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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09.11.새벽 - 예수를 따르거늘 1(요한복음 7)



요0135to42 - 예수를 따르거늘.pdf


      


      설교본문 : 요한복음 1장 35-42절


      하나 하나의 교회에도 다 역사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 교회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다 개인의 신앙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일은 때로는 굉장히 은혜롭고 흥분되며 또 큰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을 때, 우리를 참 놀라게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를 믿게 된 이유와 계기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정말 자연스럽게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4학년 때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저 교회에 가고 싶어서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별 생각없이 말이빈다. 그랬는데 그랬던 내가 어떻게 지금 목사가 되어 이렇게 한 교회를 돌보는 목회자가 되어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제가 잘 아는 어느 분은 아주 불교에 심취해서 포교사, 그러니까 불교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분은 그 준비를 위해 매일 새벽에 천일불공을 드리러 사찰고 가곤 했는데, 시골에 사셨기 때문에 징검다리로 시내를 건너야 사찰에 갈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1000일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징검다리를 건너려고 했는데, 그 시내 건너에서 동자승이 호랑이를 타고 휙휙 날아다니더랍니다. 그게 너무 무서워서 시내를 건너지 못했는데 결국에는 그 길로 불교믿는 것을 그만두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정말 제가 존경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해서 예수를 믿는 그런 분이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여러분 나름대로의 신앙 역사가 있으실 것이고, 서로 예수를 믿게 된 계기를 들어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요한복음이 전해주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던 처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틀 전에 예수님께 세례를 주고 그 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세례 요한이 멀리서 천천히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그 분을 소개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자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 둘이 예수님을 쫓아갑니다. 예수님을 따라잡은 그 둘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랍비여 어디계십니까?” 아마도 당장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만 알아놓고, 나중에 그 곳으로 찾아가려고 한 것 같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은 그렇게 거처를 정해놓고 거기 찾아온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계신 곳을 말씀해 주시는 대신, 아주 짧고 강렬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와서 보라!” 두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곳으로 갔고 거기 함께 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그런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다른 아닌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시베드로의 형제인 베드로의 형제였습니다. 곧 이어 안드레는 자기 형제인 베드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물론 안드레가 이 말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말하고 그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자 마자 그가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름까지 바꿔 주셨습니다. 물론 그 이름은 미래에 그의 이름이 될 것이지만 말입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이렇게 보면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만 다양한 통로를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두 제자 그러니까 안드레와 또 한 사람은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 요한의 한 마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갔다가가 그 길로 “와서 보라”는 말씀 한 마디를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동생을 잘 둔 턱에 그저 끌려와서 예수님을 한 번 만났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내일 살펴보게 될 두 사람도 이 세 사람들과는 또 다르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다양한 부르심의 방법과 과정을 통해 그렇게 제자되는 일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제자됨은 제자가 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제자들은 12제자를 말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그 제자와 는 다른 성도나 신자로 생각하는 것이죠. 마치 이 세 이름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도에 따라 세 계급으로 등분된 것처럼 여깁니다. 제자 다음에 성도, 성도 다음에 신자 이런 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구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면에서 보면 모두가 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살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제자를 삼으라고 했지 다른 부탁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들은 다 제자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우리들은 다 누구입니까? 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제자들에게 요구되었던 일들은 우리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고, 그 옛날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변화는 우리들에게도 일어나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이런 저런 경로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따랐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일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저 예수님이 가시는 대로 뒤 따르며 가자고 하시는 대로 가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기본입니다. 스승되신 예수님이 가는 길을 따르지 않거나, 그 분이 가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고, 그 분의 지시를 직접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고, 그 분이 보내주신 그 분과 같은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씀의 원리에 우리의 삶을 맞추어 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소욕에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그렇게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그 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완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포기하지 않고 애는 써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포기하지 않고 그 두 가지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것 말입니다. 그 애씀만이 우리를 제자다운 제자가 되게 해 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삶에 진짜로 일어나게 해 주고 싶어하시는 변화, 진짜로 안겨 주고 싶어하시는 선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바꿔주시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미 베드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베드르는 게바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둘 다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아직 그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시몬이라는 이름만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이름을 게바로 바꿔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대뜸 그의 이름을 바꿔 주신 것일까요? 원래 성경에서 이름을 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속속들이 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이름을 안다고 하면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안다는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름을 아시고 그 분이 그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이제부터는 내가 알고 있는 지금까지의 너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다른 존재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이전에는 그저 하루 하루 그 날 그 날 먹고 살 것만을 궁리하면서 살아갔던 땅에 묶여 있던 너 였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너를 부르는 그 부름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이름을 바꿔주시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우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시몬은 게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시몬이 아니라 게바로 살아가야 합니다. 반석다워져 가며 반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존재,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목적을 위해 살아가야만 합니다. 새 이름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달라졌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르게 살아가는 삶으로 부름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시려는 변화, 그리고 우리에게 진실로 주시고 싶어하시는 선물은 바로 우리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 시몬이 변하여 게바가 되는 것, 내 이익이 아니라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내가 예수님을 따르도록 그 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과 이제는 그래서 새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가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게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말씀과 성령님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내 속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도라는, 제자라는 이 영광스러운 새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요한복음을 함께 묵상하는 동안 빛되신 하나님, 생명되신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우리 삶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오늘 하루치의 시간만큼 우리를 더 우리의 새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