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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20.04.19. 요한복음 15장 7-17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1)"(요한 53)

 

 

날짜 :  2020년 4월 19일 일요일

본문 :  요한복음 15장 7-17절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그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해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참으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그 길을 벗어나 버렸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말이지요.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얻은 것은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목마름과 배고픔이었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여기에 행복이 있고, 저기에 구원이 있다고 어림짐작하며 아무 곳으로나 달려가는 정처없고 불확실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지지난 주에는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하는 질문과 관련해서 제가 경험했던 일을 들려드리는 일로 설교를 시작했는데요. 아무래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입니다”라는 대답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주신 구원자요, 우리의 주인이신 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생각할 때, 이 말을 그저 영적으로만 해석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우리 인생도 구원하셨습니다. 철로를 벗어난 열차처럼 가야 할 곳도, 가는 방법도 모르는 채로 실체도 확실치 않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불안하고 정처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손수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정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흠 없고 점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한 없이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이루신 완전한 의가 누더기 같은 우리의 의에 덧입혀 졌고, 그래서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삶은 우리의 의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가장 이상적인 모범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한 사람으로 사셨던 예수님의 인생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최고의 모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꺼려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이 보다 더 큰 오해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늘 우울해 하셨을까요? 슬퍼하시고 불행해하셨겠습니까? 그래서, 빨리 할 일 다 마치고 저 천국에 올라갈 궁리만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기쁘게 사셨습니다. 정말 행복하셨고요. 밥을 굶을 때도 있었고, 심한 고난도 당하셨으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실 때도 많았지만, 그런 것들이 예수님의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가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밥을 굶을 때에도 만족하셨습니다. 고난 중에도 즐거워 하셨고, 슬퍼하시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헤집어 놓을 때도, 여전히 그 분의 마음에는 평강이 넘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모르는 새롭고 충만한 삶의 비결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지난 주일에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의 앞부분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는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가지에게 열매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열매가 없는 가지는 죽은 가지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때가 되면 그런 가지는 다 정리해 버리십니다. 다른 가지가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잘라내고, 또 불태워 버리십니다. 그러니, 가지의 입장에서는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가지는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기면서 말이지요. 

