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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05.27. 금요기도회 -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사도행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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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27장 27-44절




우리에게는 우리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이 참 많습니다. 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평탄한 길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어려운 일이나 고난을 만나면 자신이 걸어가는 길 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품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기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사실과 굉장히 모순되는 기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순종은 많은 경우 실제적인 어려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만약 순종이 언제나 거칠 것 하나 없는 만사형통으로 이어진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때로는 우리를 예상치 못한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평탄함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순종과 형통한가 그렇지 않은가 여부는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하고, 확률적으로 보면 순종은 적어도 당장은 내가 바라는 형통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순종해야 하느냐? 그것은 우선은 그 순종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장애물들 자체가 그 길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만나는 고난과 어려움들은 더더욱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영혼이 좌절감에 빠지도록 놓아두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서 가이사 앞에 서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앞에 탄탄대로가 열렸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수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가 타고 가던 배는 거대한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거의 반달 동안을 기약도 없이 바다 위에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은 바울이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큰 뜻과 더 적극적인 계획이 있으셔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탄 배가 커다란 폭풍을 만나게 내버려 두셨을 뿐 아니라, 아예 난파일보직전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움직이시는 분이신지를 바울과 일행들에게 알려주시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24절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들려 주신 말씀을 그대로 옮기고 있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다 하셨으니…” 여러분, 이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인지 느껴지십니까? 바울은 죄수입니다. 선장도 아니고 선원도 아닙니다. 백부장도 아니고, 선주나 화물의 주인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말단병사보다도 못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맡기셨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커다란 배, 그리고 그 배 위에 타고 있는 276명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 바울은 단지 그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죄수들 중 하나입니다. 병사들 중 하나가 그를 죽인다고 한들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하찮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는 그런 바울이 그 모든 것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의 중심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움직여 가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하찮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님의 관심의 초점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르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만 생각하셨습니다. 기나긴 세월동안 수많은 강대국들이 명멸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틈에 끼어서 이리 저리 휘둘렸던 존재감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역사를 움직여 가셨습니다. 아니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눈에 띠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어느 한 구석에서 전혀 빛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 삶의 겉모습이 아닙니다.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길을 순종하며 걸어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생각의 중심에 두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교회를 중심으로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해 가십니다. 믿겨지지 않고 실감나지 않을만큼 허황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성경이 끊임 없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들려주는 진실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말 속에서 우리를 향해 또다시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또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불가능한 상황일수록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 배 위에는 다양한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가장 강력하다고 믿는 신들을 섬기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그 어떤 신도 그들에게 그 어떤 말도 들려주지 못했고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나서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 누구도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고, 배만 잃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의 출처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다른 신을 섬기고, 지금까지 그 신들에게 빌고 또 빌었겠지만 그 신들은 일언반구 말도 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분명하게 앞으로 될 일에 대해서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바울의 말은 바로 그런 뜻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바울이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던 그 내용이 이루어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국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만 파손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배는 완전히 박살났지만 267명이라는 사람들 중에 부상자 하나 없이 그 엄청난 태풍을 통과해서 모두 살아남았으니까요. 모든 것이 바울의 말대로 되어져 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 그리고 결국 바울의 말대로 그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적처럼 살아남는 일을 경험한 사람들… 물론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중에서도 분명히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이고 또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들이 섬기는 신이라는 것들과 얼마나 많이 차이가 나는 분이신지를 증명해 보이실 수 있으셨을 것은 분명합니다. 고난과 역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확실하게 피부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이것이 때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탄 배도 폭풍을 만나고 난파를 당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우리는 바울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온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맡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 냈습니다. 그 덕분에 죄수로 침몰 일보직전에 있던 배 위에서도 사람들을 살리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들려 주신 말씀을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이것이 바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도 함께 두려워하고 불안해 했을 것이고, 바울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바울은 점점 배 위에서 실질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바울에게 그 믿음이 없었다면 바울은 결코 그런 선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제대로 드러내 보여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한참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정말로 이런 믿음이 있는가? 상황이 어떻다고 해도 정말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가? 정말 깨져가는 배에 타고서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을만큼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이 믿음으로 살며, 이 믿음으로 목회하고 있는가? 


우리 개인의 삶,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이 모든 장소들은 바울이 타고 있었던 배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장소입니다. 비록 금방 깨질 것같고 가라앉을 것 같아 보여도, 또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하더라도 그곳 역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믿음, 그래서 평안을 지켜낼 수 있는 믿음, 그래서 끝까지 조급해 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인내할 수 있는 믿음,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와 소망을 주는 그런 믿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성도들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고 경험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하나님을 보여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이깁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결국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배를 타고 간다고 해도, 그 배는 풍랑을 만날 수도 있고, 또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믿음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의 확신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이 분명하다면, 그 과정에 겪는 일들 때문에 그 길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원래 그런 것입니다. 죄 많고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언제나 풍랑과 난파의 위험에 노출되는 일을 포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때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풍랑만한 배같은 우리 인생과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는 온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 사실을 흔들림 없이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멘을 외치다가도 막상 현실에 부딛히면 다시 현실에 함몰되고 현실의 논리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이 우리에게 여전히 비현실적으로만 남아있는 이유는 아직은 믿음이 현실이 되는데까지 가보지 않아서 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 역사의 중심에 놓으십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증명해 주십니다. 누가 뭐래도, 현실이 무엇을 보여주어도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라고 외치며 사시기 바랍니다. 꼭 그 믿음 붙들고 끝까지 가 보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흔들리는 배 위에 있었던 바울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믿는 믿음에 이르러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