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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6.06.26. 주일오후 전교인 기도회 - 이 날에 하나님이(사사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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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사기 4장 17-24절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이 선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대로 움직여 가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확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이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풀기 어려운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과 악인의 존재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다스리는 세상이라면 왜 악한 일이 그렇게 많고 악인이 버젓이 활보하며, 또 번성하고 있습니까? 또 우리의 기대와는 반대로 신앙적이고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면 괴롭힘 당하고, 손해 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왜 그렇습니까? 참 풀기 어려운 의문이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혼자 고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들을 주셔서 우리가 악과 악인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물론 인간이 악과 악인의 문제에 대해서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 모두를 아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허용되어 있지 않고 이 작은 머리로는 알려주신다고 해도 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들만으로도 우리의 의문을 풀고 우리를 악의 시험에서 건져 주기에는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악과 악인을 세상에 그냥 내버려 두시는 첫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성도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악과 악인이 있는 세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하는 훈련환경이 되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성도들이 거룩하게 되는 훈련장소로 선택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이 성도가 예수를 믿은 후에도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성도는 불완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완전히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도 끊임없이 완전해져가야 하고 거룩해져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그렇게 되어져 갈까요? 바로 선악간의 선택을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알게 하려 하사’ 가나안 원주민들과 이방족속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역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은 배움터였습니다. 전쟁을 통해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일의 죄악됨을 배웁니다. 또 하나님 편에 서는 일의 능력을 배웁니다. 전쟁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아니든 아니든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도 배웁니다. 이렇게 선과 악이 함께 있고 서로 갈등하는 이 세상은 바로 우리가 의지적으로 진리를 선택하고 하나님 편을 선택하게 하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악과 악인을 두시고, 오히려 그 쪽이 매력 있게 보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과 악인을 세상에 그냥 내버려 두시는 두번째 이유는 그래봤자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있고, 어쨋든 하나님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실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악을 행하면서 세상이 자기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빈과 시스라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의 악역스타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착각한다는데 있습니다. 나라가 번성하고 철병거와 군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야빈과 시스라는 얼마나 기세등등하고 희희낙락 했겠습니까? 아마 그들은 온 세상의 힘과 부를 다 가진 것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악함을 할 수 있는 대로 크게 드러내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자신의 능력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악함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낮추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악함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전혀 시스라와 야빈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악인들은 자기들이 잘 나서, 자기들의 능력으로 그런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악함을 악하다고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악함 조차도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악함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시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주인 만나 공짜로 방을 얻어 살아갑니다. 거기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어느 날 주인이 와서 “방 빼!”라고 한마디 하면 그 날로 짐을 싸야 합니다. 악인들이 누리는 권력이나 소유는 다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수해 가시면 그 날로 끝입니다. 시스라는 무적의 탱크부대를 지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탱크를 버리고 뛰어서 도망갑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시스라가 맨발로 뛰어 도망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갈 데가 없어 한 여인의 집으로 숨어드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과 악인의 역학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방 빼!”라는 말 한 마디면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짐을 싸야 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악과 악인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이렇게 하실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아무리 세상이 자기 것인 것처럼 까불고 설쳐대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악행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파티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때문에 사탄은 오히려 재기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때로 악과 악인 때문에 속이 상하고 시험에 들 때가 있으면, 그 때는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십자가 위에서 사탄을 끝장내 버리신 하나님의 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과 악인을 세상에 그냥 내버려 두시는 세번째 이유는 악인은 결국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 자유의지로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하게 됩니다. 