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에베소서 6장 10-13절
- 들어가는 말
제가 신대원에 다닐 때, 구약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있고 없음’에 대해서 설명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이 세상에 있지만 없다고 생각되는 것, 또 없지만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학생 한 명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런 것들에 대한 몇 개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다그치는듯한 말투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학생, 정신이 있어 없어?”라고 말입니다. 질문이야 원래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그 질문을 들은 학생은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그 질문이 마치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냐고 추궁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있지만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눈에 전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들이 참 많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은 있습니까? 영혼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기는 있는게 맞습니까? 그렇지요? 분명히 있는 게 맞습니다. 증명할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이렇게 한 번 말해 보십시오. “당신은 영혼도 없는 인간입니까?”하고 말입니다. 아마 불같이 화를 낼 것입니다. 자신을 모독했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 사람은 왜 자신이 없다고 믿는 것을 없다고 했는데 왜 화를 낼까요? 실은 그 사람도 아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 또한 자기 안에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이 바로 자기 자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몸만 있고, 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전혀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영이시고,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들을 믿고 소망하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니까요.
사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보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영혼이나 영적인 일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근래에 조금은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점점 자기 영혼과 영적인 일들에 대해 관심이 떨어지고 현실에만 집중하는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는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다고 쳐도 우리가 이렇게 되어가는 것은 절대로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혼과 영적인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우리가 지금 이 길로 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너무 현실적인 관심에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현실적인 기도제목이 주를 이룹니다. 강단에서 들려지는 말씀도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사실 기도나 설교만큼 영적이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에 또 없는데, 그런 것들도 현실적인 관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우리의 신앙이 영적인 차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마치 원래부터 기독교 신앙 속에 그런 것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옛 어른들이 남긴 책들을 읽어보면, 그 분들은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는 것, 그리스도와 더 온전히 연합하는 것, 하늘나라의 영광을 맛보는 것, 하나님을 누리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그리고 그 목마름을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것,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것… 주로 이런 것들을 사모했고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얻었을 때, 그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그 심한 고난과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믿고 정말 행복하십니까? 정말 만족하십니까? 마음에 든든한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이런 부분에서 그들은 알 수 없는 비밀스런 은혜 속에서 산다고 자부하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성도들과 대화를 나눌 때, 저를 참 안타깝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뻐할 조건이 되어야만 기뻐하고 평안할 조건이 충분해야만 평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요즘 평안하시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뭐 평안할 일이 있어야지요?”하고 말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그게 바로 신앙이 하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고, 미래는 불투명 한데 나를 평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마음에는 여전히 기쁨이 흐르게 만들어 주는 것, 오히려 너무 걱정이 없어서 그게 더 걱정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정말 얻고 싶어하는 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속상해하고 억울해 해야 한다면 바로 내가 이런 은혜를 모르고 있고 또 이런 나에게 은혜가 부족하다는 것에 속상해 하고 억울해 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은혜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꼭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부어주시는 이런 영적인 은혜들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진짜 문제는 여러분의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지금 현재의 모습이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현실이 그런데 거기다가 영적인 은혜마저 고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까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것을 그대로 놓아두시면 안됩니다. 그저 그러려니 해서는 안됩니다. 꼭 채워달라고 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이 (이렇-게) 그 은혜로 채워져 올라오는 것을 스스로 느끼실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구하고 또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구하는 것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복을 알고 또 이 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남들은 꿈에도 소원이 통일이라고 하지만 저에게 꿈에도 소원은 여러분이 이 복을 알고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제가 목회하고 있고 저는 여러분이 이 복을 얻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과 신앙의 관건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삶의 조건이 변하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이제는 여러분 자신의 영혼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추시고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관심의 초점과 중심을 그렇게 바꿔낸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사실 것입니다. 훨씬 더 기쁘고, 훨씬 더 평안하며, 훨씬 더 풍성한 삶을 사실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도 훨씬 더 가치있는 삶을 사시게 될 것입니다. 제 말이 믿어지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자기 영혼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게 하셔야 합니다!(↑) 거기 여러분의 삶과 신앙의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셔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꼭 그런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생은 영적인 전쟁터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바울이 6장 10절부터 20절까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우리 삶과 신앙의 영적인 차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교회와 성도가 싸우고 있는 영적인 싸움과 그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이 엉뚱하게 바뀐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에베소서 전체를 마감하는 결론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 되지요?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을 영적인 전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흘려 보내 세상을 회복시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집으로 삼으셨지요. 그런데, 교회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성도의 삶, 그러니까 실제의 생활을 통해서 입니다. 성도가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아름답고 구별된 삶을 살 때,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닮은 모습으로 회복되어져 갑니다. 이것이 바울이 지금까지 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을 치열한 영적인 전쟁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동안 우리에게 요구했던 것들은 모두 선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살면 세상이 좋아하고 환영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그렇게 살려고 하면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방해가 있구요.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은근히 압력을 넣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분명히 옳은 일인데, 선한 일인데 그렇습니다. 반면에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방식으로 살면 크게 고상하고 향기롭지는 못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불편도 없고, 손해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도 편안하게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이상하지요? 그게 아닌데, 옳은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살면 그렇게 스무스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항상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 벌어지는 영적인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3. 영적인 전쟁에 이기려면 충분히 강해야 한다.
