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2.02.10. 주일오전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마가복음 18)


막0331to35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막17).pdf


* 오늘 음성파일은 녹음되지 않은 관계로 올리지 못합니다. 


설교본문 : 마가복음 3장 31-35절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하면 뭐니 뭐니해도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일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받는 일이 더 기대되고 기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보고싶던 가족들이 많이 오셨습니까? 오늘 이렇게 보니 가족들을 방문하셨다가 함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도 계시고, 우리 성도들 중에서도 가족들과 모이시느라고 보이지 않는 분들도 더러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처럼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가족은 정말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은 쉼이며, 우리를 보호해 주는 피난처이며, 삶의 보람이고, 심지어는 삶의 목적이 되기까지 합니다. 가장 큰 기쁨이며 가장 큰 슬픔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주고 또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시대의 유대에서도 가족의 의미는 아주 각별했습니다. 그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한 사람이 일생동안 계속해서 속하게 되는 가장 기초적이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공동체인 동시에 그 사람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을 떠난 개인은 생각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가정은 그 사람의 인생이며 만약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주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장 21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예수님께서는 친족들에게도 심각한 오해를 받으셨고, 또 반대를 경험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잡아 가두려고 최소한 3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친족...’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이 친족들이 구체적으로 누구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을 줍니다. 친족, 친척이면 그래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31절은 이 친족들이 예수님의 친가족이었으며, 그것도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생을 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이해가 갑니다. 현실속에서는 입장에 따라서 형제들이 최악의 적이나 반대자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까지 끼어 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30년이나 되는 세월을 예수님과 함께 살아왔던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잡으려고 그 먼 거리를 찾아올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지만 그래도 오늘 성경은 예수님을 보고 “미쳤다, 정신이 나갔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가족들 중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끼어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쨋든 마리아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불완전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리아도 인간은 인간이었습니다. 언제나 흔들릴 수 있고 그래서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자마자 알아보았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인생과 목숨까지 걸었던 세례 요한도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에게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던 것을 보면 인간이에게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란 없고, 마리아의 이런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풍문이 그렇지만 당시의 예수님께 대한 소문도 계속해서 확대재생산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부정적으로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도층이 모두 예수를 미워하고 심지어는 죽이려고까지 들었으니까요. 예수님에 대한 나쁜 소문은 마리아의 귀에 계속해서 들려오고 또 들려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소문들을 믿으려 들지 않았겠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만 들려주니 먼저는 예수님의 동생들의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을 것이고, 마리아 또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진짜라면, 그리고 지도자들이, 권위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를 반대하고 있다면 그 아이가 미친 것이 분명하다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형제들과는 조금은 다른 마음이었겠지만 그래도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분명하고 그래서 강제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가두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2004년도에 참 안타까운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라크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김선일씨가 무장테러단체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 때 김선일씨가 동영상에 나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왜 당당하게 순교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느냐고 김선일씨를 비난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공포로 떠는 사람을 향해,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지 못할망정 어떻게 그런 비난을 할 수 있는지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 분들은 사실 여기 이 편안한 땅에 살면서도 믿음 때문에 작은 손해나 오해도 받기를 싫어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자신할 수 있을까요? ‘나는 절대로 믿음을 버리지 않을거야.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거야.’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그렇게 흔들렸다면 우리라고 해서 흔들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생각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내가 믿음에서 떠내려 가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하며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영원한 안전지대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가족들은 감히 직접 집 안으로 쳐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막상 가보니 모두들 예수님께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겠죠. 그래서 모여있던 한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을 밖으로 불러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또한 직접 들어가는 대신 옆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내막을 모르는 그들은 그저 반가운 마음에 예수님께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와 누이들이 밖에서 예수님을 찾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그러면서 예수님의 가족에 대해서 아주 특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도 의외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거기 모여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가족을 부인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웅성거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 말씀의 참된 뜻을 밝혀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주변에 둘러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제가 대학시절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너무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어리기만 했던 저에게도 역시 복음은 복음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게 해 주었고 그래서 복음을 더 온전히 붙들고 더 사랑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족은 어느 사회에서나 굉장히 닫혀있는 개념입니다. 한 번 형성된 가족 속으로 누군가가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대개 가족은 혈통을 따라 정해집니다. 김씨 집안에는 김씨들만이 있고, 장씨 집안에는 장씨들만이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특별한 예외가 아니면 그 집안 사람이 되고 또 가족이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어찌보면 그 가족의 혈통을 이어가도록 자녀를 생산해 주는 공로를 세운 사람에 한해서 그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 허용될 뿐입니다. 내로라 하는 집안일수록 그것만으로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실상부한 가족의 정회원으로 인정받으려면 가문이 정하는 일정한 수준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족은 가족이지만 2급 가족으로 취급받습니다. 이것이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가족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에는 이런 가족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완전히 새로운 가족을 만드십니다. 누구에게나 완전히 열려있는 가족을 만드십니다. “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얼마나 은혜로운 선포입니다. 이것은 정말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의 한 건물 2층에 어느날 교회가 하나 생겨났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이 너무 인상깊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 교회의 이름은 바로 ‘하늘가족교회’였습니다. 하늘가족! 하늘나라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그 날,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예수님은 거기 모인 사람들, 거기 모여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그 사람들로 부터 새 가족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바로 하늘가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하늘나라의 왕족 말입니다. 


