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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02.11. 새벽 -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한복음 75)


요1140to44 -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2(요한복음7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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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3년 2월 12일 월요일

본문 : 요한복음 11장 40-44절


   

만 4주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특별한 것도 좋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상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이고 실은 그 특별한 것들이 일상적인 것들을 새롭게 하고 또 힘있게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리고 그 특별했던 것들이 계속 의미가 있고 또다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특별한 것이 끝나고 일상적인 것들로 돌아왔을 때, 그 일상적인 것들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년 특별 기도회를 끝냈지만 이것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과 매일의 우리의 기도를 위한 투자였지 그것 자체가 특별히 소중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간동안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면 그것은 너희의 일상적인 날들을 한 번 그런 은혜들로 채워보라는 우리를 향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이전의 제 자리로 돌아가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옮겨놓으신 새로운 은혜의 자리를 잘 지키시고, 혹 그런 은혜가 없었다면 계속해서 동일한 열정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아니하였느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는 그 믿음을 가로막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고정된 사고방식, 눈에 보이는 다 끝난 것같은 현실, 넘기 불가능한 장벽들, 우리를 실망시키는 힘든 상황들... 이런 것들이 서로 협력하여 우리 마음의 불신앙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의 주검 앞에서 믿음을 잃어버린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아니하였느냐?”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상황,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을 때에라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덤 앞을 가로막은 돌을 옮겨놓자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거기 모인 사람들을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신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하신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나 하나의 행동이 모두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밝히신 대로 우리를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보여주신 본이었습니다. 땅에는 답이 없습니다.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이 다 막혀버렸습니다. 누가 보아도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해결책이 없을 때, 도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을 때, 도저히 믿음으로 살기 어려울 것 같을 때 그 때는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땅이나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주시는다는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다.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한 영원한 중보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모두 듣고 계십니다. 상황이 우리를 절망하게 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서 ‘아니요’가 아니라 ‘예’만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한 최선의 것들만 내려오게 하는 통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거듭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을 더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덤을 앞에 놓고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을 일으키실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말씀드리는 것을 다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도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을 닮은 감사가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올 때, 우리는 우리 주님을 더욱 더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성경은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왔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나 이미 부패되기 시작한 사람을 산 사람처럼 부르셨습니다. 그를 향해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죽은 사람이 염을 한 채로 통통 튀어서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일이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으십니까? 이미 부패되기 시작한 죽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되살아난 일이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었다고 믿으십니까? 우리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실까요? 그렇다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진짜로 다 끝난 일이라는게 존재할까요?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여길만한 그런 상황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완전히 끝난 일이란, 완전히 절망스러운 상황이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부르시면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드셨던 그 능력있는 말씀으로 명하시면 나사로처럼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방식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처럼 간단할 수도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만큼 아주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다시 부르시기를 원하시고 또 다시 부르신다면 그 어떤 일도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그것만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삶도 우리 교회도 그렇게 바라봅니다. 특히 저 자신을 볼 때마다 참 실망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기력 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과 생각들은 다 부질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원하시면 나를 통해서 그 어떤 일이건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게 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곤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약한 교회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죽은 자를 산 자처럼 부르시고 다시 살리시는 우리 예수님이 계신데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를 다시 부르실 예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기만 한다면 그 분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지 못하실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판단해야 합니다. 보이는 무덤이나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그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 온 몸이 천에 감기고 또 싸인 채로 무덤에서 나온 나온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칭칭동인 베에서 풀려났고 그렇게 무덤에서 풀려났습니다. 그게 다 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죽음’ 그것도 사흘이나 죽은 완전한 죽음에서 풀려났습니다. 죽음만큼 인간을 단단히, 그리고 절망적으로 묶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죽음의 끈을 말씀 한 마디로 풀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죽음에서 풀려났습니다. 가장 큰 절망으로, 가장 큰 슬픔으로, 가장 큰 아픔으로 사람들을 묶는 죽음에서 풀려났습니다. 그 때 나사로만 풀려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죽음에 절망하였던 모든 사람들을이 풀려났습니다. 그들 모두를 단단히 묶고 있던 나사로의 죽음이라는 굵은 동아줄에서 풀려났습니다.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믿음이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뜻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을 죽음이라는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줄을 끊어버릴 수 있는 분으로 믿는 믿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신뢰할 때,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 부분은 비로소 자유를 얻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또 저렇게 우리를 묶고 있었던 끈이 풀려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 우리를 단단히 묶고 있었던 것들로 부터 풀려나고, 그 절망, 그 근심,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 믿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 믿음을 통해 우리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시려고 나사로를 살리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으면 우리들도 우리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부활의 능력이 나를 모든 슬픔과 절망,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입니다. 그 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맛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그 영광을 보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