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민수기 17장 1-11절
도입 : ‘더 큰’ 리더십을 향한 유혹
강하고 큰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되고 싶어하는 유혹은 수많은 유혹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유혹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정치에 빠지면 마약보다 더 끊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것은 리더십, 그러니까 영향력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향력을 더 확장시키고 연장하기 위해서 정말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가지 고집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 유혹이 얼마나 강하고 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미 자신이 어느 정도의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유혹이 그만큼 더 강하게 마련입니다. 1인자가 되는 일은 조직의 말단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유혹이 되질 못합니다. 그러나, 2인자나 혹은 3인자,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미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충분한 인정을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일 수록 1인자가 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리더십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사건의 전말 1. 고핫 자손 등의 반역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고 무게있게 생각하신 지파는 바로 레위지파였습니다. 레위지파는 장자지파가 아니었지만, 실질적인 장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를 택하시고 그 지파에게 성막과 관련된 일들을 하도록 하셨고, 그 지파에서만 제사드리는 제사장들이 나오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제사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씻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감당한 레위지파가 이스라엘 안에서 감당한 역할은 가히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레위지파 중에서도 고핫 자손은 성막의 성물을 옮기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성막의 핵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특권을 허락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들이 맡은 일이 일이니 만큼 일반 백성들은 이들이 하는 일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고, 그들 스스로도 자부심을 점점 더 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이 자부심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부심이 자부심의 경계를 넘어 자만심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또 그 자부심을 부추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 자부심과 자만심의 경계는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나는 자부심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 보이게는 자만심일 때가 많습니다. 나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교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부심은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어야지, 나 자신에 대한 것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차라리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자부심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큰 일을 당당하게 하는 것보다 자기가 머물러야 할 자리에 머물면서 맡겨진 일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핫 자손의 위치는, 그들이 더 탁월하거나 더 거룩하거나 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그들에게 맡겨진 일, 그러니까 그들의 ‘역할’ 덕분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만약 고핫 자손들에게 성물을 돌보고 운반하는 일이 없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 누구도 특별하게 여겨지 않는 평범한 가족들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핫 자손은 이 두 가지를 거꾸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임무가 가져다 준 권위와 영향력에 중독되어서 자신들을 엄청나게 중요하고 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성물을 옮기는 일 따위’나 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점점 아론의 일을 넘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론이나 자신들이나 모두 레위인인데 누구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폼나게 하나님을 섬기고 누구는 뒤에서 뒤치닥거리나 하고... 이런 불공평한 경우가 어디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고라라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모두를 규합해서 ‘당’을 만들고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정면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말 2. 하나님의 개입
그 결과 역모의 주도자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들은 모두 지옥처럼 입을 벌린 대지에 삼켜져 버리고, 그 일에 가담했던 125명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불에 타 죽게되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은 이 일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 일을 완전히 마무리 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론의 제사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확고하게 세워주시고 재확인해 주시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다시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마련해 주신 안전장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사회에서나 적절한 리더십을 세우고 또 그 리더십을 잘 지키고 존중하는 일은 리더십 자체나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 사회 전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일에 속합니다. 이것이 교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리더십을 세우신 이유는 리더십이나 리더들 자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그 리더십을 통해 교회를 바로 세우고 더 유익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이나 그 리더를 따르는 성도들이 이 사실을 잊고 리더십의 문제를 개인적으로만 이해하기 시작할 때, 교회는 굉장한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실제로 모든 교회들이 저지르는 실수와 범죄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고통과 어려움들은 거의가 여기서 부터 생겨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열 두 지팡이!
