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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2.09.09. 주일예배 - 복음의 시작이라(마가복음1)


막0101 - 복음의 시작이라.pdf


20120909SM (#1).mp3.zip




설교본문 : 마가복음 1장 1절



저는 대학시절에 무역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 무용을 전공했구나.”라고 나름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무용이 아니라 무역입니다. 외국과 물건을 사고파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무역학이 굉장히 잡다한 학문입니다. 경제, 경영, 무역, 회개, 수학... 아무튼 경제쪽에 속하는 것은 전부 다 배웁니다. 물론 깊이는 아니죠. 무역이 아닌 것은 개론적인 것만 슬쩍 슬쩍 배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경제학 개론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경제학 분야에 속하는 모든 것들의 기초이니까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중요한 경제학 개론들을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대학내내 제 성적이 어떠했겠습니까? 그야 말로 ‘기적의 점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입사원서를 내려면 B학점 이상이어야 하는데, B학점은 숫자로 하면 3.0점입니다. 그런제 제 졸업학점은 놀랍게도 3.01이었습니다. 입사원서를 낼 때, 면접관을 대할 때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르려고 합니다. 아마 다시 공부하라고 한다면 개론부터 철저하게 공부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마가복음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날입니다. 기대가 되시나요?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복음 자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제가 담임 목회를 하게 되면 꼭 복음부터 설교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생생한 복음을 만나려면 복음서가 최고이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왜 복음서 중에서도 이 마가복음을 주일오전 예배의 본문으로 택했느냐? 그것은 이 마가복음이 복음의 개론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장 1절은 우리말 성경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그러니까 이 부분은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구절로 된 책 제목인 셈입니다. 제가 마가복음이 복음의 개론서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시작’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사실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인데, 그 뜻들 중에는 개론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이 문장이 아니라 구절이고, 책의 제목이기 때문에 이 단어를 ‘시작’이라고 해석하면 문제가 조금 생깁니다. 그러면 마가복음 전체가 복음의 시작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에 대하여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복음에 대한 중요한 요점은 모두 담고 있습니다. 복음이 아니라 완전한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의 개론입니다. 개론서이기 때문에 간결합니다. 그러나, 모든 개론서들이 그렇듯이 그렇다고 해서 불충분한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앞으로 계속 믿음을 지키고 예수를 믿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과 이런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하는 방법, 그리고 그 복음을 진실로 믿고 사는 사람이 그 복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유익과 능력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예수를 믿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필수적인 것들이 여기, 이 마가복음 속에 죄다 들어있는 셈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좋은 성적 받고 싶으시죠? 그 분 앞에서 에이쁠의 영광을 누리고 싶으시죠?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여기 그것을 위한 확실한 개론서가 있습니다. 열심히 묵상하십시오. 열심히 들으십시오. 그리고, 마가복음을 공부하는 내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마가복음 설교를 들으면서 반드시 내 믿음의 기초를 더 확실하고 든든하게 하겠다. 그래서 하나님께 좋은 점수를 받겠다. 3.01이 아니라 최소한 4점은 받을 준비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함께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첫 날이니까 책 제목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목이라고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책 제목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책일수록 그 책 제목 속에 이미 그 책 전체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구절, 그러니까 원래 마가복음의 제목으로 쓰여진 이 부분에 이 책 전체에서 하려는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그만큼 중요하는 말씀입니다.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개론”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가복음은 개론입니다. 개론은 개론인데 무엇에 대한 개론입니까? 바로 복음의 개론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이 복음의 개론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실제로 마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미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말을 성경에서 처음 대했고, 그래서 성경에만 있는 말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저 기쁜 소식, 복된 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원래 이 복음이라는 말은 당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그렇지만 아주 특별한 일을 가리킬 때만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 중에는 로마를 로마되게 했던, 그래서 ‘로마의 평화’라는 말을 생겨나게 했던 아주 대단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역사에서는 이 황제만큼 훌륭한 왕은 없었던 셈이죠. 그런데, 복음이라나는 단어가 바로 후대의 역사가들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그런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말은 당시의 사람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말이면서도 이 세상의 역사, 적어도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역사쯤은 뒤흔들로 새롭게 뒤바꿀만큼 아주 놀랍고 좋은 사건을 말할 때만 사용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지금부터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바로 그런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놀랍고 획기적이며 심지어는 온 세상의 역사를 바꿀만한 그런 소식, 적어도 듣는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그런 소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저 그런 ‘복된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이 세상의 역사를 뒤바꿀만한 그런 어마 어마하게 좋은 소식입니다. 