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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0년 매일성경설교 20. 어찌하여 흐르는 골짜기로 자랑하느냐

방문하시는 중에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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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녀가실 때는 짧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 누구 누구 다녀갑니다. 댓글은 저만 있도록도 저장할       있습니다






본문 : 예레미야 49장 1-6절



서론 : 황금만능주의는 힘에 대한 숭배다

‘황금만능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돈이면 다 되고, 돈이 최고다’라는 사고방식을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현한 말이죠. “황금”, “만능”, “주의”...하나 하나 떨어뜨려 놓고 보면 별 문제없어 보이는 이 세 단어들은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매우 위험한 것이 되고 맙니다. “만능”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고 보면 황금만능주의란 결국 돈이 신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믿어지고 숭배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돈은 ‘만능’이 아닙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돈은 정말 힘이 센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만능도 전능도 아닙니다. 워낙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힘이 세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사실 돈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사실 돈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전부고 돈이 최고다”라는 것이 ‘주의’ 그러니까 일종의 사고방식으로 굳어져 버리면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 맹목적이 됩니다. 그것이 주는 편리함과 힘만 생각할 뿐, 그 때 생겨나는 부작용과 위험성이 어떤지는 결코 생각하지 못합니다. 

잘 그리고 편리하게 사용되어져 할 돈이 그 돈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숭배되기 시작하면 돈 자체가 목적이 되고 나머지 모든 것들, 심지어는 사람과 신앙마저도 돈과 재물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돈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인격적인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돈이 가지는 모든 위험성과 부작용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납니다. 힘은 거의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센데, 전혀 인격이 없습니다. 그런 괴물이 바로 돈입니다. 그래서 이 돈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도,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돈이 가지는 힘을 좋아해서 돈 자체를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그것을 사랑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마치 그 괴물을 아무런 제약없이 풀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 돈이 가진 힘을 탐내고 그것을 마음대로 휘둘러 보려고 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그 괴물 위에 올라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타인의 행복을 헤치게 됩니다. 원래는 악한 것이 아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악한 것이 되기 쉬운 것, 원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대신 숭배되기가 가장 쉬운 것 그것이 돈이고 재물입니다. 


암몬 자손의 죄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열국에 대해서 하신 예언 중에서 암몬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시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우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무자하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거함은 어찜이뇨?” 가나안 땅과 갓 지파가 머물고 있었던 요단강 서편의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몫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상속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가 아니면 다른 민족과 나라는 결코 탐내거나 빼앗아서는 안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암몬 자손이 빼앗았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단점령이었고 도저히 묵과하실 수 없는 죄였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구도로 보면 힘센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고,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일은 특히 고대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아주 커다란 악행으로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는 각각의 나라들은 그 나라의 능력이 미치는 만큼의 영토를 차지하고 그 능력대로 국제사회에서 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을 일컬어 “정치적인 역학”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어떤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 힘을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상식적인 것이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힘은 자기 영역을 확대하고 약한 자들을 마음대로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힘과 리더십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돌보고 섬기는 도구입니다. 그러라고 주신 위임된 힘입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강한 영향력이 있어도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 머물며, 그 힘을 약한 이들을 돕는 방편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암몬은 이 힘에 대해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그 힘을 가지고 그저 자신의 영토를 넓히는데만 사용했고, 그래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상속해 준 땅을 불법점령한 커다란 악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쟁이 당연시 여겨지는 환경과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경쟁하게 되고,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때로는 승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패자가 되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쟁과 그 경쟁이 만들어 내는 결과들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쟁 속에서 부대끼며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리게 되는 감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한계를 알고 지키는 감각”입니다. 그리고 이 감각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몫의 자리와 복을 주셨고 또 주신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이 ‘족한 줄’알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단지 현실에 안주하라거나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살아가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족한 줄 알라고 할 때는 항상 그 뒤에는 “너의 최선은 다하되”라는 말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현재를 위한 충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한 최선은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최선이지만, ‘족한 줄 아는’ 최선은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는 최선입니다. 결과는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하는 겸손한 최선입니다. 우리가 이런 의미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법을 연습하고 배울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지키는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보면 자신이 세운 목표 때문에 선한 가치와 건강, 심지어는 자신의 가족까지 돌보지 못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되고, 사회적으로는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며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기 욕심과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죄악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암몬에게 주신 힘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악한 나라들의 공격으로부터 주변의 약한 나라들을 보호하며,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 자신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지만 그들은 그 힘을 금지된 선을 넘는 데 사용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자기 몫이 아닌 것을 차지하는데 사용했고,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성도는 힘이 있다고 해서 그 힘을 다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자기를 지키는데 사용하고 남는 힘은 나를 위한 힘이 아니라 남을 위한 힘, 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위한 힘으로 허락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 몫의 땅이 따로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땅의 경계를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 몫의 땅은 정직과 적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적어도 일부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 안에만 머물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너무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몫으로 주신 우리의 ‘가나안 땅’이 있음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 울타리 안에 머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멍에가 될 것입니다. 안된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그렇게 해 보려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 길을 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실 것이고, 우리가 예상치 못한 우리 몫의 땅을 따로 떼어 허락하실 것입니다. 