본문을 읽어보면 오늘 이야기의 중심되는 역할을 하는 물건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12개의 지팡이입니다. 고대사회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는 했지만, 특히 성경에서 지팡이는 리더십의 상징입니다. 12지파의 족장들은 저마다 그 지파의 리더십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자신만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두 모아오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마다 지팡이 주인, 그러니까 족장들의 이름을 적어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물론 레위지파의 족장 지팡이도 가져오도록 하셨는데, 다른 경우와는 달리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지정해 주시면서 그 이름을 적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는 각 지파마다 하나씩 모두 열 두 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지팡이들이 하나로 뭉뚱그려 있습니다. 이렇게 섞어놓으면 서로 구분조차 가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저 평범한 막대기들을 쌓아놓은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아론의 지팡이, 정확하게 말하면 아론의 이름이 적힌 지팡이도 섞여 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라고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만 금빛으로 빛나거나 무지개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을 써 놓지 않으면 그저 그게 그거입니다. 다른 족장들의 지팡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나무 막대기들과 같은 족장들의 지팡이들, 그리고 그 속에 섞여 있는 다른 지팡이들과 다르지 않은 아론의 지팡이...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리고 그 지파들의 족장들도 그들이 특별하고 특출나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또 지도력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족장들도 특별한 점이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하나님 앞에 딱히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아브라함 안에서 선택하시고 지금까지 특별하게 지켜오셨으며, 그들 중에서 일부에게 특별한 지도력을 맡기셨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인 것도, 그리고 그 안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된 것도 모두가 다 그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이지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그 이스라엘 중에서, 그리고 그 열 둘 중에서 하나를 더 특별하게 선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누구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될 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 싹이야 말로 그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되어주 것이고 그래서 다른 모든 족장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모세는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열 두 개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모세에게도 그랬겠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 두 개의 지팡이 중에서 하나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누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살구 열매가 열린 것입니다. 12지파의 족장들은 저마다 앞으로 나와서 자기 이름이 적힌 지팡이를 다시 가지고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구열매가 맺혀있는 그 지팡이는 바로 아론의 지팡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론에 대한 불만은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고 그것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만큼 중대한 범죄였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아론의 제사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확고하게 세워주신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를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안전장치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왜 아론은 특별했는가?
아론이 하나님께 대해서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일한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의 역할은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역할은 그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아 주셔야만 그 제사는 성공적인 제사가 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직접 하나님께로 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고 또 그 하나님을 만나며 교제하며 은혜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보자는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보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중보자여여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 중보자가 중보할 때만 이스라엘을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하나님께서 그 중보자의 역할을 맡기신 사람은 아론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하나님께 그토록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넘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중보자를 무시하는 것은 직접 하나님 앞으로, 자신의 의로 가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죄인이 하나님 앞에 직접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그것 자체가 죽음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중보자, 참되고 영원한 중보자는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살았던 모든 제사장들, 그리고 대제사장들은 바로 이 중보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손가락이었습니다. 이 중보자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시등이었습니다. 그 중보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래서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맡기신 모든 백성들을 받으시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우리 모두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중보는 과거에 끝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중보자가 영원히 필요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하며, 계속해서 서 있게 해 주고 또 영원히 받아들여지게 해 줍니다. 그 중보가 단 한 순간이라도 중지된다면 우리들 모두는 그 순간 영원히 하나님으로 부터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론을 무시한 죄를 목숨을 내놓아야할 만큼 큰 죄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이스라엘인 우리가 그들같은 교만가운데 빠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한 번 구원받으면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가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가 필요 없다는 듯이,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는 일을 너무 쉽고 너무 안이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언제나 큰 은혜, 무한한 은혜, 영원한 은혜 가운데 있다고 그 은혜를 흔하고 가치없는 것으로, 쉬운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중보가 절대적으로 또 영원히 계속해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감당하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중보만을 받아주십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의 리더십의 문제를 그렇게 쉽게 생각합니까? 왜 제 것인양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또 제 것으로 소유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가고 그 분께 받아들여지는 일에 있어서 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어주심을 영원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로 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리더십을 위임받고 그 리더십을 행하는 일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더 두렵고 떨리는 리더십을 사용해야 하고 얼마나 더 그 분을 의지하며 리더십을 사용해야 하겠습니까? 