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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6.10.09. 주일오전 - 종들아 상전들아2(에베소서 38)



20161009SM (#1).mp3.zip






설교본문 : 에베소서 6장 5절-9절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난 주일에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예수 믿는 종이 자신의 주인에게 어떻게 순종하고 섬겨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을 살펴 보았는데요.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종들에게 요구하신 모든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원리를 우리의 직장 상사나 고객들, 그리고 좀 더 넓게 적용한다면 어떤 이유로건 우리의 섬김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사람을 주님 섬기듯이 섬긴다는 것. 정말 정말 쉽지 않습니다. 특히 어쩔 수 없이 아래에 있게 된 사람,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누군가를 위해서 일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렇게 섬긴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말을 받아들이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입장을 바꿔서 이 말씀을 섬겨야 할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새벽에 길을 가는데, 길을 청소하시는 분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말 먼지하나까지 다 쓸어 없애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이 최선을 다해서 청소합니다. 마트에 갔는데, 직원이 생글 생글 웃으면서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내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고, 더 도와드릴 것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직장에 새로 입사한 임시직 직원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을 깨끗하게 치워놓고, 출근하는 다른 직원들에게 커피 한 잔과 달콤한 쿠키 하나씩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면서 밝고 기운차게 인사를 건넵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이런 섬김을 받게 된다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요? 행복한 감동으로 채워지게 되고, 우리 안에 있던 악한 마음마저 눈 녹듯 녹아내리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중에 내가 누군가를 섬겨야 할 때,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 일을 하려고 힘쓰게 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맡긴 일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처럼 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주님 대하듯 한다는 것. 쉽다 어렵다만 따지면 분명히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사실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들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내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해 받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세상을 바꾸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너는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르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해는 두려워할 바가 못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면 그 오해는 언젠가는 나를 향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분명히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이 가지는 영광과 가치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한 것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2. 주인도 종을 주님 대하듯 해야 하고, 주님 섬기듯 섬겨야 한다.


지난 주일에는 종들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 보았으니 오늘은 그 종의 주인들에게 주신 말씀을 함께 살피겠습니다. 로마시대의 종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노예와는 조금 많이 달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종과 주인의 관계는 비슷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돈을 주고 산 노동력이지요. 그래서 주인은 종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종에 대한 의무나 책임은 없습니다. 반대로 종은 의무와 책임은 있지만 권리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9절 말씀은 시작부터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여기서 ‘그들’이 누구지요? 종들을 말합니다. 돈 주고 산 노동력 말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은 절대로 어떤 모양으로든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인들에게 종들을 나를 대하듯하고 종을 나를 섬기는 것처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당시로서는 상상초자 하지 못할 요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인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복음의 원리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사 속에는 이 원리에 그대로 순종한 대단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덕삼 장로라는 분이 아닌가 합니다. 아마도 다들 잘 알고 계실텐데요. 이 분이 예수를 믿기 전에 그 집에는 이자익이라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부가 먼저 예수를 믿고 조덕삼 장로님은 한 참 후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참 난감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를 세우게 되었는데, 조덕삼씨가 아니라 마부였던 이자익 씨가 장로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덕삼 성도는 그 때부터 교회 안에서는 이자익 장로를 교회의 장로로 존중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덕삼 성도가 집으로 가면 그 일을 되갚아 주려고 이자익 장로를 함부로 대했을까요? 그랬을리가 없습니다. 그랬다면 교회 안에서도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겠지요. 이 두 분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조덕삼 장로님이 엄연히 존재하는 종과 주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기 종을 장로로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고, 주인과 종의 관계 안에서 이자익 장로를 그리스도인 답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들을 위한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주신 말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주인에게 종을 주님처럼 대하고 주님을 섬기듯 하라고 하셨다고 해서 주님께서 종과 주인이라는 관계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관계는 그대로 놓고서 그 관계 안에서 순종해야 할 말씀으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주인들에게 종이 되어서 자기 종을 섬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자리에서 자기 종들을 주님 대하듯이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인의 자리에서 자기 종을 주님께 하듯 섬기는 것일까요?


