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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105.10.06.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라 9-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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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0월 6일 화요일



저도 목회자이지만, 요즘 교회 안에서는 사람의 죄에 대해서 다루는 설교를 들어보기가 참 쉽지 않아졌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저 그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 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그 첫 단추입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는 이유 자체가 인간이 죄인이고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예수를 믿는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의 모든 이야기들은 이 일 다음에 덧붙여지는 일들입니다. 또한 죄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도 결정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기게 만들고 그게 심각해 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목사들 중에서 기독교가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죄의 문제가 우리 신앙에서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은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죄 문제를 거론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 진 현대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들 그것이 교회일 수 있겠으며, 그것이 또한 기독교의 신앙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되어 가는 것처럼 여겨질 때, 에스라의 귀에 아무 심각한 백성들의 죄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렵게, 기적적인 은혜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심지어는 레위인들 중에서까지 주변의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삼은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 중에서는 그 이방족속들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바로 그런 일 때문에 나라가 망했고, 70년 동안이나 포로로 잡혀가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본토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런데도, 심지어는 레위인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졌습니다. 속옷과 겉옷을 찟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티끌 위에 앉아서 정말 기가 막혀하며 하나님께 그 죄악을 고백하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에스라는 계속해서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오늘 저를 비롯한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교회보다도 더 세속화되어 있고 더 타락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목회자 자신이 그렇게 된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또한 목회자 자신도 망가져 있지만 이렇게 울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이미 이 땅의 다수의 목회자들은 그런 모습 자체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이것이 생각있는 분들이 지적하는 조국교회의 깊은 질병인데요. 지금 우리는 이 땅의 교회들이 숫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위해서 기도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질병이 치료되도록 그 무엇보다도 열심히 부르짖어야 할 때이지요.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이 땅의 목회자들이 무엇보다도 타락하고 더럽혀진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도록, 그 문제로 눈물로 회개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저의 죄와 우리의 죄를 붙들고 눈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스라가 그렇게 울고 있을 때, 많은 백성들이 함께 그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때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인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말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지만 그런 죄를 지은 사람들이 그렇게 얻은 아내와 자녀들을 내어 쫓으면 될 것이니 빨리 일어나 그 일을 주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실 죄라는 것은 때로 이렇게 단호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죄는 그 죄의 결과까지 책임지려고 할 때, 그 때야 비로소 그 악한 영향력까지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이렇게 쉽게 죄에 휘둘리는 이유는 죄에 대한 이런 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렇다’는 말로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죄악과 그 결과물들을 내버려 두니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스가냐의 말을 듣고 일어서서 그 일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그 자리에 모여든 백성들과 레위인들에게 그 죄에서 그렇게 떠날 것을 맹세시키고 나서 그는 다시 한 번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이스라엘의 죄를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스라엘 전역에 공포합니다. 삼일 내에 모든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여야 한다고, 오지 않는 사람들은 재산을 몰수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쫓아내 버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모여든 모든 백성들을 향해서 에스라는 ‘이방여인을 끊어버리라’는 충격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을 결행하게 됩니다. 


슬프고 아픈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아름답고 소망스러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이어야 하고 또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얼마든지 저지르면 안되는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후가 달라야 합니다. 그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그 죄로 함께 울 수 있어야 하고, 아프고 힘들지만 그 죄를 스스로 고백하며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를 부인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기꺼이 그 죄를 떠나려고 하는 것. 이런 모습이 남아 있는 한, 지금 그들의 상태가 어떻든지 그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들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오늘 좋은 교회를 세우고 또 영적인 부흥을 이루자는 이야기가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교회 안의 죄를 그냥 놓아두고 좋은 교회를 세울 수 있겠고, 어찌 죄를 통회하는 마음이 없이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죄를 깨닫고 그 죄를 고백하며 처리하는 일은 결코 어둡고 칙칙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의 장막을 거둬내고 찬란하고 밝은 빛 가운데로 나가는 일입니다. 한국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 광현교회 안에 이렇게 죄를 죄로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다루어 내는 아름다운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답고 성도는 성도 답게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