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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5.1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미가 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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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5월 18일 수요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꾸 다른 것을 따라가고 다른 것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일종의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생을 두고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그런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도 안됩니다. 100퍼센트 완전히 그 질병이 치료되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런 유혹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가 없고, 잠시 잠깐이라도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따라가고 또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과 싸워야 합니다. 열심히 싸워야 하고 그래서 우리 삶 속에서 그런 일이 할 수 있는 한 적게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싸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도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결코 똑같이 다루지 않으십니다. 


오늘 미가서를 보아도 그것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부정직함과 정의롭지 못함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크게 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이 한 민족, 한 나라이기 때문에 예외 없이 감당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러나, 힘 있던 사람들, 그 힘으로 악을 행하던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 반면에 하나님께서 ‘남은 사람들’이라고 부르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약속이 주어집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서 이전보다 더 영광스럽고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 더 이상 다른 어떤 나라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지 못할 그런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 ‘남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던 사람들일까요? 단 한 번도 우상숭배에 빠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본문말씀을 보면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7장 9절을 보면 이 ‘남은 자들’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결단을 내리면서 넘어져도 일어나고 어두운데 앉을 지라도 여호와께서 빛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또 자신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신을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들은 그들이 죄를 전혀 짓지 않았기 때문에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도 죄를 지었습니다. 유혹에 넘어져서 어둠 속에 거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에도 이들은 주님을 찾고 주님을 의지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은혜를 구하고, 자신을 넘어뜨린 죄와 싸우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들은 이 은혜 덕분에 남겨진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와 싸워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와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었을 때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그만두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프고 슬픈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또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남은 자들이란 이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떤 조건 속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이런 사람들이 남은 자들, 하나님께서 남겨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완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남은 자의 자리를 지킬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남은 자가 되려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고, 또 확실히 믿어야 할 것도 하나 있습니다. 첫째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어떤 삶을 위해서 헌신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6장 8절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니라”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믿음은 우리 삶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과 생각에만 갇혀 있는 믿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의를 행하고 다른 이들을 넉넉한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함께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 행위, 그런 삶으로 우리의 믿음이 표현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바른 지식에 따라서 우리 삶을 이어가려고 할 때,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주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할 것, 그것은 결국 그런 사람들만이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5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우리가 흔들림 없이 믿어야 할 것은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소망하며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죄에 넘어지고 타협하며 자신의 영적인 정결함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이 왕되신 그리스도 앞에 설 것이며, 그 분의 영원한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을 확실히 알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정신을 차리고 살 것입니다. 그 분 앞에서 올바르고 정직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말 하나 행동 한 번을 할 때도 말입니다. 그런 조심스러움과 주의깊음이 없다는 것은 그 성도에게는 주님이 오실 그 날을 소망하는 소망도, 그리고 그 날 주님 앞에 서게 될 자신의 모습에 대한 경각심도 없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미가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깊은 죄의 문제로 부터 시작하지만 놀랍게도 그 속에는 우리 구주 예수님의 왕되심에 대한 예언과 소망이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죄의 유혹과 고통의 문제를 완전하고 영원하게 끝내시고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실 분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분명 온 세상의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고, 남은 자들은 그 나라의 참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이 약속을 붙들고서 이 세상이나 다른 성도들의 어떠함을 좇아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서, 비록 부족하고 완전치 않으니 주님 뵙는 그 날, 그래도 기쁨과 감격 가운데 주님을 뵙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