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216to25 -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pdf
본문 : 예레미야 32장 16-25절
바벨론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번 공격은 그야말로 결정타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끝장난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번 일이 더 절망적이었던 이유는 이번 공격은 고집불통인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징계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자포자기하게 되기 쉽습니다. 믿음을 달아보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범죄 때문에 당하는 징계이니까요.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이런 상황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였고 그 어려움은 그것이 아무리 크고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그저 아버지가 자녀에게 내리는 징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예레미야의 기도는 우리들의 기도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개 기도하면 무언가를 구하는 것을 생각하고 또 그렇게 기도를 드리는데, 예레미야의 오늘 기도는 그저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당시 상황에 대한 보고로만 끝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이 말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는 하고자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 엄청난 능력으로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 고백하는데,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변함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동시에 뻔뻔한 죄악에 대해서는 결코 눈감지 않으시며 벌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도 사용하시지만 때로는 자녀들을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그 능력을 사용하실 때는 그 능력이 우리에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반대로 징계를 위해 사용하실 때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고 놀라운 만큼 아프고 힘겨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친구들 중에 보면 특별히 손이 큰 아이들이 있었는데, 손이 마치 솥뚜껑같죠. 그 손으로 과자를 나눠줄 때면 신이나지만 반대로 장난으로라도 등짝을 한 대 얻어맞으면 정말 엄청나게 아픕니다. 다른 아이들의 손과는 비교가 안되죠.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신 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손을 살짝 가져다 대기만 하셔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결과가 미칩니다. 엄청난 복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두려움이 신앙의 주된 동기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없이 좋으신 하나님은 한없이 두려운 분이시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잘 잡아야 우리 신앙이 건강하고 은혜로 충만해질 수 있으며, 또 겸손하고 진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어찌보면 정반대가 되는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성품, 그러니까 한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성품과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는 성품은 하나님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것이 하나도 없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되어 가나안까지 왔고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은 심각한 삐딱선을 탑니다. 23절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일단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 하나님의 뜻과는 담을 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께서 지금 예레미야가 그리고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그 모든 재앙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두 내리셨습니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은 완전히 초토화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주고 또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똑같은 손이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는 손이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데에는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불순종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최고의 상황에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오늘 기도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네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아주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한가지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갑자기 친척을 대신하여 친척의 땅을 사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제도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기업무르기’라는 제도입니다. 이것은 같은 혈족에 속한 다른 사람이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시 몫의 땅을 잃게 되면 가장 가까운 친척 중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위해서 대신 땅을 사 주는 제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그 가문에 주신 땅을 유지하는 제도였습니다. 평상시 같으면야 이런 행동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의 상황은 전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망하게 될텐데 그 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 땅을 대신 사고 증인들까지 분명히 세워두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당장 다른 나라에 빼앗길 땅을 그것도 친척을 대신해서 사라고 하셨고 또 증인까지 확실히 세워놓으라고 명하셨을까요? 바로 그런 일들 자체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증인들이 나중에 땅을 찾을 때 필요한 보증이었다면, 이 일 자체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보증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확실한 증거를 주신 것입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지금의 현실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증거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증거는 예레미야의 순종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전혀 쓸데 없어 보이는 일에 대한 순종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오늘 날의 교회이기 때문에 저는 이 구절들을 묵상하면서 자연히 우리 교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들을 세우시면서 안 되라고 그저 흐지 부지하라고 세우신 교회가 하나라도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크기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은혜충만하고 또 성령충만한, 그 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듯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면서 이 땅에 교회들을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 안에 목사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모으신 것도 우리에게 그렇게 풍성한 삶과 믿음의 능력을 누리며 나누며 살아가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든 교회가 그렇지 못합니다. 땅 위의 교회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땅의 교회들은 너무나 많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 같습니다. 