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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6.05.29. 주일오후예배 - 이렇게 기도합시다3(2016년 5월 전교인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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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18장 1-8절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유와 자율을 좋아합니다. 무엇에 대해서든 누군가 자신의 삶과 행동에 끼어들어 감나라 대추나라 참견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는 모습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자발성에 호소하는 메세지들은 많아도 의무니 책임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그렇게 자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율성을 강조하고 마치 그것만이 옳은 것인양 주장하는 현대의 경향과 더불어 무언가 율법적인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은 모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그런 습관이 신앙적인 영역에 속하는 모든 일들을 전부 다 성도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가 이것은 절대로 우리의 의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 까지도 성도라면 마땅히 해야할 의무들 중의 하나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은퇴설교를 할 때, 자신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공포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했던 것은 기도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죄’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기도는 성도의 의무이고 책임이며,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다” 우리는 죄라는 것을 우상을 숭배하거나 혹은 정해져 있는 하나님의 율법이나 명령을 어기는 것 같은 명백히 나쁜 행동들과 연결지어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어색한 것을 넘어서 충격적으로 들리고 거부감이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이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성경의 교훈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의 말씀도 기도에 대한 말씀인데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1절 말씀이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이유는 첫째, 항상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과 둘째, 그러면서 절대로 낙심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해야만 한다’고 하신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성도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 성도는 기도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기도해야만 하는 사람, 기도의 자리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다, 하나님과의 대화다….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기도가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기도를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기도가 의무라는 것!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가 된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가장 먼저 귀 기울여 경청하고 순종해야 할 기도에 대한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너무 율법적이고 강압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도하되 항상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기도하는 일을 쉬면 안된다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기도에 대한 두 번째 의무입니다. 성도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 기도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이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습관을 몸에 붙이는 과정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들여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절대로 우리는 기도하는 습관을 얻을 수 없고,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붙어있지 않으면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연습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기도해 보려고 끙끙대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절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계속 운동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운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운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 별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운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려면 적어도 한 동안은 운동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놓고 계속 운동을 해야 하듯이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배려면 상당한 기간을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는 일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놓고 그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우리는 기도하는 습관을 몸에 붙일 수 있고, 그래야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기도자로 설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이 기도에 대한 우리들의 첫번째 의무라면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기도할 때 찾아오는 낙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일단 기도하게 되면 만나게 되는 큰 문제는 바로 ‘낙심’입니다. ‘기도해도 안되던데요?’, ‘기도해도 안 들어 주시던데요?’라는 생각때문에 기도에 더 이상 기대를 두지도 않고 또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도 이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서 기도에 대한 회의에 빠져 보신 분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이런 의심과 낙심은 우리에게 우리가 기도를 그만두게 하는 이유가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할 수 있는 기도자가 되게 하는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떤 도시에 살던 한 미망인입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에 남편이 없이 사는 미망인들은 그야 말로 대책없는 인생을 사는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가난한 이웃’하면 곧바로 ‘고아와 과부’가 떠올랐듯이 미망인은 그야 말로 아무 것도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의지할 남편도 없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습니다.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그 도시의 재판관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야 말로 불의하기에 이를 데 없는 탐관오리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미망인의 억울한 사정에 귀를 기울여 줄 리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여인은 이것 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 재판관을 찾아갑니다. 찾아가고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그렇게 끊임 없이 찾아가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던 재판관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몇 번 그러다가 말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여인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이니 여인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일수록 상황판단은 빠른 법입니다. 그래서 재판관은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하면서 여인의 억울함을 풀어줍니다. 재판관이 개과천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귀찮아서 하는 수 없어서 그렇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주님께서 물으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너희는 기도할 때, 미망인이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보인 것과 같은 태도도 보일 수가 없느냐는 것이었고,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이 과연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너희 기도에 대한 응답을 뒤로 미루시는 그런 분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미망인은 재판관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 재판관이 어떤 사람인지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청을 들어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밖에 방법이 없으니 계속 찾아가고 또 찾아갔습니다. 졸라대고 또 졸라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너무 쉽게 기도를 포기합니다. 몇 번 기도해 보다가 하나님은 내 기도에 관심이 없으시다고,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기를 그만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너무 늦게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하면서 끝까지 기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아니다 하나님은 속히, 될 수 있는대로 빨리 너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셨는데요. 저는 아마도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속으로 한숨을 쉬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문제, 그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너무 쉽게 낙심하는 문제를 그저 우리가 연약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문제라고 평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하지 않는 일이 왜 죄가 되는지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기도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표현이고 또 그 믿음을 지켜나가는 일인데,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는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기도자로 보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성도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향해서 항상 기도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나의 다른 생각들을 접고 기도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성도의 의무로 받아들이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습관을 붙여야 합니다. 이 일을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 주는 시험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기도와 관련해서 시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믿음을 빼앗아가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면 오히려 기도를 하다가 낙심하고 기도를 하다가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은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도에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미망인같은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그 끈질김만이 우리를 기도하다가 만나는 낙심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끈질김도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끈질김은 기도하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나의 기도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실뿐만 아니라, 또 그 기도에 가능한 한 신속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의무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렇지만 기도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는 특권이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현실 속에서 알고 믿게 해 주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마십시다. 또 기도하되 미망인의 인내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기도자가 될 수 있고 낙심하지 않는 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기도하다가 포기하고 기도하기를 그만두었던 기도제목은 없는지, 혹시 나는 지금 기도에 낙심해서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믿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함께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기도로, 끈질긴 기도로 자신의 믿음을 보이는 그런 성도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미망인을 닮은 끈질긴 기도의 정신을 회복해서, 우리가 기도하기를 그만두고 포기했던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귀한 은혜를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