마가복음의 첫 절은 그런 의미에서 “그런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이 이미 일어났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역사를 바꿨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장 획기적이고 이 세상의 역사를 뒤바꿔버린 그런 놀라운 일이 이미 일어났다”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잘 안 느껴지시죠? 별로 와닿지 않으시죠? 그것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역사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일반적인 역사 말고 그 역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실제로는 진짜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 역사는 우리가 ‘구속사’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은밀하지만 거스를 수 없이 움직여 가시는 역사 말입니다. 사실 신앙의 견지에서 본다면, 이 구속사야 말로 진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복음은 온 세상을 온통 뒤집어 엎은 일에 대한 소식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들려지기 전에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죄를 완전히 용서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또 죄의 지배에서 풀려난 적도 없었으며, 그 결과에서 온전하게 자유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 결과가 죄책감이든,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입은 깊은 상처이든, 아니면 영원한 죽음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복음과 그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합니다. 이미 그 일이 일어났으며 그 길이 활짝 열렸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복음은 우리가 그 복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 단순히 그 복음을 듣고 믿으면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할 수 없는 그 일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일어났으니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며, 대단한 소식입니까? 세상에 모든 악한 것들과 문제들, 그리고 죽음과 멸망이 실은 죄 때문에 생겨났고 또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것이 끝날 수 있게 되었고, 또 끝날 것이라는 소식만큼 놀라운 소식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소식을 듣는 것은 815의 광복소식을 듣는 일보다 더 기쁘고 흥분되는 일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기쁜 소식, 이 복음을 들으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또 마가복음 설교를 들으면서 믿음으로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변화”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우리 삶에 일어날 수 없는, 우리 삶의 역사를 온통 뒤바꿔 놓을 그런 근본적으고 획기적인 변화 말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과거의 역사입니다. 과거의 좋지 않은 환경이나 그 환경이 주었던 상처들, 자신의 실패와 실수, 그리고 죄악들... 그리고 그런 것들 때문에 지금 당하고 있는 손해와 고통 그리고 후회와 죄책감, 분노 속에서 괴로워하지만 정작 그런 것들로 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다시 똑같은 죄를 범하고, 똑같은 실수를 하며, 다른 이들을 힘들고 아프게 하며, 자신을 다치게 하며 자기가 사는 세상에 흠집을 내며 그렇게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떠올리는 과거의 역사는 과연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과거 때문에 지금 고통을 당하며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과거에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을 꺼려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제가 목사가 되어 성도들과 상담을 해 보고 또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과거의 환경이 가져다 준 영향, 죄와 실수, 그리고 실패... 이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아픔과 고통, 분노에 얽매이고 짓눌려서 속으로는 힘겹게 눈물흘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스스로는 결코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이런 것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말씀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복음을 알고 믿고는 있지만 온전히 그리고 풍성하게, 가장 깊은 곳까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입니다. 시작은 했는데 더 이상 나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도이면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복음을 참되고 온전하게 대면하고 그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그 복음에 순종해 간다면 그 사람의 역사는 분명히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상처, 열등감, 후회, 죄책감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죄들로 부터도 굉장히 많은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경험을 바꾸기 때문이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용서하고, 죄와의 고질적인 관계가 끝나게 합니다. 사탄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가 시작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과거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꿔 버립니다. 우리 속사람을 아얘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한 걸음에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이 시작되게 하고 또 계속되게 합니다. 복음이 그렇게 우리를 바꾸고 또 바뀌게 하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입장에서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볼 줄 알게 되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사는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우리 속에서 일으키는 사건이요 변화입니다. 