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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5.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호세아 8-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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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5월 4일 수요일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신앙에는 언제나 우리 마음의 중심이 실리도록 애써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이 신앙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징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은 어떤 한 가지 상태에 계속해서 노출되어 있으면 그런 상태 자체를 느낄 수가 없게 되고, 결국에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느낌조차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처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기고 은혜를 깨달았을 때는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 저절로 마음이 담기고 중심이 실리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됩니다. 아무런 은혜도 없고 뉘우침도 없는 예배, 하나님이 들려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입맛에 맞는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는 설교, 간절함과 갈급함 없이 그저 드리는 기도… 처음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내가 이래서는 안되지’하지만,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채로 시간이 흐르게 되면 결국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인 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 중에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말이 있는데요. 영적으로 꼭 이런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필요를 아주 강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못합니다. 다시 돌아가자니 지금 있는 곳에서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한 숨 한 번 쉬고는 뒤돌아서지 못하고 가던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정말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그게 괜찮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이 꼭 그런 상태였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너무 오랫동안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려주고 또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매를 드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셨습니다. 8장 2절과 3절은 그 때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다급해서 부르짖게 될 외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외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이스라엘은 선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떠났습니다. 그런 지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멀리 떠나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라는 분을 알고는 있으니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외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외침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그러한 뉘우침에 마음을 담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선을 버리고 떠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무엇이 선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외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면 무언가 하던 일이 잘 안되거나, 가족이나 자기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혹은 경제적인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그런 일들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하나님의 징계이고 이런 징계를 당하게 되면 많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큰 징계는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 마음과 영혼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징계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지만 말이지요.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8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섬기는데 도움을 주시려고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율법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율법은 정말 쓸데 없고 이상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많은 증상이 나타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말씀의 단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아파할지언정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말씀을 달게 들었는데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말씀 자체의 교훈이나 혹은 진리, 그리고 거기 담긴 은혜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것이나 자기 자신에게 무게중심을 둡니다. 그런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영적으로 볼 때,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먹이시고 회복시키시며, 믿음을 주시고, 힘을 주시는 도구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는 하나 밖에 없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해서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영혼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살아가는데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럴 정도로 그의 영혼과 마음은 무감각해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길 때, 별다른 감정도 느낌도 없이 무감각한 상태로 마음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더 늦어버리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가장 급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이미 많이 무감각해져 버렸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달게 여기며 듣고 있는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내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하게 여기며 달게 받는 겸손하고 은혜로운 마음을 잘 지켜 내셔서 마음이 굳어지고 신앙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자기 영혼에 항상 파숫군을 세워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잘 돌보고 또 챙겨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을 기뻐하는 그런 신앙인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