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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2.12.14. 금요기도회 -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기도 6)

삼상0304to15 -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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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 3장 5-15절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큰 실수를 제외하면 그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를 다스렸던,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크고 강대한 나라를 이루었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솔로몬은  그저 아버지가 왕이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고, 아버지가 크고 강대한 나라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크고 강대한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마치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와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앞선 지도자가 위대한 지도자라고 뒤따르는 지도자가 저절로 위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앞선 지도자가 너무 훌륭하면 뒤따르는 사람은 더 힘들고 주눅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렵구요. 비단 훌륭한 지도자의 후계자만 이런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누군가를 이끄는 책임을 맡게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책임감의 크기에 따라서 느껴지는 부담의 크기도 다르겠지만 어떤 분야에서건 다른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크건 작건 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준비를 하려고 오늘 성경말씀을 연구하다가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기도가 제가 요즘 드리는 기도와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그래서 제 기도가 훌륭한 기도고 또 좋은 기도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아, 그렇구나. 그 때 솔로몬의 상황과 지금 내 상황이 많이 닮아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비슷하니 기도도 비슷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저도 솔로몬처럼 갑자기 책임을 맡게된 상황, 어찌보면 그 책임에 적응해야 하지만 아직은 적응이 덜 된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 게다가 그 책임에 비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함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황 속에 있고 그래서 솔로몬과 비슷한 마음으로 기도하니 비슷한 기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어느 때보다 이 기도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와 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기도와 하나님 앞에서의 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방향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 마자 기브온 산당으로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숫자에 집중해서 이 번제를 대단하다고 평가하지만 저는 이 1000이라는 숫자는 당시 솔로몬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왕이 되자 마자 나랏일을 재쳐놓고 하나님께 천 번의 제사를 드렸다? 물론 그런 행동은 솔로몬이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솔로몬이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다급하게 그리고 무겁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사십일이다, 백일이다 날짜를 정해놓고 새벽기도를 시작하는 그런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갑자기 그렇게 하나요? 뭔가 절박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그런 문제 말입니다. 솔로몬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날 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대뜸 “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용돈 달라고 어렵게 찾아온 아들에게 “말해 봐! 뭐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마음좋은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줄테니 말해보라고 하십니다. 솔로몬은 백지수표를 얻은 것이죠. 하나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나오셨으니 솔로몬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 다윗이 그랬듯이 빙 둘러서 갑니다. 솔로몬이 꺼내는 이야기는 아버지 다윗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요점은 아버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크고 변함없는 은혜 덕분에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고, 이제 그 은혜 가운데서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솔로몬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에게 베풀어 주셨던 변함없고 풍성한 은혜, 과분한 은혜를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은혜를 요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왕이 되게 해 주신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왕의 일을 제대로 하는 일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왕이 되었다고 갑자가 왕다워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왕답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께 그런 간절함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왕이 되겠다고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들이 솔로몬과 같은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도록 기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왕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왕다워지는 것이 진짜로 중요하다는 깨달음 말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크기에 비해서 자신이 맡은 책임이 너무 막중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그 무엇보다도 왕으로서의 분별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분별력을 구합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구하는 것은 재판을 위한 분별력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의미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이 다름아니라 이스라엘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게 왕의 직무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보고 또 배워야할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지도자를 선택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도자가 어떤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실까요? 나라를 부자나라로 만들 지도자일까요? 강한 나라로 만들 지도자일까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솔로몬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지도자는 나라를 부자로 만들 지도자도,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지도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기준으로만 지도자를 세우려고 한다면 아마 그것 때문에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나라를 정의롭고 공평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진실로 아는 사람, 그래서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애쓸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고 싶어 하십니다. 말만이 아니라 진짜로 그럴 의사와 의지가 있는 사람 말입니다. 물론 그 일을 완전하게 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라도 우리의 성향이나 이익을 접고 그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질을 보아야 하겠죠. 