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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5.3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말라기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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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5월 31일 화요일


 


드디어 우리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까지 왔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루에 몇 장씩 읽어내려왔더니 오늘로 구약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시간이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시간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들도 차곡 차곡 쌓아올려서 이렇게 높은 산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우리 신앙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번 한 번 예배드리고 또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그렇게 한 번 한 번을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작은 신앙의 조각들을 모아서 우리의 신앙을 크고 견고하게 세워나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작은 시간, 작은 행동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번 한 번은 차이가 나지 않아도 그게 쌓이면 우리 신앙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니까요.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책 답게 말라기서는 제사와 예물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버지인 하나님의 마음을 자녀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아버지인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을 통해 성취된 예언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 점에서 말라기서는 오실 메시야를 소망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신약시대에 요구하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두 책은 분명히 오실 메시야와 이미 오신 메시야에 대한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두 가지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책은 하나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미 이루어진 약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구약시대의 백성들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을 그 분을 중심에 놓고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말라기서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에는 형식과 내용의 문제입니다. 말라기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그야 말로 껍데기만 남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하기는 다 했습니다. 제사도 드렸고, 예물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없었고 중심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행위들은 그저 형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뭐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예물을 바쳐야 하는가, 십일조는 꼭 드려야 하는가, 제사는 또 왜 이렇게 많은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신앙의 행위들은 모두 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평안한 세월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모든 시대, 모든 신앙인들이 겪는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잘 합니다. 마음을 담고 중심을 담아서 진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은혜롭게 신앙생활합니다. 그런데, 항상 시간이 문제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마음에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그저 하던 대로 모양만 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두려워 하기도 하고 이래서 되나 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계속해서 아무일 없이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 되어 버리고, 또 이전처럼 마음까지 신경쓰고 마음을 쏟아 넣으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번거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되면 그 다음부터 문제는 심각해 집니다. 이제는 은혜가 없어도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어디가 얼마나 잘못되든지 간에 그 사실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정말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예배하고 또 섬기려고 하는 행위들 자체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런 잘못을 알려주시면 진심으로 반문했습니다. 자기들이 언제 그랬느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지경이 되면 절대로 안되지만 오늘 성도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지요. 분명히 성경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말씀을 읽어도 그 사실조차 모릅니다.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러면 안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설득하시는데도 항상 남의 이야기로만 듣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에 발전이 없는 성도들은 어쩌면 자신이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는 아닌지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바른 형식이라는 그릇 속에 담긴 바른 신앙, 그것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그 둘이 어긋나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갈 때, 처음에는 내용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형식마저 흐지부지되어서 그릇도 없고 내용물도 없는 유명무실한 신앙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신앙의 형식과 내용 둘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만들고 지키는 일에 항상 그리고 완전하게 성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패할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나머지는 언젠가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우리 주님을 소망하면서 말이지요. 


항상 주님의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시는 은혜, 그리고 언젠가 더 이상 실패도 좌절도 없는 영원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해 주실 우리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마음도 삶도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