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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2.05. 새벽예배 - 주를 기뻐하리이다(대강절 셋째날)


시5 -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pdf


20121205D (#1).mp3.zip


   


    본문 : 시편 5편


오늘도 우리는 대강절 셋째 날을 맞이하여 새벽예배에 나왔습니다. 이런 특별한 절기에 그것도 새벽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마음 가득히 기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새벽은 참 좋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 새벽만큼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고 그만큼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되니까 말입니다. 저는 이 새벽예배를 인도하면서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유익을 누리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실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내면적이고 영적인 싸움이 굉장히 격렬해 졌는데요. 새벽에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굉장히 많은 부분 큰 지장없이 다스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 새벽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굉장히 힘들게 목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의 시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시편은 아마도 처음에는 다윗이 지었지만 나중에는 아침번제를 드릴 때,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성도들이 함께 부른 노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새벽예배를 드리러 나오면서 항상 함께 외우고 또 부르는 처음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내면적인 갈등과 욕심, 그리고 외부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과 경건한 삶을 지켜려고 애썼던 다윗과 다윗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그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5편을 전체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이런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시작되었던 기도가 11절과 12절에 가서는 크고 영원한 기쁨에 확신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처음의 탄식과 갈등은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하여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그런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만약 우리가 시편 5편의 안내를 따라 그 기도를 배울 수 있고 그래서 아침마다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들의 하루 하루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참된 기쁨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그 옛날 성전에서 다윗에게 베풀어 주셨던 그 은혜를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다윗은 어려움 때문에 생겨난 자신의 어려운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고 그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러냈습니다. 1-3절까지가 그 내용인데요, 거기서 다윗은 내가 기도할테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야만 한다는 간청을 최소한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다윗이 겪었던 것같은 유혹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들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도 내 기도를 들어달라고, 들어주셔야만 한다고, 들어주실 줄로 알고 기도하겠다고 탄식하며 간청하는 간청, 마음을 쏟아놓는 탄식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온전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래서 얼마나 쉽게 넘어지며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고 또 어려움 앞에서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의 출발점은 나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더욱 절실하게 의지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곳이 우리 기도가 시작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투명하게 나아갈 수 있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가난하고 낮은 마음으로 나가아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시작한 다윗은 곧바로 악인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고, 그 하나님은 그런 악인을 어떻게 대우하시는지를 떠올리며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서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들을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악한 세상에서 그 악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살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가치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기 위해서 고민하며 싸우는 믿음의 싸움이야 말로 우리를 악한 사람들과 악한 세상과 구별시켜주는 표지이며,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을  그들과는 다른 관계에 서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악과 타협하며 세상을 닮아가고 싶은 강한 유혹이 생겨나고, 그런 유혹을 거절하느라 마음의 갈등과 고통이 생겨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악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그래서 악한 자들은 결코 그 분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삶이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하고, 항상 그 분께로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거듭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떠올려야 하며, 거듭해서 그 분 앞에서의 악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악한 유혹을 받아들이고 악인들과 닮으려고 하는 내면의 유혹과 더불어 악인들이 주는 핍박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다음 생각하며 고백해야 할 기도의 내용은 이제 그렇다면 죄의 유혹과 협박, 때로는 핍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사람은,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특권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인이 그런 불쌍한 처지에 있게 된다면, 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7절은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이것은 마치 악인들과 나는 종자부터 다른 사람이고 그래서 나는 완전하다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이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도는 결코 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 자신을 죄로부터 지켜내려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이 특별한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의지해서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다짐, 악인이 되어서 이 소중한 복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은혜야 말로 경건한 자들의 특권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때로는 실수도 있고 죄를 범하기도 해도 그 넉넉한 사랑으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여전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는 은혜는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려고 하는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그리고 그것을 위한 결단의 기도를 드리게 될 때, 우리는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려는 의지를 얻을 수 있게 되고, 또 그 일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이것이 거룩하게 살아가려는 성도가 마지막으로는 도달해야할 가장 중요한 기도의 결론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보호와 영원한 상급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들에게 특별한 보호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할만한 시험 밖에는 내시지 않고 시험을 주실 때에는 그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도들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당하는 시험과 유혹, 의를 위해 감수하는 불이익과 불편함들이 모두 그런 시험들이라는 사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 가운데서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것들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운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기쁨이라는 상급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 확신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 줍니다. 


제가 마음에 시험이 찾아올 때나 믿음의 싸움이 격렬해 질 때, 항상 기억해 내고 묵상하는 너무 너무 사랑하는 말씀이 있는데요. 그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는 히브리서 12장 2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도 그러셨듯이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항상 감당해야 할 거룩한 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짐은 아무런 유익이 없이 지고 가야만 하는 짐이 아닙니다. 그 짐은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닮아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억지춘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가장 큰 기쁨과 영광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짐들도 똑같습니다. 그 짐을 믿음으로 기꺼이 지고 갈 때, 우리들도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시는 삶의 특별한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삶의 무게가 무거워 질 때마다 정직하게 마음을 쏟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기억하시며 기도하시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주시는 넉넉한 사랑에 의지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늘에서 누리고 계시는 그 기쁜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기쁜 영광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시며 인내 하셔서 풍성한 사랑과 은혜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입니다. 우리 속에 영원한 기쁨에 대한 소망을 회복해 주시고, 예수님처럼 그 기쁨을 소망하고 확신하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또 그 길을 가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넉넉한 사랑과 강력한 보호하심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