일단 예수를 믿으면 자기 종을 이전과 같이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전에는 비인격적으로 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취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주인이기 때문에 종에 대해서 가지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무시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가장 바람직한 일은 아무래도 그 종을 풀어주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제는 최대한 인격적으로 대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잘 대해 주어야 합니다. 또, 주인으로서 종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될 수 있는대로 넉넉하게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종을 ‘위협’하면 안됩니다. 말이나 매질로 종을 겁 주거나 그런 식으로 종의 순종을 얻어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위협을 가는 것은 사실 가장 손쉽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종은 절대로 자기 주인에게 주님께 순종하듯이 순종할 수 없고, 주님을 섬기듯이 기쁜 마음으로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을 협박하는 것은 그 종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박이라는 일 자체가 악한 일이라는 사실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 종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정말 잘못하는 것입니다.


종을 협박하지 않는 것이 주인이 소극적으로 자기 종을 섬기는 방법이라면, 가장 적극적으로 자기 종을 섬길 수 있는 방법은 그 종이 주님께 하듯 자신에게 순종하며, 자신을 주님께 하듯이 기쁘게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은 기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그 주인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어떻게 해 주셨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흉내내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종들에게 돌려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백성들인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렇지만 그저 형식적으로 마지 못해 하는 복종이라면 몰라도 하나님께 기쁘게 순종하고 그 분을 즐겁게 섬기는 일은 그것을 우리의 의무로 받아들인다고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온전한 순종과 기쁜 섬김은 언제나 감동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옵니다. 그렇게 높으신 하나님이 이렇게 낮고 자격 없는 나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인내와 기다림을 깨닫고 우리의 영혼이 거기에 감동될 때,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분을 섬기는 일은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순종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도 똑같습니다. 순종과 섬김이 억지춘향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려면 사람이 사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주인이 주인으로서 자신의 종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종들은 주인에게 기쁘게 순종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주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자기 주인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종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이 주인의 자리에서 종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3. 을을 섬기는 것이 갑의 소명이다. 


오늘날에는 종이 없지만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종과 닮은 자리, 그러니까 아랫 사람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하직원이나 후배직원, 고용인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 위계질서로 볼 때 아래에 있는 사람들, 매일 만나는 택배아저씨나 아파트 경비원들,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들이나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점원들, 식당 종업원분들, 또 나를 기준으로 보면 나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내가 이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면 절대로 안되지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실제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누구든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주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군가가 갑이 되고 누군가는 을이 되는 일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을이 되는 일 뿐만 아니라 갑이 되는 일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자체가 유지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우리의 을인 사람들, 우리가 나의 을이라고 여기는 그 사람들을 협박하고 겁주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감동시켜 그들을 을의 자리에서 기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돕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요즘 기독교 기업을 자처하는 한 대기업이 직원들에게 법으로 정해진 임금과 휴가조차 제대로 주지 않다가 적발되어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우리들도 부끄럽지요. 그런데,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과 함께 식당에 갔을 때, 표현은 안 해도 가끔씩은 너무 많이 부끄럽고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감사기도를 합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기도해도 되는데 꼭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들을 정도로 크게 기도합니다. 대개 그리고 나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요. 물론 다 그러시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이 조금 늦게 나오면 종업원을 불러 함부로 언성을 높이고, 반찬이 하나라도 빠지면 득달같이 재촉합니다. 무언가를 더 달라고 할 때는 정중하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명령하듯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분들을 인격적이고 정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아주 중요한 소명입니다. 


