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5월 3일 화요일
우리 신앙과 삶의 교본인 성경은 참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항상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물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안되지만 행동을 이야기할 때도 그것이 믿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것을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꾸 마음이 없는 행동과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니까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전혀 마음을 더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헌신은 너무나 부족하고 또 부족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정말로 마음이 더해지지 않으면 그 행위와 겉모습이 아무리 그럴 듯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는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비록 많이 부족하고 허술하기만 해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또 믿는다면, 우리는 아마 기도를 한 번 해도, 예배를 한 번 드려도 그렇게 하는 자기 마음과 중심에 세심하게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겉모습과 형식으로 기우는 우리 자신을 훈련하고 또 훈련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애쓰는 것은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귀찮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 경험으로는 우리가 우리 신앙을 ‘마음’의 문제가 되게 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우리 자신도 신앙을 통해서 참된 은혜와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있다는 풍성한 만족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확신도 가질 수가 없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마음에 신경쓰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제일 속이 상하고 안타깝습니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보아도 그렇구요.
6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아주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굉장히 사랑하는 구절이지요. 읽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정말 구구절절히 은혜롭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하며, 가서 치료와 회복을 얻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다른 나라나 혹은 다른 신들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 언제나 가장 필요한 때에 나타나 자기들을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그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권면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오늘 우리에게도 너무도 은혜롭고 소망스럽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말들이, 이 고백들과 뉘우침들이 전혀 그들의 중심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오랜 세월을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지 않고 유대교라는 종교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고, 또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종교적인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서로에게 말하고 고백하는 동안에 그들은 이것이 자기들의 진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그러는 동안에 그들의 가슴은 은혜로운 감정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 진심이 없었고 중심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말뿐이었고 말할 때뿐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그렇게 고백하고 뉘우치는 듯이 보인 후에 그들의 삶 속에는 그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뒷바침해 주는 증거들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찌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인 행위로 돌아오기는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고 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나타나는 증거도 없었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서도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진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마음’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항상 부족하고 또 부족하기만 하지만, 목사로서 점점 더 이렇게 변해가고 점점 더 이런 방향으로만 기우는 성도들을 바라볼 때, 이 일을 어쩌나 하는 근심이 생기고, 그런 일에 대해서 무감각해져 버린 교회를 볼 때, 마음에 두려움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언어들은 항상 그 안에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고, 또 우리 중심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또 애써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일이 되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마음이 빠지면, 진심이 없으면 신앙은 껍데기 밖에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기도하실 때, 혹시 내가 내 신앙과 신앙의 언어에 마음을 담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껍데기만 붙들고 있었던 점은 없었는지 가만히 살펴보시고 앞으로는 내 신앙이 더 많은 마음과 진심을 담아 그 증거가 삶으로 나타나는 그런 믿음이 되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