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본문 : 마가복음 1장 1-8절
옛날에는 왕이 어느 지방으로 가게 되면, 먼저 그 지방에 왕이 행차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먼저 그 곳으로 가서 방을 붙이고 또 그 사실을 큰 소리로 외쳐 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곳의 사람들이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졌을 때에야 왕은 그렇게 준비된 길로 행차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시작하는 마가복음 또한 똑같은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기 전에 먼저 전령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령은 광야에서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라고 외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해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왕으로 오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 내용을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있는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은 이 구절 전부가 이사야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라’라는 부분은 이사야가 아니라 말라기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뒷 부분만이 이사야서의 말씀이죠. 마가가 이렇게 이야기한 것은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가 이사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대표자만 이야기한 것이죠. 그렇다면 대표자만 중요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 예언서의 첫번째 책이 무엇이죠? 이사야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책은요? 그렇습니다. 말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오시기로 한 왕이 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왕보다 앞서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와야 한다는 사실을 첫 선지자부터 마지막 선지자까지, 구약 역사 전체 기간을 통해 이야기되고 또 이야기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실 왕에 대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는 그런 전령이 나오면 그것은 진짜로 오셔야 할 왕이 오신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왕은 그냥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준비를 해야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된 그대로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록된 대로 왕의 길을 준비시키기 위한 전령이 왔습니다. 그 전령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대로 광야에서 이제 곧 기다리던 왕이 오신다고, 그러니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왕을 맞이해야할 사람들이 왕을 맞이할 길만 준비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가 알려주는 왕을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라는 것이 조금 이상합니다. 그것은 좋은 옷을 꾸며 입고 거리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왕에게 줄 그럴 듯한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나, 잔치를 벌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준비란 바로 ‘죄 사함을 맏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그것이 그 전령이 왕을 맞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준비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그 준비였습니다.
왜 이 왕은 자신을 맞이할 준비로 이렇게 까다롭고 껄끄러운 일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다른 왕처럼 그저 환호해 주는 척, 기뻐하는 척, 또 굉장히 존경해 주는 척 해주는 일로 만족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이 왕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아얘 왕을 바꾸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왕은 왕을 바꾸기를 요구했고 바로 그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 사람을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스스로의 왕노릇 했습니다. 또 그 왕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들을 왕 삼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진짜 왕을 제대로 맞이할 준비란 그렇게 왕 삼아 살고 있던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왕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왕을 바꾸라고, 왕으로 삼았던 것들을 버리고, 또 스스로 왕노릇하는 것을 떠나라고 밖에 달리 무엇을 요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왕을 왕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왕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아무리 껄끄러워도 또 이것이 기쁨보다는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었어도 왕은, 그리고 그 왕보다 앞서 온 전령은 그 준비를 갖추라고 요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왕을 만나는 순간이 그 왕을 맞이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왕에게 쫓겨나는 순간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다행히 그 전령의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왕으로 삼았던 것들,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물질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든 그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왕으로 삼아 살아가느라고 자기 삶에 생겨났던 수많은 악한 일들을 청산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나와 회개의 세례를 받은 왕의 참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이것이 왕을 맞이할 준비를 시켜놓고 그 사람들 앞에서 그 왕에 대해서 전해준 전령의 메시지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할 이유, 이제까지 왕으로 삼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이유가 들어있습니다. 그 준비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그 왕의 백성들은 왕의 영을 충만하게 부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정반대가 되는 두 가지가 한 곳에 섞여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물과 기름이 한 곳에 있다고 섞일 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님, 그러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죄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죄란 것은 사람의 의지에 기생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의지적으로 버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그 자리에서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의지를 가지고 그 죄를 떠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성령님께서 그 자리를 채우시지 않으신다면 그 사람은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고 맙니다. 왕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들을 왕으로 삼느라고 진짜 왕을 멀리하게 됩니다.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영을 우리 안에 주셔서, 우리가 그 영의 능력으로, 그 분의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떠나야할 죄를 떠나야만 합니다. 버려야 할 죄를 버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우리 왕의 영이 우리 안에 충만해질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 합니다.
이 겨울은 왕의 계절이고, 또 성령의 계절입니다. 회개의 계절이고 그래서 새로워지는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에 왕의 대로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전령의 힘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분이 오실 길을 평탄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 성탄은 영혼 가득한 성령충만의 기쁨과 만족 가운데 맞이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