지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사도들을 따로 불러 세우셨는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부르셨고, 또 그들을 통해서 우리들을 부르셨죠?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함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권능도 주시고 귀신도 내쫓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도 우리를 부르신 중요한이유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그렇게 부름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결국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예수님의 가족.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하늘가족을 만들려고 그들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그 영광스럽고 복된 가족 안으로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가족, 가족 중의 최고의 가족은 결코 닫힌 가족이 아닙니다. 혈통이나 자격이나 능력같은 조건들로 인해 닫혀버린 가족이 아닙니다. 만약 하늘가족이 되는 조건이 이 땅위의 어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처럼 특별한 조건이나 공로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하늘나라는 이 땅에서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또다시 차별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사람들을 영원히 좌절시키는 그런 나라, 저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되고 좌절이 되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은 지금 정말 굉장한 가족을 만들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런 가족을 창조하고 계십니다. 바로 누구든지 환영받는,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누구든지 완전한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그런 가족을 창조하고 계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얼마나 은혜로운 말입니까? 복음의 복음됨을 이것보다 더 잘 드러내는 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말보다 하늘나라가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라는 진리를 더 잘 드러내는 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누구든지’라는 말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이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이 들어갔다면 우리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또 하늘가족의 식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꿈도 꿔보지 못한 채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하늘가족의 식구가 되는 일이, 그리고 하늘나라의 백성의 한 사람이 되는 일이 이렇게 누구에게나 허락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 또한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가족의 한 사람이 되는 이 은혜로운 일에도 단 하나 조건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의 가족이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어있기는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복을 누릴 수 있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그 날, 거기 예수님 곁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 하늘나라의 식구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복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복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님의 이 말씀은 하늘가족의 한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해서 또 하나의 자격요건을 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실제로도 이 말씀은 그런 효과를 가져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늘가족의 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겉으로 보이는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을 갖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표자로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이 실패했던 순종에 완전하게 성공해서 그 공로를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덧입혀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생각도 없고, 또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의지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지난 주일 본문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폄하하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동안에는 그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그 말에게 억지로 물을 먹을 수는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나 은혜와도 관계가 아주 깊은 원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이면 은혜를 받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물론 은혜는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은혜는 사람을 차별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에게 집중되는 성격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과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엄연히 다릅니다. 종류와 크기만 다를 뿐 아니라 수준도 완전히 다릅니다. 만약 같은 은혜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영적인 상태가 다르니 그 은혜는 전혀 다른 은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쪽에 속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뒤쪽에 속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저 세상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을 주는 그런 분에 불과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큰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담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차지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의 가치를 알고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원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럴 마음도 의지도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 조건이라면, 재산이 조건이라면, 학벌이나 혈통이 하늘나라의 가족이 되는 조건이라면 그건 처음부터 불공평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애초부터 닫혀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품는 일은 결코 닫혀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해서 마음만 있으면, 그리고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지 갖출 수 있는 정말 아무에게나 열린 조건입니다. 이 조건은 결코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은 그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그 누구도 받을 수 있는 그런 복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복음은 역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제 귀를 열과 마음을 열고 이 온전한 복음, 이 은혜로운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집 밖에 있는 가족들로 남아있지 마시고 예수님과 함께 집 안에 거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는 복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믿음에 자신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이 영원히 영광스러운 가족의 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가족들을 만나듯이 그 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두 모으시는  그 날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우리 모두가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모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날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영원한 명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