교회는 성령충만하지 못하고 성도들은 믿음의 참된 능력과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이야기한 대로 하나님은 이 땅에 모든 교회들이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시며 세우셨고 지금도 거기 필요한 모든 은혜들을 베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들, 오늘날의 이스라엘인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제 멋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이 이렇게 은혜와 능력에 있어서 이렇게 궁핍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외형적인 부족함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 자체로는 결코 하나님의 징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궁핍하다는 것, 영적으로 무기력해져 있고 무감각해져 있으며 그러면서도 거기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렇게 바벨론의 포로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징계는 결코 끝이 아닙니다. 그 징계는 바른 자리, 풍성한 자리, 기쁘고 능력있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기를 원하시는 그 반응을 발견할 때, 그 징계의 손을 거두시고, 그 손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된 하늘의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절망적인 징계를 내리시고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이 질문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없습니다.”라는 대답 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뽑으려면 뽑으실 수 있고 또 언제든지 다시 심으실 수 있습니다. 이전보다 단단하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예레미야가 친척의 기업무를 자가 되었던 것은 바로 그 회복에 대한 증표였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지금 상태는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다른 교회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교회들은 항상 제 자리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 만큼 우리는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가나안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그렇게 제 자리로 돌아가는 첫 번째 발걸음을 옮기려고 합니다. 새로워지자는 것은 달라지자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 원래의 자리로 가자는 뜻입니다. 신앙에서 개혁이란 항상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예레미야의 순종을 보면서 어쩌면 그러한 순종이 제 자리로 돌아가 더 풍성하게 회복되어져야 하는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생각이 있고 취향이 있고 또 고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이런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게 맞는 것이라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된다면 ‘나’를 접고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게 순종입니다. 예레미야의 순종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더 은혜 충만해져야 할까요? 더 성령충만해지고 더 신실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는 것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습니다. 누가 뭐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시면서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참된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약속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거기 필요한 은혜도 함께 말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믿음의 순종입니다. 내 필요나, 내 판단이나, 내 취향을 접고 하나님께서 오라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 순종은 분명히 증표가 될 것입니다. 보증이 될 것입니다. 그 순종이야 말로 우리 교회에,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미리 취하는 느헤미야의 순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순종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회복된다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회복시키신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요 첫 열매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개인의 영적인 회복이 바로 우리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이치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들은 어떤 교회를 찾습니까? 좋은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면 사람만 그런가요? 아닙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를 맡길 좋은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가 사람들이 찾는 좋은 교회이고, 어떤 교회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믿고 맡길만한 좋은 교회일까요? 저는 이것 저것 모두 갖추어져 있는 교회가 반드시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것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뜨거운 영성이 있고, 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믿음의 순종이 있는 교회, 진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있는 교회는 외형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사람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공히 좋은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를 보내시고 사람들도 오고 싶어하는 그런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래서 우리 교회를 정말 잘 되는 교회로 만들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런 성도가 되어가야 하고 우리 교회가 먼저 그런 교회로 회복되어 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선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또 그런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편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 전능하신 팔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아보십시다. 우리에게 어떤 믿음의 순종을 원하시는지 깨닫기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십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과 겸손함을 준비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올 한해는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교회에 베풀어주실 회복의 은혜를 기대하며 예레미야를 닮은 순종의 씨를 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시편 126편을 함께 묵상하며 설교를 맺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 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시내들처럼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꿈이요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 이 약속을 믿고 순종의 씨앗을 뿌려서 기쁨으로, 꿈꾸는 것 같이 참되고 풍성한 영적인 회복의 열매를 거두어 들이는 우리 광현교회의 올 한 해, 그리고 모든 나나들이 되기를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1. 나에게 정말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믿음을 달라고. 믿어야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해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2. 올해 내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믿음의 순종이 무엇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고 순종의 결단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풍성한 은혜를 가로막는 것들, 떠날 것은 떠나고 버릴 것은 버리겠다고 기도드리겠습니다.
3. 우리 교회가 올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대한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한 해로 보내게 해 달라고. 서로 협력하며 격려하며 지치지 않고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믿음과 영혼을 위해서 투자하는 한 해가 되게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