기도 안하면 내가 좋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니 기도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개인적이기만 한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역할이 기도에, 그리고 기도하는 우리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꼭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응답될 때, 기도의 능력과 신비를 맛보는 은혜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어린 시절, 저희 선친께서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 때, 제 동생이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그 때 제 동생은 아버지를 위해서 꽤 오랫동안 기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동생이 어느 날 문득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아무래도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아빠 기도 들어주지 않아”라고 말입니다. 


물론 기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교만과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 그리고 기도에 헌신하기 싫어하는 게으름. 이 두 가지가 우리의 기도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지요.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고 기도를 계속해 나가려면 이것 말고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또 있습니다. 그 장애물이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낙심이라는 장애물입니다. 실제로 기도하다가 이 두 가지 장벽에 부딛혀서 기도생활을 계속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 읽은 누가복음 11장의 말씀은 이 두 가지 장애물 중에서 첫번째 장애물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심에 빠져서 기도의 힘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장 9절과 10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믿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아낼 것이고 두드리면 열어주시겠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복되고 놀라운 약속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그것을 꼭 주신다는 의미로 생각해 왔는데요. 그런데 가만히 말씀을 들여다 보면 본문 말씀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찾게 되고 무엇이 열린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기도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부모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부모는 자녀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항상 자녀가 나에게 원하는 것 이상의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정말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자식들이야 그것을 알리가 없겠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사실 특별하게 선한 사람이 아니라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들이 자기 자녀에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지극히 선하신 우리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아무리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능력이 되지 않아서 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고,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항상 우리에게 최고로 좋은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음도 있고 능력도 있으시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말씀 끝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서야 의문이 풀립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 찾아낼 것이고,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그런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성령님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구요? 나는 성령님보다 다른 것이 더 좋다구요. 그러시면 안됩니다, 여러분. 성도는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영이고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셨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셔서 아얘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왜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가 하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나에게 주실 때에는 하나님께 속한 다른 모든 것들을 함께 나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이미 하나님의 보물창고 열쇠가 내 손에 있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허락만 받으면 거기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쓸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것, 틀림 없이 그렇게 하신다고 하신 것은 성령만 주고 다른 것은 주지 않으시겠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성령님과 더불어 그것보다 가치없고 덜 귀한 것들을 모두 주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이미 10억을 물려주고서 100원만 더 달라고 하는 자녀의 요구를 거절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녀들에게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항상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시고 진짜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 성령님도 구해야만 받을 수 있지만 말이지요.  


한 번 따라해 볼까요? “구하면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구하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 믿습니까? ‘에이, 진짜로 기도해 보니 그렇지 않던데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뜻 이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을 진짜로 믿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것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항상 더 좋은 것,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왜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해 보니 구하는 대로 안됩니다. 기도한 그대로 응답이 안 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도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겠습니까? 왜 우리가 기도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기도에 대한 의심에 빠지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답은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아이를 키워보면요. 참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 가장 좋은 것이 옆에 있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것만 고집할 때입니다. 그럴 때는 부모가 되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리기도 힘듭니다. 그것을 원하는 열망이 너무 커서 그것을 가지지 못하게 하면 금방 시무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생활이 꼭 이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이것을 허락해 달라고, 꼭 이렇게 응답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 생각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응답의 때도 스스로 정해 놓습니다. 내가 정해놓은 때에,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기도하는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문제가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고 그래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고 기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응답,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답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빵을 생각하느라고 성령님을 놓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을 생각하느라고 가장 좋은 때에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그동안 기도하면서 경험하고 얻은 깨달음입니다. 무언가를 붙들고 계속 기도합니다. 너무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주셨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내가 한 가지를 구했는데 많은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깨닫지 못합니다. 또 생각해 보면 그것을 알면서도 이미 구하고 있는 것에 집착해 있어서 더 좋은 것들이 더 좋은 줄 모릅니다. 입으로는 이렇게 더 좋은 것들을 주셨다고 하면서도 감사가 없습니다. 여전히 내가 구한 것을 내가 바라는 때에 주시지 않은 것 하나를 가지고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원망과 의심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기도하는 일조차 시큰둥해지고 기도를 그만두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 내가 구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더 좋은 것, 그리고 최고로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한다면, 그 응답에 우리의 눈을 열어 놓는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더 좋은 것, 최고로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아도 언젠가 주어질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귀하디 귀한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적당한 것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맞춰 주십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붙들려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시고 하나님께서 주실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들을 기대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바라는 눈을 조금 뒤로 물려 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놓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가장 좋은 것들을 보며 감사와 확신의 기도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녀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는 확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항상 더 좋은 것, 아니 가장 좋은 것으로만 주신다는 확신 가운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있는 확신 가운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삶을 살아서 우리의 삶의 자리가, 교회가, 그리고 이 세상이 하나님 주시는 더 좋은 것들로 채워져 가는 것을 보는 성령충만하고 행복한 기도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