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5월 5일 목요일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것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돈을 섬기면 돈을 닮고, 어떤 사람을 섬기면 그 사람을 닮습니다. 권력을 섬기면 권력을 닮습니다. 명예를 섬기면 명예를 닮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닮도록 그렇게 지음받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바꿀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도 그렇지만 사람이 우상을 섬기면, 그 어떤 것이라도 우상을 삼아서 섬기게 되면 그렇게 섬기는 것을 닮게 되는데, 성경은 모든 우상과 우리가 우상으로 삼아 섬기는 모든 것들의 특징을 ‘허무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텅비어 버린 존재, 껍데기만 남은 존재가 됩니다.
사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아주 직접적인 우상숭배가 되지만, 우리가 무엇이든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하나님처럼 그것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게 되면 그런 것들은 전부 다 우상이 되고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주 귀하고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점 더 온전하게 완성되어져 가도록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람이 우상을 섬기고 그래서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에서 멀어지고 텅빈 존재가 되어져 가는 것이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도 쉽게, 너무도 자주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애굽에서 빼내어 구원해 주시는 어마 어마한 은혜를 베푸셔도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광야에서 먹이고 입혀주어도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배를 불려 주시면 그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더 믿고 섬기는 자리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교만해 져서 우상을 숭배하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수차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되게 나무라셨지만 그 때 뿐이었습니다. 금새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대신에 주변의 강한 나라들에게로 갔습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13장 3절의 말씀인데요.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의 결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피난처와 구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 모든 나라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허무한 것을 섬기고 허무한 것에 의지하니까 결국 스스로 그렇게 아침에 떠올라 금새 사라지는 구름처럼, 해가 나면 스러져 버리는 이슬처럼,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가도 바람 한 번 불면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리는 쭉정이처럼, 그리고 굴뚝의 연기처럼 가볍게 허무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서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의지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니고 생각만큼 든든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구름같고 갈대로 만든 지팡이 같아서 허망하게 사라지고 의지하면 부러져 버립니다. 붙들려고 하는 사람을 더욱 더 허무하게 만들고, 의지하려고 하는 자들을 곤경에 빠뜨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실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아버지이시니까요. 그래서 그 정도가 심각해 지면 때로 우리들을 엄하게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아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사실 이렇게 꾸짖어 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 꾸짖음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증거이고 또 우리가 그렇게 어긋나갈 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증거이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증거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징계를 당할 때는 자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또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이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이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단 한 순간도 말입니다.
11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불붙듯 하도다” 세상이 이런 신이 어디있습니까?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마음을 품고 있고, 이런 마음으로 대해주는 그런 신이 어디있습니까? 그 마음에서 긍휼히 불붙고, 또 그 사실을 이미 자기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을 향해서 드러내는 그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버리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향해서만 긍휼이 불붙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하나님의 형상들, 그 백성들을 향해 똑같은 마음을 품고 계셨습니다. 항상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아얘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말이지요.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은 이후에도 수없이 하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작은 어려움만 생겨나면 어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가 있느냐고 불평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계속해서 용납하시고 참아 주셨으며, 더 큰 은혜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긍휼이 불붙는 듯한 마음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표현만 달라질 뿐입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음보다 강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살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이렇게 풍성하고 다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과 믿음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