우리가 더운 여름 날 우리 집에 무거운 물건을 배달해 준 택배아저씨에게 활짝 웃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일부러 준비해 차갑게 준비해 놓은 캔 커피 하나를 손에 쥐어 드린다면, 식당에 가서 종업원들을 낮은 목소리로 대하고, 여분의 반찬을 가져다 주었을 때,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한다면, 내가 고용한 사람들이나 나의 부하직원들을 나를 위해서 내가 못하는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로 여기며 언제나 고마움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한다면, 그 분들은 분명히 나로 인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더 즐겁고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더 잘 하고 더 제대로 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세상은 밝고 행복한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단장할 때, 교회 인테리어를 해 주신 사장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한 가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 점이 있었습니다. 예배실과 계단, 그리고 식당 바닥 공사를 할 때는 이 분이 직접 하신 것이 아니라 각 분야 분야 마다 다른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 사장님의 외주를 받아 일하시는 분들이었지요. 그런데, 본당 강화유리문을 달 때였던가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장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분들 너무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 분들은 제가 못하는 일을 해 주시는 분들이고 저는 그 덕분에 먹고 사니까요.”라고 말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사장님의 얼굴에서 그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니 그 분들 역시 일을 참 열심히 하고 계셨습니다. 참 편안한 표정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들이 모두 길게는 십 몇 년, 짧게는 칠년 이상 함께 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중에 그 사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장님은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고, 여러 말씀 나눠보고 일하시는 모습 보니까 예수 믿는 것이 참 어울릴 분이라고 말이지요. 


저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이렇게 거칠고 삭막해지고, 또 이렇게 부정직하고 성실하지 못한 세상이 것이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이 분처럼 생각하고 이 분처럼 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혼자 살지 못 합니다. 무슨 일이든 혼자 하지 못합니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과 섬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일하고 열매를 남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그저 경제적인 관계로만 생각하고, 이익을 중심으로만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수고해 주고 받은 댓가로 받은 물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이런 거래관계가 아닙니다. 그 거래관계 때문에 생겨난 사람들의 관계이고 그 관계 안에서 주고 받는 마음과 인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는 고마움의 문화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돈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누가 누구의 필요를 채워주느냐에 따라 결정된 갑과 을의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그저 힘이 있으면 갑이 되고,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는 갑질을 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것 때문에 자신이 사는 세상이 얼마나 매마르고 거친 정글이 되어 가는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도 나를 위해서 일하고 또 나를 섬기는 사람들을 크고 작은 갑질로 대하면서도 세상이 왜 이러냐고 세상 탓만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우리가 바라는 그런 세상이 되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갑이 을을 을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 을이 더 즐겁고 더 기쁘게 을의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렇게 자신의 을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을들이 신나서 일하며 자신이 사는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비록 이 세상에서는 위 아래가 있고 갑과 을이 있어도 그 모든 사람들은 전부다 하늘의 상전을 모시는 종들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상전은 우리를 외모로 보지 않으십니다. 내가 위에 있느냐 아래에 있느냐, 갑이냐 을이냐로 나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내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느냐로 나를 평가하시며, 우리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한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시고 상주십니다. 


4. 결론 : 상전들아, 갑질이 없는 아름다운 갑들이 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또 나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있나요? 우리 그런 분들을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다. 그런 분들일수록 더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더 마음을 실어 대해줍시다. 그들을 나를 위해서 나의 일을 해 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여기며, 그래서 내가 마땅히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그렇게 대해 주며 사십시다. 그래서 그 분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일할 때, 자기 자신의 일을 할 때, 더 열심히 더 기쁘게 더 제대로 일할 마음을 갖게 도와 주십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에 놓으시고, 갑의 자리에 세우신 이유이며, 이 일은 하나님을 상전으로 모시는 우리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닮은 아름다운 갑들이 되어서 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돕고 섬기는 칭찬받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고, 이 세상에 있는 가장 껄끄러운 관계를 가장 복된 관계로 가꾸어 가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나도 하늘의 상전을 모시고 사는 종에 불과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2. 나의 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주님처럼 대하게 하소서. 
  3. 나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 나를 위해 일해주는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돕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