성도 여러분, 앞으로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또 설교를 들으면서 바로 이런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믿고, 이런 변화를 기대하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과 영혼의 역사를 바꾸는 그런 은혜를 간구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복음의 그런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 복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복음은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복음인데 그 복음의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세상의 역사, 나라의 역사, 개인의 역사를 온통 뒤바꿔 버릴 그런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들으면 그 전체를 하나의 이름으로 생각하지만 이 말의 원래 의미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약속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그 분의 신분과 위치를 일컫는 말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그리스도, 그러니까 메시아는 일반적으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시기로 되어 있는 왕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온 세상을 다스릴 왕중의 왕이신 분을 가리키는 아주 특별한 말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마가복음이 진짜로 전하고 싶어하는 이야기, 복음 중의 복음은 바로 “예수님이 바로 그 그리스도시다, 바로 오기로 약속된 바로 그 왕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고, 믿게 해 주고 또 거기에 제대로 반응하게 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바로 마가복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펴보면, 한 나라나 사회, 교회, 심지어 가정에 이르기까지 그 곳이 어떤 곳이 되느냐는 지도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가 리더냐, 누가 다스리느냐,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거기 속한 사람들 전체의 행복과 불행, 심지어는 운명까지도 좌우될 수 있습니다. 왕은, 지도자는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이 복음이 되는 이유, 온 세상을 뒤집어 엎을만큼 놀랍도록 복된 소식이 되는 이유는 복음이 이 세상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아닌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요 주인이시라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온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전지하시며 전능하십니다. 게다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스스로 사람이 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 하나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만약 이 중에서 하나라도 갖추진 못한 존재라면 그가 왕이 되었다는 것이 전혀 그런 복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누군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선하지 않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하기도 끔찍하죠. 또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전지하고 전능하며 선하기도 한데, 우리에게 선하게 행하실만큼 만큼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지극히 선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을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제가 앞으로도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다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고, 행복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런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셨으며, 왕으로 행하셨으며 이미 십자가를 통해 죄를 깨뜨리시고 그 왕위에 앉으셨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그 소식을 듣고 믿고 또 그 분의 다스리심에 순종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그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어떻게 변해가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돌에 맞아 죽고, 톱으로 켬을 당하면서도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이 증거가 되어 전체 인구의 단 2퍼센트 밖에 안되는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체를 삼켜버폈습니다. 마치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누룩이 가루 서말을 전부 발효시켜 온통 제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 예수님이 왕이시며 예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갔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영광스러운 복음이 왜 복음인지, 아니 왜 복음일 수 밖에 없는지를 가장 박진감 넘치게 전해주는 마가복음의 첫 구절을  함께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첫 구절을 말입니다. 복음은 그 역사가 어떤 역사든지, 우주의 역사든지, 한 나라나, 혹은 개인의 역사든지 믿기만 한다면, 제대로 믿고 순종하기만 한다면 온통 뒤집어 엎어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것으로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이 땅에 왕 중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전하신 예수님 자신에 대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최고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귀에 바로 이 소식, 이렇게 복된 소식이 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첫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해서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제 가슴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동안 보여주신 복음의 영광이 넘치도록 충만한데, 제 언어가 부족해서, 또 표현력이 부족해서, 아직 미숙해서 마음에 있는 것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해 달라고, 성령님께서 직접 보여주시라고 말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가 마가로 부터 진지한 태도로 복음을 듣고자 한다면 우리가 마가복음을 마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하나 하나의 구절 속에서 빛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면하게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복음의 영광을 새겨주시고, 그래서 복음을 사랑하며 복음의 능력으로 새롭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부족해서 제대로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복음의 빛나는 영광을 보여주시고, 그래서 복음이 일으키는 혁명이, 참되고도 확실한 영적 부흥이 우리의 영혼 속에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는, 여러분이 마가복음 설교를 듣기 전에는 꼭 그렇게 기도하시기 예배드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긴 여정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인도하셔서 그 여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복음으로 다시 빚어지게 하시고, 또 주님의 온전한 다스림 가운데 거하는 가장 행복한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의 기초 위에 든든한 신앙와 인생의 기초를 세우는 복을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