암몬에게 내려질 징벌

하나님께서는 암몬의 죄악에 대해서 지적하신 후에 그 징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거친 무더기가 되겠고 그 촌락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랍바는 암몬의 수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암몬의 수도에까지 미칠 것이며, 결국은 그 수도를 폐허로 만들 것이고, 주변의 촌락들도 불에 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가며 남들을 아프고 힘들게 했던 암몬이었지만 오히려 나중에는 그렇게 빼앗은 땅을 돌려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으로 주셨던 땅도 완전히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의 만족을 위해서 지금 자기에게 허락된 힘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애씁니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가며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서슴지 않으며 미래의 만족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말 그대로 ‘헌신’을 아끼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만 있는 세상이라면 그런 시도는 대부분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모든 것을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의 그러한 ‘허무하고 악한 헌신’을 기뻐하시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 한계를 지키며 살아갈 때는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그들이 누리는 것을 계속해서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주어진 한계를 넘어갈 때는 그렇게 하면서까지 손에 쥐려고 했던 바로 그것을 빼앗으시고 심지어는 그의 몫으로 이미 허락하셨던 것까지 거두어 가실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으려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다가 결국은 큰 낭패를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이든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의 만족을 움켜쥐기 위해서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치달아 보지만 결국 그는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도를 넘어선 악을 가지고 지금껏 번영하며 남아있는 나라가 없고, 계속해서 번성한 악인의 가문이 없습니다. 나 개인의 삶을 돌아 보십시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얻은 것이 우리를 진실로 만족하게 했으며 행복하게 했습니까? 그리고 지금껏 우리 곁에 복으로 남아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이제껏 내 삶과 영혼을 혼란스럽게 하고 오염시켰을 뿐, 선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서까지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쓴다면 우리는 우리 몫으로 받은 것까지 빼앗기고 맙니다. 물질적인 것 뿐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혹시 물질적인 것은 계속 남아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인 복은 확실히 빼앗기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사라질 것이고, 구원의 기쁨도 떠나갈 것이며, 하늘의 소망은 전혀 느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은 남아있겠지만 영원한 것은 다 빼앗기고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교만한 자와 그 분의 영광을 나누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암몬이 타락한 이유... 탐욕의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은 암몬을 향해 또 하나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또 하나의 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암몬이 첫번째 죄를 지었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타락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로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오리라 하느냐?” 하나님께서 암몬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재물을 의지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지극히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4절의 골짜기, 물이 흐르는 골짜기는 풍요한 재물의 상징입니다. 암몬족속은 재물이 풍성했습니다. 쌓아놓은 곡식도 많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랑했고, 그것 때문에 교만했습니다. 항상 그것에 의지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재미있고도 심각한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말로 ‘물이 흐르는 골짜기’라고 되어 있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물이 스미는 골짜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흐른다는 표현은 옆으로 흐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땅 아래로 스며들어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막 지역에는 와디라는 간헐천이 있습니다. 이 강은 강은 강이지만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계절에만 물이 흐르는 강입니다. 암몬은 그들의 부유함의 근원이 되는 골짜기의 강을 자랑했습니다. 마치 그 강이 영원할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풍부함도 영원할 것처럼 여기면서 그 강에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자랑하는 강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강이 영원한 강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는 비가 그치면 금새 말라버릴 간헐천, 사막의 와디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강이 강으로 흐르게 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 비를 내리고 그래서 그 강이 계속해서 흐르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암몬 자손은 강을 바라보느라고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강을 보면서 강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강이 아니라 그 강을 흐르게 하는 근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그 근원에서 계속 물이 흘러나오게 하는 근원의 근원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를 내리시는 분도, 그래서 샘이 솟게 하시는 분도, 그 샘이 강물이 되어 흐르게 하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복된 것, 모든 선한 것,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기뻐하려면 그 분을 기뻐해야 하고 자랑하려면 그 분을 자랑해야 하며, 그래서 의지하려면 그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사막의 와디입니다. 비가 그치면 사막으로 변하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간헐천에 불과합니다. 근원이 마르고, 강이 마르면 풍요함도 없습니다. 재물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더라도 재물을 자랑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지 궁금해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재물을 자랑하고 그 재물에 의지하여 산다는 것은 그렇게 사라질  허무한 것들보다 영원한 하나님을 가치없다고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 일은 하나님께 심각한 모독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짜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내가 진짜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되어 있고 내가 진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금방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암몬은 골짜기를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재물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던 것은 사실은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재물을 쌓아놓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것이 주는 안전감에 만족하며 그것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니 또 다른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그 재물이 없어지고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다시 이 두려움을 없애려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노력이 그들이 넘어야 할 선을 넘는 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재물이 있으면, 재물이 많으면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 주고, 그것이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서라면 재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암몬족속에게 주신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쌓아놓을수록 그만큼 더 든든하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을 돌보고 섬기라고 주신 그 힘을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삶의 영역으로 허락하신 땅을 빼앗고 그들의 행복을 망가뜨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두려움을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무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며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든든한 성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 성을 믿고 살았는데, 정작 그 두려움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것은 힘과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자랑하고, 그것으로 쌓은 성 안에 거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뒤흔드시고 무너뜨리시면 그런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못됩니다. 오히려 그것과 자신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리기 쉽습니다. 가장 풍요한 강도 금새 말라버릴 와디처럼 만들어 버리시는 분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시려고 작정하신다면 그 누구도 그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습니다. 