회원 여러분, 교회 안의 리더십은 함부로 행사해서도 안되고, 내가 원한다고 함부로 가지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비록 교회의 리더십도 인간 사이의 리더십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본다면 사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교회의 리더십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교회의 리더십을 행할 때는 그 생각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그렇게 많은 리더십의 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보가 없다면 단 한순간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도, 서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만큼 의존적인 존재들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리더십을 결코 자신의 능력과 자격으로 얻은 자기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리더십의 사용방법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리더십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마음속에 그려놓아야 할 그림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팡이 그러니까 그 말라버린 막대기에 맺힌 살구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상하게도 이 살구나무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굉장히 상세하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 것은 아론의 지팡이에 달린 살구였고, 그 잎사귀가 전부였겠지만, 성경은 굳이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맺혔더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설명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저는 이 구절에서 생명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 설명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이 그리고 그 생명에서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살구나무는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살구꽃이 가장 먼저 피는 꽃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매화같은 꽃이었겠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구꽃이 핀 것을 보면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까요? “아, 봄이 왔구나. 이제 죽음의 계절이 끝나고 생명의 계절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막 안에 있었던 촛대가 바로 이 살구나무 가지 모양이었고, 또 계시록으로 가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 가지사이로 다니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일곱 촛대를 교회라고 설명해 주시면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결론적으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그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촛대가 교회인데, 하나님께서 그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은 더 이상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른 막대기, 지도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 그 중에서도 아론의 지팡이에서, 생명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말라버린 그 막대기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맺혔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위임받은 그 리더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리더십의 방향을 그리로 맞추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크고 작은 교회 안의 리더십, 이 모양 저 모양의 저도력을 나누어 주셨을까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생명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역사를 보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리더십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일들을 잘 감당함으로써 우리의 섬김을 통해 교회가 생명과 열매로 풍성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때로 이 땅의 교회들의 모습은 생명이 없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정말 이 땅의 교회들이 교회가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교회의 리더십을 맡기신 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이 작다고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좌절할 여유도 없습니다. 고핫 자손들이 착각했듯이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작은 일’은 없습니다. 그 일을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크다고 생각되는 일도 하나님의 작은 일이 될 수 있고, 작다고 여겨지는 일이 엄청난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막대기, 그 지팡이가 마른 막대기에 새 생명이 돋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것같은 교회를 살리고 또 풍성하게 하는 열매를 맺는 도구가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리더십, 나의 영향력,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그런 역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열망이 있고, 또 그렇게 지금 긇게 사용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의 지팡이는 아론의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중보자의 막대기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반역한 이스라엘을 모두 진멸해 버리시려고 할 때, 그 사이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켰습니다. 비록 중간에 실수도 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론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대적한 백성들을 전염병으로 모두 쓸어버리려고 하실 때,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서서 죽음이 더 이상 산 자들에게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자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백성에게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자,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서 죽음의 영향력을 가로 막는 자, 그것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 이것이 바로 중보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회를 위한 헌신,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이런 헌신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그랬고 아론이 그랬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다른 이들에게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어둠이 아니라 빛이 충만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그것을 위해서 헌신하고 일하는 크고 작은 리더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작다고 생각하는 한, 그 일의 참된 소중함과 진짜 목적을 모르는 한 우리는 이런 막대기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맡겨주신 일,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가 나에게는 가장 적당하고 충분하며 또 가장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게 될 때, 우리는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이스라엘, 이 교회에 죽음과 어둠을 가져오는 고핫 자손들이 될 지도 모릅니다.
결론 : 마른 막대기에 살구열매가 맺힐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실 것입니다. 움이 돋고 순이 나며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맺히게 하실 것입니다. 일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리더십의 크기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른 막대기 같은 나 자신을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그 모든 것들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실 하나님을 생각하시고, 그 분께만 소망을 두십시오. 언제나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서 계신 영원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이 아무리 어둡고 생명이 약해져 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싹이 나며 꽃이 피어서 열매가 맺게 하실 것이고, 그 일을 통해 그 분의 교회를 다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채워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이건, 그곳에서 맡은 일이 무엇이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런 일을 해 나가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를 위한 작은 중보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때문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살구열매로 풍성한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약속 :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겸손하게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른 막대기에서 살구열매가 열리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