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속에서

두껍아 두껍아...

갑자기
하늘에서 
오래된 노래, 그래서 모두가 잊었던 노래 아니, 잊었으면 했던 노래가 들려온다.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께 헌 집다오."


요즘 우리나라는 많이 시끄럽다.
아니,
시끄럽다기 보다는 아마도 불안하다고 해야 맞을 듯싶다. 

천안함 사태
그리고...
연평도 사태...

사람들이 난리다.
교회도 곧 전쟁이 터질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무너질까봐
사라질까봐 그렇게 두려워하고 
안절부절하는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 동안 영원히 견고할 것처럼
영원히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애지중지하고 집착했던 것들이다. 
그래서 더 얻으려고 하고 더 지키려고 했고
더 크고 높게 세우려고 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흔들리니 
무너질까봐 사라져 버리고 떠나버릴까봐
모두들 근심하고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다. 

근심과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증거다. 
언제든지 순식간에 무너지고 주저앉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근심과 기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현실에 대한 '견고한' 실상이다.

이제, 
알겠는가?
성이 서 있게 하는 것은 성의 견고함이 아니다.
성을 지키는 것은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아니다.

성을 서 있게 하는 것도 그 성을 지키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이다.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견고한 성의 견고함도
하루 밤에 흩어져 버리는 사막 모래언덕이다. 

세상이 그것을 알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분명 세상은 그것을 알 수 없으리라. 스스로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세상은 이미 세상이라 불리지 않을테니까.)

다만 
나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만큼은 이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 '지식'위에 '현실'을 세웠으면 한다. 

그래서
다만 믿는 사람들이라도 

덩달아서
더 크게
더 넓게
더 넓게 자신의 성을 세우려 하다가

그 성을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려 하다가
그리고 더 든든히 그 성을 지키려고만 하다가

이제 그 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함께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리는 사람들,
결국 함께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어느 날,
위에서 노래소리 들려올 때, 
그 때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하며
참된 견고함은 그제서야 경험될 수 있는 것임을...

이제 
우리는 그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노래소리를 소망하며 
함께 따라부를 수 있어야 한다.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께 헌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께 헌 집 다오."


난...
지금(now)
여기(here)
내(my)
집을 어떤 집으로 생각하는가? 

헌집?
새집?
아무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