우리 10절을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끝으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바울은 먼저 이렇게 요구합니다. “Be strong!” “강하라!”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이 말은 원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서 있었던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말입니다. 그 때 여호수아는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Be strong!” 강해라! 담대해라!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항상 너를 이기게 할 것이니 겁내지 말고 가서 약속한 땅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성도의 삶도 이와 똑같습니다. 성도의 삶은 전쟁터입니다. 느끼든 느끼지 못 하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는 이미 영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키는 쪽이 될 때보다는 공격하는 쪽이 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악한 원리와 사탄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그 곳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할 때, 그것은 우리가 사탄의 땅을 빼앗으려고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공격하면 사탄이 가만히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이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행한 선이 자신들의 이익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달려 듭니다. 왜 남의 땅에 함부로 들어와서 설치냐고 으름장을 놓고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겁을 내고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싸워 보지도 않고서 뒤로 물러 납니다. 그러면 힘들지 않게 제 자리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쟁 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저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은 더 신이 나서 더 맹렬하게 공격해 옵니다. 결국 그나마 우리가 지키고 있던 땅까지도 빼앗아 버립니다. 사실 이런 일은 이미 한국교회 안에서 충분히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동안 교회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악한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선을 행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정말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교회가 그래도 되는 줄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세상이 교회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과 교회는 세속화되었습니다. 세상이 교회 덕분에 선해지고 깨끗해 진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닮아 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교회가 세상보다 더 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딱히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도 개인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벌이고 있는 이 전쟁은 두렵습니다. 그 반대와 핍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쟁 앞에서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물러서고 싶고 모르는 척 하고 싶어 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그러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강해져야 합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 전쟁을 치러낼 만큼, 사탄이 자기 땅처럼 차지하고 있는 이 세상 구석 구석, 우리의 삶의 자리 자리를 다시 하나님의 땅으로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영혼은 충분히 강해야 합니다. 이 강함과 담대함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그 귀한 일을 하지 못하고 결국 우리의 삶의 자리도 사탄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정신과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판을 치도록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잘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과연 그렇게 사탄이 자리 잡고 있는 내 삶의 자리가, 세상의 정신과 마음이 들어와 판을 치고 있는 나의 마음 속이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대로 천국을 닮은 곳이 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우리는 내가 분명히 예수를 믿고 있는데도 내 삶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마음에 평강과 은혜가 없는 것이 혹시 내가 싸워야 할 싸움을 계속 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싸움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지금도 우리 영혼과 마음 속에서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부인해도 전쟁은 벌어지고 있고, 피하려고 해도 나는 지금 전쟁터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싸움을 피하지 않고 뛰어 들어서 싸움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충분히 강해지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내가 강해지고,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는 의지, 꼭 그렇게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사탄에게 지고만 사는 것도 지긋 지긋하니까 이제는 좀 이기고 살아 보아야 하겠다는 거룩한 오기가 생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강해지고 싶으십니까? 피할 수 없는 이 영적인 전쟁에 뛰어들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강한 영혼을 가지고 싶으십니까? 지금 이 소원만큼은 우리에게 확실합니까? 이 소원이 있고, 이 의지가 있어야 우리는 싸울 수 있습니다. 싸워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우리는 비로서 우리의 마음과 삶의 자리를 하나님 이 다스리시는 기쁨과 평강이 있는 곳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4. 