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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매일성경 설교 20. 한 사람을 회중 위에 세워서

본문 : 민수기 27장 12-23절


도입 : 21세기의 새로운 화두였던 것...

한 세기가 끝나고 그 다음 세기를 맞이하는 일은 적어도 직접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흥분하고 기대를 갖기도 했고, 또 일부에서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이 등장해서 세력을 얻기도 하고,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전산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밀레니엄 버그가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전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리더십’이었습니다. 지금도 리더십에 대한 책들은 참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 때 서점가에 가 보면 정말 말 그대로 리더십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21세기는 전혀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래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겨났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맞는 리더십이야 말로 21세기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다양한 리더십에 대한 주장이 경쟁을 벌였는데, 그 대부분은 리더십의 방법론에 대한 책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것이 ‘원칙 중심의 리더십’이라 불리는 리더십에 대한 이론이었고, 또 ‘자기 리더십’이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올바른 역할, 효과적인 역할은 원칙을 지키는 데서 나오고, 또 자기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올바른 리더십을 가지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리더십과 교회의 리더십

인간에게 리더십은 필수적입니다.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면 그 누군가는 그 사회를 이끌고 가야만 합니다. 아무리 평등과 자유를 강조하는 사회가 되더라도, 그 사회를 이끌 리더십이 없다면 그 사회는 방향도 질서도 없는 완전히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그 혼란과 고통은 그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좋은 리더십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또 세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선이나 총선이 그 나라의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적어도 향후 몇년 간은 그렇게 세워진 리더십에게 나라와 국민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데, 그 리더십의 유형과 역할에 따라서 그 기간 동안의 그 나라와 그 국민의 행로가 결정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객관적으로 보면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의 리더십은 일반 사회에서의 리더십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외형적인 생활이 아닌 그 인간의 본질이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과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삼고 또 그것을 다룹니다. 일시적인 것들이야 다시 고치고 돌이키면 되고 또 비교적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도 길어봐야 한 사람의 일평생 동안 지속될 뿐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문제 그리고 영원의 문제는 한 번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고치고 돌이키기가 훨씬 더 어렵고, 그 영향력 또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왜 거절되었는가?

아무리 위대한 모세라도, 열가지 재앙을 불러오고 홍해를 가르며 수 백만명의 사람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온 모세였을지라도 그 또한 한 명의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자신의 리더십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해 주어야만 하는 한 사람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여기 보이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아바림 산에 오르면 요단 강 건너편의 여리고가 보입니다. 약속의 땅이 훤히 내다 보입니다. 이 말씀만 보면 정말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다시 보여주시면서 반드시 그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확약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들 때문에 굉장히 안타깝고 어찌보면 잔인한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 므리바 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땅에 대한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다시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너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너는 아론처럼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또 40년 동안 이끌기 위해서 그야 말로 무진애를 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번 넘기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중보하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또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참고 또 참으면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그야 말로 죽을 고생을 하며 거기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마지막에 들은 말씀은 “너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므리바 물 사건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향해서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모세가 그 반석을 두번씩이나 분노하며 두드렸을 때,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들은 이 일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미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지만, 한 번 쯤 용서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거두시고 “내가 그 때 그렇게 말했지만 이번만큼은 용서해 준다. 너만큼은 내가 책임지고 저 땅에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게 훨씬 더 하나님 답고 은혜로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모세가 반석에게 명하지 않고 사람도 아닌 돌을 두 번 두드린 것이 뭐가 그렇게 큰 잘못인가? 그 고생을 한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께 충성한 모세가 가나안의 문전에서 쫓겨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일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또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그게 우리 생각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회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에 맞춰서 행동하시는 분이실까요? 아니면 하나님 당신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실까요? 둘 다죠. 적어도 우리 경험에는 그렇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접고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도 하시고, 또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렇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결정적인 일을 행하실 때, 또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행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일에서 그렇게 움직이시는가를 우리 쪽에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용서하시지 않으셨던 것을 보면, 므리바에서의 일이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거나 취소할 수 없을만큼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평가 속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20장의 므리바 물 사건 때 하셨던 말씀의 반복이었습니다.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물론 그 때 반석은 물을 내었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잠잠해졌습니다. 일은 그렇게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는 대신에 화를 내면서 지팡이로 두 번씩이나 반석을 내리 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않았던 일”로 평가하셨고, 바로 이것 때문에 이미 죽은 아론은 물론이고 모세까지도 가나안의 문앞에서 그 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하나님께 대한 가장 중요한 진리 하나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으신다고 말씀드렸죠? 네.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고 움직여 가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겨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려친 일로 그 동안 그렇게 고생한 모세가 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일 자체나 혹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일이 오히려 회중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석에게 명령하는 일로 물이 쏟아져 나오게 했다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을 것이고, 백성들은 그 영광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는데 모세가 그 일을 망쳐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들에게 바라시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강력한 리더십? 효율적인 리더십? 커다란 업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만약 모세가 그저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런 엄한 벌을 내리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냥 용서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백성 중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 평범한 백성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였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였기 때문에 그는 항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드러내는 방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리더십 사용의 목적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와 아론을 존귀케 하시고 그들에게 그 엄청난 리더십을 맡기시면서 요구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므리바 물 사건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그 일을  자신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그것이 그 일을 통해 드러나야 할, 그리고 백성들이 보고 경험해야 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이 드러나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런 벌을 내리셨고 또 그것을 엄격하게 시행하셨던 것입니다. 