인간이 악인이 되기로 결정해도 하나님은 그 선택을 억지로 말리지 않으십니다. 양심이나 환경을 통해 경고하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인간이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악인이 되기로 결정하였다면, 그 사람은 그 악인의 마지막 결과도 함께 선택하는 것입니다. 악인이 금방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붙잡으신 손을 완전히 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은 그 악인을 손에서 놓으십니다. 그러면 악인은 어떻게 됩니까? 결국 자신의 악함 속에서, 그 악함 때문에 망하고 맙니다. 현실적으로만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의 영혼이 망하고 존재가 망해 버리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다볼 산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시스라는 아무 계산이나 생각도 하지 않고, 철병거 900대를 앞세우고 기손 강으로 내려섭니다. 비가 내린다면, 그 곳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스라의 머리 속에는 단지 두 가지만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존심과 자만심이었습니다. 그는 무적의 탱크부대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시스라의 자신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합지졸, 20년 동안 꼼짝도 못하던 이스라엘이 자신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해 왔습니다. 그는 자존심이 팍 상했습니다. 그래서, 앞뒤도 재지 않고 무적 탱크부대와 함께 그냥 기손 강에 내려섰습니다. 그리고, 그 곳이 바로 그가 그토록 믿고 자랑하던 철병거 부대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맨발로 도망치던 시스라가 피난처로 선택한 곳은 어디였습니까?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이었습니다. 그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평소에 하솔 왕 야빈과 헤벨이 친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인 관계가 그렇지만, 어떤 집단간의 화평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의리나 우정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이익을 중심으로 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우리가 아무리 미국과 동맹을 이야기하고 혈맹임을 강조해도 그 중심에는 결국 이익과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미국은 평등한 관계가 될래야 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우위와 주도권은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도 이런데, 만약에 둘 중에서 강한 쪽이 아주 악하다면, 이 관계가 어떻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화평이 있는 것 같이 보여도, 그것은 언제나 강한 쪽에만 유리한 겉모양 뿐인 화평이 될 것이고, 강한 쪽에서야 화평이지만 약한 쪽에서 보면 항상 굴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야빈과 헤벨 사이의 관계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빈은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특히 헤벨의 아내 야엘의 마음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향해 있었는데 그것 또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악한 강자는 이 두 가지를 헤아릴 줄 모릅니다. 약자가 고분고분한 것이 자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 때문이며, 그래서 자기들과 화평한 약자들 속에는 여전히 지조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그래서, 결정적일 때는 이 변수를 계산해 넣지 못하고 악수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야엘의 장막으로 피신한 시스라는 야엘이 시키는 대로 물 대신 엉긴 젖, 그러니까 요거트를 실컷 마시고, “누가 찾으면 아무도 없다고 하라”는 말만 남기고 잠이 들고 맙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자기 눈꺼풀이고 그래서, 항우장사도 자기 눈꺼풀은 들지 못한다고 하지만, 지금 시스라가 낮잠을 즐길 때입니까?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어찌 그렇게 깊이 잠들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그의 자만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감히 누가 나을 배신하랴?”라는 생각만 했을 것이고, 그 생각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 속에서도 깊은 잠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시스라의 마지막 낮잠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완전한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없애가야 하는 사명이 맡겨져 있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악과 부조리는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당당한 거주자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진짜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 분의 선하신 뜻대로 다스리고 계신가 하는 의심이 찾아올 때, 그 때는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악이 있고 악인들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은 선한 선택,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선택을 하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거룩해져야 하고 또 하나님의 더 강한 군사로 세워져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이 번성하고, 악인이 넘쳐나도 그 모두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입니다. 사탄의 지혜는 항상 우리 하나님의 지혜보다 한 수 아래입니다. 그들의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것이고, 그들에게 어리석게 보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능력의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인은 결국 자신의 악함 속에서 망하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고 변함없이 선한 길, 하나님 편에 서는 그 길을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악과 악인을 통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좌절하게 하며 절망하게 하려고 합니다. 항상 그렇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인내하고 하나님의 일을 보기를 기대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지혜가 세상의 지혜보다 항상 우월하다는 것과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이 믿음으로 살아서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우리들, 그리고 날마다 더욱 더 거룩해져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내가 끝까지 하나님의 승리를 믿으며 진리와 하나님 편에 서서 살게 하소서. 
  2. 보이는 세상의 모습 때문에 실망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하소서. 
  3.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