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우리가 아는 기도는 대부분 하나님을 향한 요청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우리 기도의 대부분이지요. 사실 기도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하면,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으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와 인생의 문제, 그리고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도는 달라는 것이 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소원이 있을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구해야만 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러한 우리의 필요를 너무 많이 구하느라고 잊어버리고 있는 아주 중요한 기도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질문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왜 그러냐고,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이냐고 묻는 기도 말입니다.
우리 나라 신앙 풍토에서 참 잘못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에 대해서 묻는 것 자체를 불신앙으로 취급했던 그런 풍토입니다. 이런 풍토 때문에 교회 안에는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이해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었고, 질문이 있는 사람들, 이해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고 바로 이것 때문에 신앙이 참 신앙다워지지 못합니다. 생각이 빠진 신앙은 결코 깊은 신앙과 성숙한 신앙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아주 심각한 질문을 가지고 갔고, 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을 그냥 내버려 두시느냐는 것과 반대로 의인의 고난을 모르는 척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상황이 옳은 것이냐고, 정의로운 것이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어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몰라서 하는 질문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자신이 아시는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신데, 막상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하나님의 정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난할 때도 묻는 질문이지만 그래도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 당시 하박국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불의를 경험하고 목격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아무런 질문이 없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아직 진지하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신다는 진리를 믿지 않거나 아니면 세상이 망하고 무너져도 나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바국에게 주신 대답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악한 자들의 죄를 다 알고 있고, 그들에게 딱맞는 심판을 준비하고 있으니 나에게 맡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길고 자세하게 들려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진지하게 질문하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답을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답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질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이미 성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는 성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가지고 기도도 해야하지만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또 질문을 가지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냥 성경읽고, 그냥 설교들으니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딘가 숨겨져 있는 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 보물찾기를 하듯이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박국은 질문을 했고, 그래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답을 말씀해 주시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어디서 많이 보던 말씀이지요? 로마서 1장에 나오는 말씀이기도 하고 어쩌면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만해지고 죄악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불의한 상황, 심지어는 의로운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런 상황 때문에 유혹에 빠져 하나님 없이 사람들이 사는 방법을 취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그 모든 유혹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섭리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이기고, 또 계속해서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질문이 없는 믿음이 아닙니다. 답을 모르는 믿음이 아닙니다.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으니 그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바로 그 믿음을 가지고 살고 또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하박국 선지자가 이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들려주신 정의와 불의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귀한 말씀도 듣지 못했을 것이구요. 모르는 것은 질문하는 학생이 좋은 학생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질문 없는 성도는 좋은 성도가 아닙니다. 그런 성도는 신앙이 바르고 단단하게 성장해 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질문하시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질문을 가지고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것을 통해서라도 분명히 대답을 들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질문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서 그 질문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알아가며 이유 있는 신앙, 이해하는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