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5.13. 성경읽기와 묵상(오바댜, 요나 1-2장)


20160513D (#1).mp3.zip





설교일 : 2016년 5월 13일 금요일




오늘 함께 읽은 곳은 오바댜서와 요나서 1,2장이지만 요나서는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오바댜서만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바댜서는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스물 한 절이 이 책의 전부입니다. 오바댜서가 이렇게 짧은 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책이, 다른 예언서들과는 달리 단지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고 덜렁 에돔에 대한 이야기만 하셨다는 것이 조금은 독특하지만 우리가 에돔이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였고, 그렇게 본다면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와도 같은 나라였기 때문에 충분히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특별하게 다루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돔을 특별하게 다루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에돔이 이스라엘의 형제나라이면서도 끊임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에돔이 에서의 후손들이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후손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두 형제의 운명은 이들이 어머니의 태에 쌍둥이로 있을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인 에서가 아니라 동생인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하나도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장남이 아니라 차남을 이스라엘 민족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사실 성품으로 보면 야곱은 그야 말로 정말 질이 낮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부모나 형제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고,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특별대우까지 해 주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택하심은 장남인 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동생을 아버지의 후계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조로 선택하신 것만이 아니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도록, 그러니까 장남인 자신이 동생인 야곱을 섬기도록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이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두 사람의 운명이었습니다. 사실 이삭 가족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해놓으신 것은 어떻게 보면 결국에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며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친다고 해도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돔은 그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했고, 틈만 있으면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들의 공격을 받을 때, 이스라엘을 도와주시는 커녕 그들과 결탁해서 예루살렘을 수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오바댜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에돔족속에게 정말 어마 어마하게 화가 나 계셨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에돔족속은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곤경에 빠졌을 때, 악한 자들과 합세해서 더 힘들게 했을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슬렀으니까요. 


사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첫째가 되어서 동생을 섬기는 나라가 되고, 또 상속자의 자리를 잃게 된 것이 못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도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은 그 지역에서 강한 나라를 세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주변 나라들이 물건을 거래할 때 사용했던 두 개의 무역로가 다 에돔 땅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행료를 받고 중간역할을 하는 일로 에돔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당연히 돈이 많으니 군사적으로도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구요. 만약 에돔이 그런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형제나라로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었다면 이들의 운명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징벌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들대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평강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했던 에돔은 그것 때문에 화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복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과해 보일 때도 있고,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앞에 선 에돔족속들처럼 “왜 우리만? 왜 나만?”이라는 질문이 생겨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 뜻을 함부로 거스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선하고 온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지요. 때로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 때문에 다른 이들을 원망하고 부러워 하는 에돔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은혜는 불공평한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 불공평해 보이는 은혜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불공평하다면 가장 불공평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믿고 신뢰하면서 그 불공평함을 믿음으로 소화해내는 우리들, 끝까지 사랑하며 끝까지 섬기는 길을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