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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7.1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마가복음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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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우리들은 흔히 비교해야 할 두 가지가 너무나 엄청나게 차이가 날 때, 그 두 가지를 보면서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말은 비교하려는 두 가지 사이의 차이가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이나 엄청나게 크다는 말이지만, 대개 이 말은 두 가지가 질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 몇 명만 데리고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모든 제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해 주어서 그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저절로 알게 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 말씀을 나누시는 모습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 위에서는 그렇게 영광스러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동안 그 산 아래서는 다른 제자들이 서기관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논쟁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이 일방적으로 비난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남겨진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했는데, 제자들이 그들을 고쳐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을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나무라신 후에, 그 아이를 고쳐주려고 하셨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 조차도 예수님이 보기를 원하시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곳을 떠나서 갈릴리로 가는 동안에 제자들은 길에서 내가 더 잘났느니 니가 더 못났느니 하면서 티격 태격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나라에서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될 거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그 버릇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누가 내 편인지 편가르기에 급급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 때문에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자 하나에게라도 상처를 주게되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지옥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씀도 주셨습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우리는 땅에 살지만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늘을 담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생각하며, 또 우리 자신이 영광스러워질 그 날을 소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땅만 보면서 살아가면 하늘은 그렇게 영광스러운데, 우리 주님은 그렇게 영광스러우신데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무시당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서로 잘났느니 못났느니 다투게 됩니다. 니 편 내 편 가르는 일에만 민감해 집니다. 그러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시험을 주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일로 자신에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 일어나게 될 지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말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땅에서 일어나는 정말 조잡하고 부끄러운 다툼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사건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하늘과 땅차이가 나는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낮추고 이기기 위해 다투듯이 살아갈 필요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조금 낮아진다고 해도 크게 불편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땅만 생각하며 살면 다투게 됩니다. 남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고난을 말씀하시는 자리에서도 내가 높고 니가 낮고를 따지느라 싸웠던 제자들처럼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옥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옥은 사람들이 불로 소금치듯하는 일을 당하는 곳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분노를 뜻하기도 하지만 또한 정결하게 하는 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소금도 정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 안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안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또 우리 마음이 부패하지 않게 해 주는 수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소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땅에 집착하고 서로 다투느라 하늘의 복과 영광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거기에 필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소금의 기능은 모두 짠 맛 덕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소금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맛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깨끗하게 하거나 부패를 막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금입니다. 짠 맛을 가진 소금입니다. 이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고, 그래서 우리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이 소금이 우리 안에서 짠 맛을 낼 때입니다. 우리 안에 소금이 있지만 더 이상 짠 맛을 내지 못하면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다툼과 갈등이 가득 찬 땅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우리를 거룩하고 정결하게 해 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이 짠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맛을 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 안에, 그리고 서로의 관계 안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며 그 나라를 준비해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