영적인 강건함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온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의 영혼이 강해져야 한다는 의지이지만, 사실 이것만 가지고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강함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번째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맨몸과 싸우려는 의지로만 전쟁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싸움에서 지고 치명상을 입게 마련이지요. 어떤 전투이든 전투에서 이기려면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보호장구들도 있어야 하고, 그러는 동시에 적들을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공격할 무기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있어야 하며 우리는 우리 영혼을 그 모든 것으로 빈틈 없이 완전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는 특별한 빈틈이나 약점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11절을 함께 읽어 볼까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전신갑주는 왜 전부 다 있어야 합니까? 거추장 스럽게 왜 다 갖춰 입어야 하지요? 마귀의 간계 때문입니다. 마귀가 워낙 머리가 좋고 치밀해서 우리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고, 그 곳을 파고 들어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할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수천년 동안 성도들과 싸우고 또 싸워왔기 때문에, 그 싸움에서 수많은 성도들을 쓰러뜨려 봤기 때문에 우리들에 대한 데이터가 엄청나게 쌓여 있습니다. 사람의 스타일 별로 어디가 약점이며 거기를 어떻게 공격하면 힘 없이 쓰러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탄은 굉장히 약삭빠릅니다. 그래서 절대로 정공법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를 기습하고 속임수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갑작스럽게 유혹합니다. 그러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 정도 쯤은 괜찮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다 그렇게 산다고말하지요. 너무 유별나게 그러지 말라고, 너무 지나치다고, 너 왜 그렇게 피곤하게 예수 믿느냐고 말합니다. 사탄의 이야기는 항상 그럴 듯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은밀하고 세속적인 욕구들을 살짝 살짝 건드려 주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그 말에 속아넘어 가는 순간, 우리 삶은 거기서 부터 마치 나뭇단 쓰러지듯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대단한 것 같아도, 참 허약하지 않습니까? 수십년 동안 믿었는데, 작은 시험하나 때문에, 작은 게으름과 그 게으름을 합리화한 것 하나 때문에 모든 은혜를 까먹게 되고, 영혼은 푸석푸석하게 됩니다. 게다가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은 또 왜 그렇게 더디고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약점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우선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약점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벽하게 보호하고 가려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 좋고 약삭빠른 사탄의 속임수를 이기고, 마지막까지 든든히 서서 그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5. 다시 한 번, 인생은 영적인 전쟁이다.
우리는 앞으로 몇 주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전신갑주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일깨워 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는 언제나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인생에 성공하고 이기는 것보다 이 전쟁에서 끝까지 버티고 승리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이 우리 삶의 본질이고, 이 전쟁의 결과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영광스럽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생활인입니다. 겉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 전체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싸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싸움,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시작된 거룩한 전쟁이 벌어지는 영적인 전쟁터 입니다. 그 전쟁의 승패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탄이 이길 수도 있고 하나님이 이기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과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닮아갈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결정은 그 누가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강해야 합니다. 그 싸움을 싸우고,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그 싸움에서 이길 정도로 충분히 강해야 합니다. 이 강함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들로 완전무장해야 합니다. 빈틈 없이 말이지요.
6. 결론 : 다시 강한 군사가 되자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도입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우리 삶의 겉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가지는 영적인 차원이 우리 인생의 관건입니다. 성도는 그 부분을 잘 챙겨야 하고, 바로 거기서 승리해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나 하나 살펴 볼 때마다, 내가 그 모든 것들을 입고 있어야 곳에 잘 입고 있는지 잘 점검하시는 기회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하나님의 강한 군사,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군사로 다시 서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가 언제나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 앞으로 말씀을 살필 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은혜를 주소서.
- 이 싸움에서 끝까지 견디고 이기게 하소서. 인생의 진짜 싸움에서 지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