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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09.21. 새벽 -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요한복음 15)


20120921D.mp3.zip


요02023to25 -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pdf




성경본문 : 요한복음 2장 23-25절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선행의 종교도 아니고 득도의 종교도 아닙니다. 물론 선한 행위와 깨달음을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의 중심, 그러니까 예수를 믿음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질문 속에 답이 들어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또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뿐만이 아닙니다. 복음서들은 모두 과연 예수님은 누구신가? 또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조금씩 각도를 달리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유월절 기간동안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사건을 지켜보았고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일이 그들에게는 일종의 표지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일, 가장 바람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하시려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거리를 두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드디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을 발견하셨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을 멀리하신다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믿음 속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24절과 25절은 왜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셨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이것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을 발견하시고도 그 분이 전혀 기뻐하실 수 없으셨고, 그들을 믿거나 혹은 그들의 어떤 증언도 들으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믿음을 표현하는 사람을 아시고, 또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 속에,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이 그들이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큰 믿음, 굳건한 믿음, 능력있는 믿음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나서는 나의 믿음을 큰 믿음이 되고, 견고한 믿음이 되고, 또 능력있는 믿음이 되게 하려고 애씁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큰 믿음이 되어야 하고 견고하고 능력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을 생각할 때, 처음 생각하고 또 처음 챙겨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선 챙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믿음 속에, 그 믿음을 가지고 있고 또 고백하는 내 속에, 그리고 내 마음과 생각 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속에 우리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변질시키고 방향을 틀어지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부터 처리하고 나서 그 다음에 믿음이 커지고 견고해 지고 능력있게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신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있다고 생각해도 전혀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 헤아리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또 고백할 때면 우리는 마음에 커다란 위로와 은혜를 느끼곤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마음과 생각까지 헤아리신다는 것은 정말 정말 은혜로운 사실인 동시에 또 굉장히 두렵고 무서운 사실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셨고, 또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하는 그 어떤 증언도 필요료 하지 않으셨던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내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시고 계십니까? 우리들은 정말 그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죠.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알든 알지 못하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걸 모르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근심과 한숨, 그리고 아픔들만 헤아리실 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들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비뚤어진 동기들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심각한 것일 때는 그 분이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하시고 또 위로하시며,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 하십니다. 우리는 이 양날의 칼과도 같은 까다로운 문제를 잘 해결해야 복된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이 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하면 우리 신앙의 유익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정답이 없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인정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됩니다. 이것이 이 까다롭고 예민한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또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우리가 어떤 동기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러니 숨기려 하지 말고 부인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악하면 악하다고, 틀렸으면 틀렸다, 욕심을 부렸으면 욕심을 부렸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정직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 욕심을 욕심으로 알아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죠.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모르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 내가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 내 욕심을 채워주실까요? 이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감추던 감추지 않던,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결과는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이 사실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로 편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뜻을 놓치는 일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를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나를 더 가까이 하시고 참으로 좋은 것을 주시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것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더 지혜로운 거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믿음에 내 생각, 내 욕심, 내 편견이 끼어들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끼어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때문에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도 다 놓쳐버리게 됩니다. 마치 참된 메시아를 눈앞에 놓고도 자신들의 인정하지 못한 욕심 때문에 그 메시아를 놓쳐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불쌍한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과 같은 믿음일 때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믿음일 때 하나님의 은혜를 흐르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은 정직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에 편안해 지시고 그저 그 분 앞에서 정직하려고 애쓰십시오. 그리고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닌 있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대로의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애쓰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로 믿는 그 믿음에 이를 수 있고, 그러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히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더 가까이 하시고, 우리의 삶을 그 분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되어서 그리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흐르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