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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05. 새벽예배 -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한복음 25)


요0427to30 -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pdf


20121005D (#1).mp3.zip




성경본문 : 요한복음 4장 27-30절


요즘에는 인기가 덜 하지만 한 때 권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헤비급 챔피언전을 지켜보는 일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큰 거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펀치를 주고 받고, 그러다가 어느 사이에 둘 중의 하나가 쿵 하고 넘어집니다. 다시 일어나기도 하고 그대로 경기가 끝나기도 합니다. 경기가 끝나게 되는 것은 한 쪽이 다른 쪽에게 결정적인 펀치를 얻어맞았을 때입니다. 그 때 넘어진 사람은 더 이상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경기가 끝나는 것이죠. 이렇게 경기를 끝나게 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얻어맞은 펀치이지만, 실은 그 펀치만으로 KO를 당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 이전에 맞는지도 모르고 얻어맞았던 잔 펀치, 그러니까 잽이 계속해서 충격을 쌓아간 것이고, 마지막 펀치는 말 그대로 마지막 역할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권투에서는 경기에 이기려면 잽을 잘 날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설이 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드디어 결정적인 펀치를 얻어맞았습니다. “지금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바로 네가 말하는 그 메시아다” 그 동안 계속 잽을 얻어맞아서 충격이 누적되었던 여인은 이 결정타를 견뎌낼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가지고 왔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동네사람들에게 소리칩니다. “내가 한 일들을 나에게 말한 사람을 와서 한 번 만나 보세요. 저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별다른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소리친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동네에서 나와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종종 진짜 목적, 가장 큰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동안에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던 작은 목적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아서 심지어는 아얘 잊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는 물동이를 들고 물을 길으러 왔었습니다. 아마도 하루나 이틀 동안 갈증을 해결해 줄 양의 물을 가져가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우물가에서 정말 뜻 밖의 횡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그 속에서 영원히 솓아나는 샘물을 선물로 받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 육체적인 목마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그 영혼을 만족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만족이 그 여인이 자신의 물동이를 버려두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물동이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다가갔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라리아인들 조차도 지극히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번이나 남편을 갈아치운 여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도 이 여인을 피했고, 여인은 사람들을 더더욱 피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정오에 혼자서 물을 길으러 나와야만 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는 마을로 달려들어 갑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을 붙들고 말을 겁니다. 정말 극적인 변화입니다. 주님의 표현대로 표범의 무늬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놀랍고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이제 여인은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으니 나와 함께 가서 그 메시야를 만나야 한다고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아마 그 여인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는 것을 기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욕을 먹던 여인이 이제는 복음을, 가장 복된 소식을, 메시야가 왔음을 알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인에게 귀를 기울이며 그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여인의 급격한 변화가 메시야를 만났다는 확신과 기쁨이 사람들을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별 말 하지 않았지만 그 여인의 말에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참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변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복음을 믿으면 우리 삶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 속사람을 완전히 바꾸고 완전히 사로잡아 버리기 때문에 우리 속에서 이런 변화를 일으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던 유일한 도구를 그렇게 버렸습니다. 정오의 뙈약볕에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항상 들고 다니던 물동이는 그녀에게 더 이상 필요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물동이와 함께 자신이 언제나 파고 있던 터진 웅덩이였던 남편도 함께 버렸습니다. 적어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의미의 남편은 물동이처럼 필요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첫번째로 하는 일은 이렇게 어떤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제 참으로 만족을 줄 수 있는 것, 참으로 영혼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예전에 그것을 위해서 스스로를 묶어 놓았던 것들로 부터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변화가 그의 삶에서 천천히라도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물을 뿜기 시작한 샘물이 점점 더 거센 물줄기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피하던 사람들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두려워하던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그 죄로 인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비난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될 수 있는대로 사람들을 피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두려워하는 것은 나타날까봐 두려워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사라질까봐 두려워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인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여인을 비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도저히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두려워하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그 태도가 180도로 바뀝니다. 사람들에게로 다가갑니다. 그것도 뛰어서 갑니다. 이것은 여인이 더 이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사람들에게 원하던 것을 예수님에게서 모두 얻었으며, 그것을 전하는 일을 자신이 욕을 먹는 일보다도 더 크고 중요한 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 덕분에 그 영혼 속에 마르지 않는 샘물 하나를 가지게 된 여인으로서는 다른 곳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으니 마음껏 다가갈 수 있고, 이미 만족이 있으니 그들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 여인은 복음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자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목마른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복음을 만나면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 대신 사람들에게 마음껏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자기 속에 있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에서 생수를 길어 나눠주는 그런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자유롭고 그렇게 넉넉한 사람이 됩니다. 

여인은 자기에게 있는 샘근원을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을 갖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여인은 자기를 피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피해다녔던 그 사람들에게로 갔습니다. 여인에게 과거의 상처는, 수치와 열등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여인에게는 자신이 만난 메시아를 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욕먹고 비난당하며 살던 여인이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나쁜 소문만 퍼뜨리던 여인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인의 뒤를 따라 예수님께로 나옵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놀라운 변화, 이것보다 아름다운 변화 그리고 이것보다 행복한 변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 복음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 누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한 사람을 이렇게 놀랍게 변신키실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변화는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 앞에 앉아있는 복음에 무릎을 꿇었을 때, 그 복음에 완전히 케이오를 당했을 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되 그 분께 완전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더 이상 버티지 말고 그 분께 케이오패를 당하고 나의 패배를 그 분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우리 삶을 굴복하게 될 때, 그제서야 복음은 우리를 참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뙈약볕에 물동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그 사람들에게 매여있지 않아도 됩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 피해의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장 복된 소식을 전하는 당당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킬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기고, 이 세상을 이기는 자유롭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행복해진 사마리아 여인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 짐으로써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오늘의 사마리아 여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루라도 빨리 주님께 완전히 굴복할 수 있는 그런 복을 허락해 주셔서 우리도 우리 자신과 세상으로 넘어서는 참 자유를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