이것이 3절부터 6절까지의 내용인데요. 6절까지가 이 비유의 어두운 부분이었다면, 7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할 때, 우리 삶에 맺혀지게 되는 풍성한 열매들이 무엇이며, 우리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비유의 밝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부분을 가만히 살펴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들이 그저 저 멀리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구름 위에서 홀로 빛을 내뿜는 천상의 진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거친 인생 전체를 통해 분명하게 검증된 가장 성공적인 인생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의 인생은 행복했습니다. 기쁨이 가득했고요. 예수님의 인생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간혹 진하고 어두운 색들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찬란하고 밝은 색들이 그 어두운 색들을 압도하고, 오히려 어두운 색들이 그 밝은 색채들을 더 도드라지게 해 주는 그런 그림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건 예수를 믿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모두가 다 인정하는 것인데요. 예수님의 인생에는 최상의 열매들이 가득 했습니다. 우선 저와 여러분,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그 열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되찾게 된 우리의 새롭고 참된 인생이 그 열매이고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런 열매들은 계속해서 열리고 또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춰주신 진리의 빛 덕분에 이 세상도 빛을 얻었습니다. 문화와 문명이 그 빛 위에 세워진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열린 것 또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덕분이었으니까요. 단언하건데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외적인 성과면에서나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우리 인생을 위한 최고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일 때, 우리 안에 예수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뜨거운 소원이 다시 생겨나게 하시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서는 변화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선 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얼핏 보기에는 만능의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처럼 보이는 이 말씀은 실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 안에서만 사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명처럼 여기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누리며, 그 사랑에 의지하여 사셨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만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모든 기도를 전부 다 들어주셨습니다. 이적을 행하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예수님은 늘 하늘을 우러러 감사를 드리거나, 간구를 드리셨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하신 모든 일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맺혀진 열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원리가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셨듯이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듯이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행하는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8절 뒷 부분에서 예수님은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말씀은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가 제자의 자격증을 딸 수 있게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삶을 실제로 살아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름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제자는 스승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나의 제자가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너희도 나처럼,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될 수 밖에 없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셨기에 예수님은 그렇게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셨나요?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거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 삶으로 품어내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모든 것을 공급받듯이 기도를 통해 하늘로 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으면서 살고 또 일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살아가신 방식이고 또 예수님의 삶에 그렇게 많은 열매가 열린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들은 늘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틀 안에서 우리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삶의 모든 결정들이 이루어질 정도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내면의 법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며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들이 많이 맺혀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분의 제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고 초대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본능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은 지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말이지요. 가만히 한 주간 우리가 품었던 감정들과 생각, 그리고 선택했던 행동들을 되돌아 보십시오. 한 주간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지켜내기 위해, 그 분 안에 거하기 위해 얼마나 힘을 썼나요? 우리의 생각과 감정, 판단과 선택은 어느 정도나 예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았지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선택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바꿔낸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지난 한 주간은 혹시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과 상관 없이 그저 흘러가 버린 것은 아닙니까? 지금 나의 마음이 공허하고, 삶이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은 혹시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 없이 그저 상식과 본능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성도의 삶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순간 순간 의식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노력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꽉 채워줄 좋은 열매가 맺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삶을 실례로 들어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들이 처하게 될 운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밖에 버려져서 말라가다가 불태워진다고 말이지요.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를 겁주고 협박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적당한 말로 얼버무리시는 대신에 진실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살다가 열매 없는 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안타까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가지가 열매맺는 것을 선택할 수 없듯이 성도도 그렇습니다. 성도는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열매가 없으면 안되지요. 그런데, 열매를 맺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요. 열매는 가지가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가지를 통해 맺는 포도나무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매맺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생명의 원리를 알려주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니,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그 사랑 안으로 초대하고 계신 것이고요.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은 참 거칠고 힘겨운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셔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쁘게 사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삶은 너무나 역설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설적인 삶을 가능케 한 능력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쏟아부어주시는 사랑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받고 누리며, 그 사랑의 능력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형되신 다음, 곧바로 그 영광을 내려놓고 다시 산 아래로, 그러니까 십자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가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주는 기쁨과 만족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그 힘으로 하늘영광을 초개와 같이 내려놓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누리며, 예수님의 강하고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5절 이하에서 이 사랑 안에서 사는 삶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이 아름답고 힘찬 노래가 우리가 매일 우리의 삶으로 부르는 찬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이 되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사랑 속에 담겨있는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안에 거하라고,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그것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 중에서 예수님의 사랑보다 더 좋고 더 능력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예수님을 따라 저도 여러분에게 마음을 다해 권면합니다. 다른 것을 붙들려고하기 전에 예수님의 사랑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알아가는 일에 힘쓰시고요. 그리고 늘 죽음보다 강한 우리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어떤 상황, 어떤 형편 속에서든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게 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을 늘 주저앉게 만드는 것들을 이기며 능력있게 살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능력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에게 복되고 능력있는 삶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안에 거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만 믿으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생각의 법칙으로 삼고서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그것이 예수님의 삶에 맺히는 좋은 열매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그 분께 붙어있는 가지이며, 그래서 예수님께서 맺으신 그 열매를 맺어야만 하니까요.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두고서 살아야 하고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우리 삶에서 맺히는 좋은 열매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을 확신하며, 그 힘으로 사셨지요. 예수님께서 모든 시험과 고통을 넉넉히 이기고 당신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로 채워가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알고 또 확신하고 계셨던 하나님의 깊고 큰 사랑덕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래서, 그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병들거나 가난할 때에도, 시험을 당하고 환란 가운데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죽음보다 강한 예수님의 사랑,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그 끈질긴 사랑에 매여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열매맺지 못하게 하는 모든 시험과 어려움을 이기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죽음보다 강한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이끌어 가는 내면의 법칙이 되게 하시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충만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여주신 이 귀한 인생의 원리를 따라 살아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우리 주님 닮은 가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1. 늘 예수 안에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생각과 마음, 삶을 이끄는 내면의 법칙이 되게 하소서. 
  2. 어떤 형편, 어떤 상황에서든지 죽음보다 강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확신하며 살게 하소서. 그 능력으로 견디고 이기며 열매맺게 하소서. 
  3. 하루 속히 코로나 사태가 종결되게 하시고, 이후의 이 세상이 혼동에 빠지지 않고 속히 제 자리로 돌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