그래야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나라를 강하게 해 주시던, 부자가 되게 해 주시던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이스라엘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는 책임이 맡겨졌지만, 그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별력을 달라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얼핏 보면 잘 들어야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릴 수 있으니 경청할 수 있는 능력, 공평무사하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는 것같지만 여기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란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들을 수 있는 마음’이란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거기 순종할 수 있는 겸손하면서도 단호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른 분별력과 그 분별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쏟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분별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을 위해서나, 혹은 교회를 위해서나 우리가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이 되려면 우리는 우리의 분별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열심과 열정이 우리를 잘못 인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별력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고 거기 순종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여기 이 성경을 제대로 깨닫고 그 말씀을 정직하게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소명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뭐가 필요해? 다 말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조건이 없었습니다. 이런 건 되지만 저런 건 안된다는 단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단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다스리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님의 율법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분별력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잔뜩 낮추고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라면 사내가 욕심이 그것 밖에 안되느냐고, 왕이 되어서 야망이 그것 밖에 안되느냐고 나무랐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 말씀을 듣고 무지 무지 기뻐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정말로 기다리던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나 성품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구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다고 해서 그게 정말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신 것인지는 한 번 더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뭔가 진짜 우리가 구했으면 하는 것을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기쁘셔서 또 흥분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여유가 있습니다. 피조물 때문에도 이렇게 흥분할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께 정말 매력을 느낍니다. 더 끌립니다. 하나님은 흥분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정말 이거만 달라고 한 거 맞지? 넌 오래 오래 살면서 왕노릇하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네 정적들을 제거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어. 그저 내가 너에게 맡긴 백성들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만 겸손하게 구했지. 야! 너 정말 대단하다. 그래! 내가 네 말대로 너에게 지혜를 준다. 그것도 최고의 지혜를 팍팍 준다. 너 같이 지혜로운 왕은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거야. 또 하나 뽀나스! 네가 구하지 않은 것도 준다. 지혜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너를 따라갈 왕이 없을거야!” 하나님께서는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솔로몬에게 막 퍼주십니다. 달라는 것도 최고의 것으로 주셨을 뿐 아니라, 달라고 하지 않은 것까지 마구 부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어떻게 지키셨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약속 그대로 ‘지혜’하면 솔로몬이고 ‘부귀’하면 솔로몬일 정도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해 주셨던 어떤 약속과 굉장히 많이 닮아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약속이 약속을 주시기 전에 미리 이루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어떤 약속이죠? 정말 유명한 약속인데요? 힌트 좀 드릴까요? 첫째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둘째 산상수훈에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여깁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약속을 주시기 전에 이미 이렇게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게 그 분의 성품이고 그게 그 분의 마음이니까요. 솔로몬은 먼저 구해야할 것을 먼저 구했습니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는데 꼭 필요한 ‘듣는 마음’을 구했고, ‘분별력’을 구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 것이죠. 그랬더니, 너무 너무 기쁘셔서 ‘그 모든 것’ 그러니까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그 모든 것을 더해주셨습니다. 그것도 팍팍 더해주셨습니다. 


요근래에 이르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는게 점점 힘겨워 지고 있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상황은 우리나라만 잘 하고, 나만 잘한다고 잘 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온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이제는 남의 나라 일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저기 유럽의 아이슬랜드가 어려워지면 그 어려움이 곧바로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지만 예전의 좋은 시절은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일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약삭빠르게 자기 몫을 챙기는 요령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방법들은 이미 실패한 방법입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살아서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이니까요. 또 그런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만 할 것입니다. 저는 세계화다, 무한경쟁이다 할 때부터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약속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제 솔로몬이라는 약속보다도 먼저 보여주신 증거도 있고, 보증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구하라고 하신 것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먼저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먼저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기도와 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신 기도한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응답받는 기도의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가 되길 원하십니까? 내가 기도드린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기대치 않게 응답받는 그런 기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의 필요를 구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내용으로 삼아서 기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시고 그것을 위해서 먼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은 그 다음에 구하시구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한 것은 물론이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서 챙겨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솔로몬의 기도를 함께 묵상하면서 배워야할 천국 백성의 풍성한 삶의 방식이고 또 기도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미 이렇게 하고 계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보니, 그렇게 기도하면서 살아보니 괜챦죠? 안 그랬을 때하고 비교해서 별로 손해가 없고 오히려 더 풍성하죠? 계속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삶의 필요를 챙겨주시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꼭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드리며 사는 삶의 넉넉함과 이 쏠쏠한 재미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겸손한 자로, 하나님 앞의 작은 아이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삶의 작은 필요들 보다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자가 될 때, 우리의 삶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더하시는 것들로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넉넉함을 경험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서 이런 기도 속에 들어있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넉넉히 더하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