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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7.01.06. 신년특별기도회 - 5.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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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7년 1월 6일 금요일

본문 : 히브리서 11장 17-19절




아브라함을 설득하시고 사라를 설득하셔서 두 사람에게 믿음을 주셨던 하나님은 드디어 약속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100살, 그리고 사라가 91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의 믿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자기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준비시키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믿음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낳은 아들, 약속과 믿음이 낳은 아들, 기적으로 얻은 아들… 그 아들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각별했겠습니까? 아마도 두 사람은 이삭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매일 매일을 웃음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통해서 큰 나라를 이루고 많은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했으니 이삭을 통해 그 창대한 가정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삭이 태어나고 난 후, 이스마엘과 하갈 사건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가정은 정말 행복하고 평안한, 부족할 것이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불쑥 찾아오셨습니다. 항상 이 ‘불쑥’이 불안한 건데요.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게 무슨 청천병력입니까? 도대체 무슨 하나님이 이렇습니까? 달라지도 않은 아들, 받으라고 받으라고 해서 받았고, 그래서 이만큼 키워 놓았더니 갑자기 나타나서 한 다는 말이 아들을 도로 내놓으랍니다. 그것도 그냥 내놓지 말고 네 손으로 번제를 드려 돌려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아마 저라면 하나님이고 뭐고 간에 조목 조목 대놓고 하나님의 부당함과 잔인함에 대해서 따지고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만 놓고 보면요. 아브라함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저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떠납니다. 그리고는 돌제단에 이삭을 올려놓고 자기 손으로 칼을 치켜들 때까지, 오히려 하나님이 급해지셔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뜯어 말리실 때까지 그 모든 일들을 일사천리로 진행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제물로 제사를 지내고 산을 내려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죠? 뭐라 뭐라 말해도 이건 아브라함의 완전한 한판승이니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야! 정말 아브라함의 믿음은 대단하다.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시니 그 생때같은 자식을 진짜로 바치네. 정말 아들을 제물로 드리네. 그 순종이 정말 어마 어마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정말로 아들을 드렸다는 사실 자체, 그의 순종에만 집중할 때가 많지요. 그렇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무엇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순종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통해서만 수많은 자손들이 태어나게 하고, 많은 나라들을 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이 약속과는 완전히 모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도 같이 깨져 버리고 마니까요. 아브라함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외아들을 드렸다’는 말로 그가 처했던 진퇴양란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요? 아브라함은 이상하게도 하나님께 “이 두 가지는 앞뒤가 맞지 않지 않습니까?”라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즉각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동안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된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다는 것, 그리고 둘째,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 아브라함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서 비싼 수업료를 주고서 이 두 가지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약속은 바로 이삭을 통해서 많은 자손을, 그리고 많은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 약속만큼은 꼭 지키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은 바꿀 수 없는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변한다면 다른 것이 변해야 합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였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지가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죽인다면 하나님은 이삭을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이삭을 다시 살리셔야 합니다. 다른 옵션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삭에 대한 약속이 깨져 버리고 마니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셨을 때, 즉각적으로 이 사실을 생각해 냈던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일, 그것도 목을 치고 각을 떠서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아들을 잡아 제물로 드리는 그 아픔과 고통은 기꺼이 자기 몫으로 감당하기로 하고서 그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당황하셨던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차 했으면 진짜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요.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뜯어 말리시는데 성공하셨고, 그렇게 해서 모든 일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약속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그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가요? 물론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정말 대단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아들을 제물로 드리기 직전까지 갔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짜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는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약속 하나를 단단히 붙들게 되었을 때, 그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은 아들을 살리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바로 그 믿음으로 그는 자기 손으로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순종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고, 그 순종을 통해서 우리도 더 복되고 온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 또한 이 순종을 통해 커지고 단단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이 정말 이런 것까지 나에게 요구하실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정말 말이 안되고, 그렇게 하면 분명히 손해 보고 어려워지고 실패할 것이 뻔한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되지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이럴 때 순종은 어려워지게 되고, 우리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담임목회지를 찾을 때도 하나님은 그러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나님을 찾을 때는 가만히 계시더니 갑자기 사람들을 통해서 저에게 이렇게 물어 오셨습니다. “너 싱가포르에 갈래?” “너 미국에 부교역자로 갈래?” 또 “너 너보다 훨씬 어린 목사가 있는데, 그 교회 부목사로 갈래?” 이런 질문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라서 저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그 중에서 몇 개의 질문들은 두렵고 싫기도 했구요.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그 질문들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항상 함께 할테니까”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이 믿어졌고 그래서 하나님께 그 질문들에 대해서 “네!”라는 대답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다 하나님의 시험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질문들을 통해서 “너 정말로 나만 믿고 따라올 수 있어?”라고 묻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마터면 그것도 모르고 홀딱 넘어갈 뻔 했었지요. 


우리가 아브라함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 하나를 흔들림 없이 단단히 붙드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과 능력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하나의 약속’을 단단히 붙들 때, 우리는 우리 삶을 뒤흔드는 어려움과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들도 너끈히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모든 어려움과 시험들을 내가 붙들고 있는 그 하나의 약속 안에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나치의 치하에 있을 때, 모든 성공의 기회를 마다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저항운동을 벌였던 본 회퍼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결국 이 분은 감옥에 계시다가 2차대전이 끝나기 한 달 전에 사형을 당하셨는데요. 이 분이 사형당하시던 해,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써서 보낸 ‘선한 능력으로’라는 제목의 시가 있어서 그 일부분을 좀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한 번 찬찬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은 “선한 능력으로”입니다. “선한 능력으로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 쌓여서 / 보호받고 위로 받는 이 놀라움 속에 /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 선한 능력으로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이 고요하고 평안한 시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쓴 시라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본 회퍼 목사님은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의 약속을 믿었으며, 그 분은 이미 그 약속의 성취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는 그 밖의 모든 일들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능력으로 보호받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한 해,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붙드시겠습니까? 붙들고 살아갈 약속이 있으십니까? 꼭 성경에서 여러분이 확실히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만큼은 분명히 지키실 거다 싶은 그런 약속을 하나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그 믿음이 한 해 동안의 모든 일들을 견디고 이기게 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어기시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상황들 속에서도 평안과 담대함을 잃지 않게 해 줄 것이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어 가 줄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본 회퍼 처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여러분을 믿음으로 복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강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지혜롭게 해 주시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2017년 한 해도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의 삶,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는 우리들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