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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각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우리는 찬송한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주의 보혈, 보혈의 능력' 
그러나 곧이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십시요. 우리는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허락하실 것입니다.'라는 선언을 듣는다. 
앞의 찬양에도 아멘이고 뒤의 선언에도 아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꿀 수 있을까? 어디를 어떻게 더하고 어디를 어떻게 보충해야 두가지는 서로를 어렵게 하지 않을 수있을까?
   
    앞의 찬송은 너무 명확해서 손을 댈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뒤쪽의 선언이 조금 구체화되고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가 제한을 받아야 한다. 

    원래 '원하는 대로 구하라'라는 말씀 앞에는 명백한 조건이 붙어 있다. 그 조건이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담는 것이다. 그렇게 그 분의 말씀이 우리의 뜻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각, 우리의 소원은 그 분의 그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불완전함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약속은 그제서야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뜻,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주님을 닮게될 때에야 말이다. 그러니 우선순위는 기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생각과 소원이라고 불리는) 욕망의 조정작업이다.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그것은 주님의 생각에서 나온다)을 채움으로써 일어나는 조정말이다. 그러니 그 소원은 주위 보혈로 육체의 정욕을 이긴 후에 생겨나는 소원이 된다. 주님은 그런 소원이라면 묻지 않고 무엇이든지 이루실 것이다. 두 말씀의 갈등은 그렇게 해서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약속이 참으로, 그리고 참되게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