모세 사건의 의미

일반적인 사회나 혹은 단체의 리더라면 그저 정직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자신이 이끌어야 할 사람들의 이익만 생각하면서 리더십을 행사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거기에 만족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맡겨진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우리들에게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고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일반 성도들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교회에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교회에도 리더십이 있습니다. 계급은 아니지만, 그 리더십들은 다 다른 크기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리집사의 리더십보다는 안수집사나 권사의 리더십이, 그리고 안수집사나 권사의 리더십보다는 장로들의 리더십이, 그리고 장로들의 리더십보다는 목사들의 리더십이 훨씬 더 영향력이 큽니다. 또 소모임의 입장에서 보면 평회원 보다는 임원들의 리더십의 영향력의 크기가 큽니다. 이것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몸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이 영향력의 크기가 바로 힘의 크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리더십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큰 영향력을 가진 리더십을 가진 리더들이나 혹은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영향력과 그 영향력이 주는 힘의 크기가 큰 만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도 그만큼 더 커지게 마련이며, 그래서 그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기준도 그만큼 까다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삶이나 행동, 그리고 하나 하나의 선택이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과 더 직접적이고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리더들은 자신을 직분이 없는 성도나 혹은 일반적인 사회인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리더들에게 일차적으로 맡긴 것은 교회의 효율적인 운영이나 사업의 성공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에 앞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맡기셨습니다. 더 큰 리더십은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을 자신의 리더십의 목적과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교회를 효울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그리고 사업에서 결과를 남기는 것도 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틀 안에서, 그 분의 그 분되심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리더십은 결국 우리들에게도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의 영원한 상급을 얻게 하는, 더 큰 상을 받게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목자없는 양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놓고도 정작 자신은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잔인한 선고를 다시 들어야만 하는 모세였지만, 모세는 그 말씀에 대해서 섭섭해 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제 목숨이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도 좋지만 간곡한 청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저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는 않게 해 주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지는 자신의 의미와 위치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대적인’ 리더였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모세를 하나님처럼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그 때 발생하게될 백성들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영적으로도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모세는 자신의 최후에 대한 선고를 듣는 가운데서도 모세는 자신의 안타깝고 비참한 처지보다는 오히려 백성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받게 될 벌보다 이스라엘이 목자없는 양처럼 되는 것을 더 못 견디어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목자 없는 양...” 이라는 이 표현은 어디서 많이 보던 표현 아닙니까? 그렇죠. 바로 복음서가 무리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쉴 새 없이 일하셨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이동 중에 흔들리는 보트의 이물을 베고 주무실 정도로 힘들게 일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무리들을 마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일을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쉬는 시간을 아까워하셨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같음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무리를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 분을 그렇게 몰아갔던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모세의 마음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있었고 또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있었습니다. 자신이 당한 그 비극보다 백성들의 방황을 더 안타깝고 힘들게 여길만큼 두 분의 마음을 닮아 있었습니다. 모세도 예수님처럼 혼자 어깨로 짊어져야 할 짐이 엄청나게 무거웠습니다. 자신만 바라보며 의지하는 백성들의 눈길은 그에게 영광이 아닌 중압감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정하고 처리해야할 일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은 일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리더십은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교회 리더십이 가져야 할 마음

위임된 리더십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 특히 상층부의 리더십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쉽게 망각하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리더십이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위임된 리더십을 가진 리더들의 역할은 그 리더십을 자신에게 위임한 사람이나 혹은 집단의 뜻에 알맞게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잘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 안에는 이익집단이라는 것도 있어서 이 안에서는 사람을 잘 이끄는 것보다 목표로 하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앞서게 마련이지만 결국 사람을 잘 이끌지 못하면 나중에는 목표로 하는 이익의 창출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애초부터 이익집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의 리더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교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나 혹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 리더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리더십을 통해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목자잃은 양같이 남아있거나 혹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그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어야 사람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그 일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게 되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에게 사람들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마음을 달라고 기도드리곤 합니다. 우리는 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교회에 속한 다른 성도들을 볼 때도 반드시 필요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리더들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마음입니다. 내 이익과 입장보다도 성도들의 유익을 더 크게 생각하고, 그들이 영적으로 방황하게 되는 것을 가장 안타깝게 여길 수 있는 마음, 그렇게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은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정확하게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목회자 한 분이 그 당시만 해도 아직 전도사였던 신학생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어떤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일하다가 혹시라도 그 교회가 여러분을 쫓아내려고 하는 상황이 된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조용히 모두 다 내려놓고 그 교회를 나오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래야 하나? 교회를 위해서도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지 않나?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그 분의 말씀은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그것도 꼭 가려야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성도들의 영혼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기게 되고 그들이 영적으로 방황하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깨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그 충고를 완전히 따를 것이라는 자신은 없지만 그 말씀 속에 들어있던 교회를 향한 그 분의 사랑만큼은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고 제 마음도 그리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결론 :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회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그 저 일이나 잘 하는 종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되는 일을 그 무엇보다도 안타깝게 여기며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리더된 우리들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해처럼 밝게 빛나는 목장,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양들이 가장 평안하고 넉넉하게 쉼을 얻는 그런 목장의 그림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우리가 양떼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할 때, 우리 교회와 공동체는 점점 그 그림으로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리더십이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위한 이유가 되며,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풍성한 유익이 되는 아름다운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약속 :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자의 마음으로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교회를 아름답게 하시고, 우리에게 영광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