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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2년 매일성경 설교. 시141편 - 속히 내게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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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2-06-26

본문 : 시 141편(1-6절까지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들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약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억울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죄는 다른 사람이 지었는데, 내가 힘이 없어서 다 책임지게 생겼을 때, 잘못이 전혀 없는데도 단순히 힘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힘있는 사람에게 그저 당하고만 있어야 할 때, 그러면서도 어디 한 구석 하소연 하거나 의지할 곳도 없을 때... 이럴 때는 그 일 자체만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러한 처지 때문에 생겨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억울함과 답답함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을 당할 때, 그래도 믿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참 다행이고 또 감사할 수도 있지만,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응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짐을 잘 져내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이런 상황에서 지은 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오늘 시편은 그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일 때, 약자로서 엄청나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드린 기도를 시로 옮긴 것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오늘 시편과 같은 시편들을 탄식시라고 부릅니다. 고난과 고통 가운데 드린 탄식들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탄식시들이 뒤에는 감사와 찬양이나 신앙고백으로 끝나는 것과는 달리 시편 141편은 그냥 악인을 처리해 달라는 기도로 끝나고 그 속에는 감사나 찬양, 신앙고백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시편은 오래 지속되었던 어려움이 아니라 그만큼 갑작스럽게 발생한 긴급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당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내면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정리가 되기 전에 드린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편은 우리에게 특별한 유익을 줍니다.우리가 갑자기 예기치 못한 악에 노출되게 될 때, 그리고 그 악 때문에 억울하게 해를 입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며, 또 신앙적으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오늘 시편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기도하며 또 그것을 영혼의 방패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먼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굉장히 긴급한 상황인데도 다윗은 굉장히 당당합니다. 우리는 너무 너무 급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내가 도움을 청하니 빨리 내 부탁을 들어주십시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거절할 수 없도록, 간절하고 또 겸손하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단지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내게 임하소서”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는 지금 그가 당하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전혀 잘못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양심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자기 잘못때문에 힘든 일을 당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당한 기도는 정결한 삶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애썼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는 결코 거절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 기도 자체가 하나님께서 해 주신 약속의 내용을 단순히 다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환란 날에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성도 여러분, 믿음은 단순한 예측이나 기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측이나 막연한 기대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되면 좋지만 안되도 할 수 없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릅니다. 변함없으시고 변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너무 확실합니다. 게다가 그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그게 하나님의 약속이니 당당하게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고 당당하게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 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지만 그 분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약속은 지키시고야 마시는 분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확신과 당당함 가운데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또 하나,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는 제단의 향연이 되고 또 제물이 됨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제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가 유효하려면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흠향하시는, 기뻐받으시는 제사가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가운데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 한 분이면 된다는 확신 가운데 드리는 기도. 다른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족하겠다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 무엇보다도 더 기뻐하시는 제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대우해 드리는, 그 분을 가장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쪽이 완전하다고 다른 한 쪽이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확실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죄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지켜주심이 필요하며 그 가운데 있을 때라야 비로소 죄의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술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첫번째로 지켜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입술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기도 한데요. 우리는 억울한 고통 속에서 나에게 해를 입히는 자를 저주하는 잘못을 범해서도 안되겠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입술을 열어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또 원망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우리가 악인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마음에 드는 생각이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라면....”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의문이 깊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나 자신을 향한 그 분의 의로움과 선하심을 입술로 폄하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저지른 그 심각한 죄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굉장히 선하고 착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보니 악하고 탐욕적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것은 어쩌면 그저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선하게 살아가려는 노력들이 좌절되었을 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부작용인지도 모릅니다.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것은 어려움과 고통 밖에 없습니다. 참고 또 참아 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힘드는 것은 자기 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게 되면 그 사람은 너무 쉽게 자신을 괴롭게 했던 그 사람들이 가는 똑같은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결해 달라는 기도도 드려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을 악에서 지켜달라고 기도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 주일 드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중에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두 기도가 짝을 이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악에서 건짐을 받아야 하기도 하지만 악해지면 안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되지만 어쩌면 악에서 건짐을 받는 일보다도 그 악 속에 있으면서 그 악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다윗은 기도합니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 악이 주는 유익이 없다면 악은 우리에게 유혹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은 항상 좋은 것을 손쉽게 얻게 해 주겠다는 미끼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악인들은 상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여기와서 함께 먹자고 우리를 꼬득입니다. 우리가 궁핍한 가운데 있고,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그 유혹이 얼마나 더 강하게 느껴지겠습니까? 비록 그들의 악함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길을 가며 그들이 즐기는 상에 앉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악에서 건짐을 받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자신까지도 그 악에 물들어 버린다면, 그 악이 주는 달콤함에 넘어가 버린다면  작은 것은 얻었지만 더 크고 중요한 것은 놓쳐버린 셈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우리를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야 말로 악의 유혹이 가장 강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힘들 때 바른 충고를 듣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때만큼 바른 충고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또 없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도와주시기도 하시지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적절한 도움을 공급해 주실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의인들의 입이 가지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항상 바른 말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게 우리에게는 무척 거슬립니다. 특히 어렵고 힘들 때 바른 말을 듣는 것은 굉장히 짜증나고 신경질 나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방어적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때의 옳은 말은 우리를 공격하는 말, 책망하는 말로 들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 내게 진짜로 필요한 이야기가 들어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속에 그러한 상황을 견디게 하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들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경험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듯한 의인들의 메세지를 듣는 일이 어렵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괜히 끼어드는 듯한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일은 과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말이라면 겸손히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러 말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들리더라도, 심지어는 나를 공격하기 위해 하는 말이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중의 하나이며 하나님 앞에서 나를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는 기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머리가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그것을 거절하지 않도록 생각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고난은, 특히 약자로서 당하는 억울함은 그것 자체로는 선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런 일이 없어야 하지만 타락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는 항상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우리 스스로도 그런 일들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을 때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속만 썩이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영혼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신앙적인 대응방법을 알고 거기 따라 차근 차근 대처해 간다면, 오히려 그러한 어려움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견고함, 그리고 거룩함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악은 분명히 악한 것으로 인식해야 하지만, 그 악의 악한 영향력에서는 굉장히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을 통해 다윗의 믿음을 배우시고, 다윗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그리고 연습해 보십시오. 저도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참 많이 유익합니다. 고통당하는 것으로 끝내버린다면 더 손해만 보는 것이고, 또 그러면 더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호심부로 삼으셔서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 다윗과 같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