결론 :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불안의 문제, 두려움의 문제는 이 세상의 것들로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모두가 다 일시적인 것들이고 확실치 않은 것들입니다. 지금은 내 곁에 있어도, 지금은 많다고 여겨지고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도 언제 어떻게 내 곁을 떠나고 또 사라져 버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그것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부표에 배를 묶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괜챦은 것 같아도 곧이어 배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흔들림은 더 큰 근심과 두려움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위 “복”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주면 그 복 자체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복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고, 나중에는 또다른 불안함의 원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 복을 보지 말고, 그 복을 주시는 분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흐느는 물과 그 강의 일시적인 풍성함이 아니라 그 근원을 생각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 강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흘러왔고, 지금도 계속 나의 삶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나의 삶을 그렇게 지켜주시고 공급자가 되어주실 것임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강을 바라보며 만족하는데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 근원을 발견하고 소유하는 참된 기쁨과 참된 만족을 위한 여행을 해야 합니다. 그 근원을 붙들고 그 근원에 의지하는 영원한 든든함을 얻기 위한 여행을 해야 합니다. 그 근원에 몸을 담그고 쉴 때, 우리는 결코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복을 누릴 때까지 그 여행을 그만두면 안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 그리고 때로는 자랑하며 의지하는 것들이 내가 보기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강물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언제든지 비만 그치면 말라버릴 와디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자랑할 것도, 의지해서 살아갈 것도 못됩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능력도 가치도 없습니다. 영원히 살 우리들이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불안한 것들에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것은 모래위에 대리석으로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동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을 더 심각하게 불안으로 몰아넣는 일이 되고 맙니다. 


회원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미래에도 여전히 최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안에서 참으로 만족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여러분에게도 부어 주시기를 진정으로 소원합니다. 그 만족이 없으면 우리는 영원히 불안하며 영원히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암몬이 갔던 길을 꼭같이 걸어가게 됩니다. 이제는 진실로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처럼 미래에도 더 크고 완전한 은혜를 공급해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과 신뢰를 달라고 기도하며 매달리십시오.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편히 쉬며, 참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가장 귀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우리의 불안을 없애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실 것이고, 그래서 우리 안에 이 두려움 때문에 생겨나는 욕심과 집착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흐르는 강과 그 강이 주는 풍요로움이 아니라 그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그 근원을 영원히 내 것으로 삼아 충만한 만족과 안전함 가운데 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