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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5.2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스바냐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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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5월 23일 월요일


 


스바냐서는 시작과 끝이 완전히 다른 예언서입니다. 내용이  시작되는 1장 2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그리고,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의 결론 중에서 중심이 되는 구절인 3장 1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러니까 스바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롯한 그 당시 그 주변의 이방나라들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는지를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그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신구약을 구분하지 않고 성경 전체에 걸쳐서 두루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내용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고, 인자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는 이 모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시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성도들은 그리 걱정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간 중간에 시험도 있고 시련도 있을 것입니다. 세월이 악해지면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그런 성도들은 힘이 들 것입니다. 또 그러다가 그런 세상에 하나님의 징계가 주어지면 그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함께 그 징계의 고통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가려고 애썼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밀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실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함께 거하시면서 그 기쁨과 영광을 나눠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계시록을 보면 분명히 이렇게 ‘남겨질 자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많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남은 자들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이고, 결국 그들 안에만 영원히 거하시면서 그들만을 기뻐하실 것이라는 것마큼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도 항상 영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고, 또 신앙적인 순결함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남은 자들’로부터 시작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스바냐서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로서 조심해야 할 것들 한 두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며 의지해야 할 대상을 하나로 정해야 합니다. 1장을 처음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멸절을 선고하시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 중간인데요. 하나님께서는 명백하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 사람들을 멸절하시겠다고 하시다가 그 중간에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을 포함시키셨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동시에 말감도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또한 아예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셨습니다. 


거룩이란 섞여서 안되는 것들을 절대로 섞지 않는데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이것과 저것을 섞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거룩을 연습시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들이 섬기는 신만큼은 절대로 섞으면 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일을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니까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하니까요.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것을 함께 의지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도 믿지만 돈도 의지하고 싶어하고, 성공도 의지하고 싶어하고 명예나 권력도 의지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도 우리 신앙이 아니지만, 실은 하나님과 다른 것을 동시에 의지하고 섬기는 것도 우리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것도 섬기고 의지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보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실제로 의식하면서 그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 속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여기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겠다고 하시는 대상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하나님이 자신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상도 벌도 내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 신앙이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하나님은 성경이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대로 행위로 나를 판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 때 시작됩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그는 실제로 하나님을 이런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면 희미하게 믿고 있는 것이겠고, 하나님의 그런 판단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알면서도 무시하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합니다. 간혹 유혹에 빠져 탈선할 수는 있겠지만, 평생 하나님과 다른 것을 함께 섬기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또한 우리는 실제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향을 받을만큼, 적어도 그만큼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누군가가 남은 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면서도 거룩하고 순결한 성도의 삶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그것은 ‘남은 자’와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자가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길 바라십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시며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끊임 없이 하나님만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시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 분의 눈을 신경쓰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거룩한 일을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삶을 위해 헌신하면서 그 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남겨진 자들’로 보아주시는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