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5월 19일 목요일
혼자서 함께 읽은 나훔서를 읽다가 중간에 갑자기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아니면 앗수르에 대한 이야기인가 잠시 헤깔렸습니다. 그 이유는 이전에 다른 선지서들에서 읽었던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내용과 나훔이 앗수르의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섬찟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앗수르 백성들은 닮아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고 앗수르 백성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고 순결한 분이십니다. 죄와 악은 가까이 하실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섬기던 신은 부도덕한 신입니다. 부도덕한 삶을 부추기는 그런 신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과 앗수르 사람들은 닮을래야 닮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상 하나님의 눈에 비친 두 백성들의 삶은 정말 많이 닮아있습니다.
문득 오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우리들, 그래서 죄와 거룩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요?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원래부터 만들어 지기를 자신이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닮도록 그렇게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과 삶이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 사는 모습과 성품이 그들과 비슷하다면 아마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바라보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맞는지, 아니면 형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요즘 점점 더 한국교회가 세상과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픈 이야기이지만 도덕적인 면에서는 아예 교회 바깥보다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우리보다 나은 것이 뭐냐고 묻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질타에 대해서 확실하게 우리는 너희와 본질적으로 이게 다르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교회는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곳이기는 하지만 다른 것을 바라보고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안타깝게도 교회와 성도가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거의 그대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달라고 내용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본문의 1장 초두에 보면, 하나님의 이중적인 성품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온 세상의 피조물과 완전히 다르신 분이시고 또 세상에서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과도 완전히 차별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일단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못견디어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을 참지 못하시고 꼭 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항상 사랑하시고 안타깝게 바라보시고 또 용서해 주시고 고쳐 주시는 하나님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말씀들 자체가 익숙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고 본질적인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이 완전히 망하지 않고,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느니라”
3절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벌 받을 자를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벌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또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착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때는 자신이 바르고 정직하게 꽤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평안함이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시간이 아닌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영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많이 유익합니다. 이런 생각을 통해 우리는 항상 겸손할 수 있고, 우리 삶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죄악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만큼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괜찮다고 여기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율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만족을 찾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우리는 평안하다고 여겨질 때도 자신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기 안에 감추어져 있는 죄가 없는지 살펴야 하고 그 죄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참된 평안을 얻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오늘은 지금 나의 평안이 오래 참고 기다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에서 나온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감사하시고, 가만히 우리 안에 있는 지나쳐 버리고 무시해 버린 죄악들을 살피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거룩함과 정결함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고 또 그런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오늘의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