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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2.19. 새벽예배 -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대강절 열 여섯번째 날)


마1102to14 -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pdf


20121219D (#1).mp3.zip




본문 : 마태복음 11장 2-14절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저는 가끔씩 ‘하나님이 진짜 계신가?’, ‘하늘나라는 정말 있는가?’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늘나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꼭 계셔야만 하기 때문에, 또 하늘나라가 꼭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가 저에게는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위해서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인생을 걸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갖힌 세례 요한. 이 사람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곱게 곱게 자라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적어도 고생을 하는 일은 피할 수 있고 고난은 당하지 않을 수 있었겠죠. 그러나 그는 왕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전령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좋은 음식, 좋은 옷, 편안한 거처와는 완전히 결별해야 했고, 지금은 그 결과로 헤롯 안티파스에게 잡혀서 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 그의 귀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오리이까?” 참 이상한 질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처음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이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고, 그리고 하늘이 열리는 것도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세례 요한이 어떻게 이렇게 믿음없어 보이는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런 확신도 없이 거기까지 달려갔던 것일까요? 그러나 이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한 질문이 아니라 이것이 세례 요한에게 그만큼 절실하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해주어라.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35장과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인데 이 구절들은 오실 메시야가 오시면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왕의 사자에 대한 말씀의 성취로 이 세상에 메시아의 전령으로 와서 전 인생을 헌신했던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야에 대한 말씀이 나를 통해 성취되고 있으니 이제는 안심하라고, 평안하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요한을 위한, 그리고 오늘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애정어린 충고를 덧붙여 주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확신하는 것만큼 세례 요한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중요한 문제인만큼 만약 여기에서 흔들리면 그만큼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지 못하게 하고,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방해물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아주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리 쉽지는 않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답을 가지고 돌아간 후,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극찬을 해 주십니다. 세례 요한에게 와서 이전의 모든 선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모든 선지자들보다 나은 자라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신 이유는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세례 요한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요한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조금은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나 덧붙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는데,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노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이 침략을 당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가 이 땅에 하늘나라를 가지고 오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부터 천국이 침략당하기 시작했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거의 대부분 완전히 거꾸로 이해되어온 구절 중 하나입니다. 사실 저도 이전에 이 구절을 설교하면서 정반대로 설교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 생각하니 참 부끄러운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 구절을 “그러니 천국을 싸우듯이 추구하자. 전쟁하듯이 열심히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서 힘쓰자”라고 설교했습니다. 메시지 자체는 아주 은혜롭죠. 그런데 주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알고보니 정반대였습니다. 그건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이 세상의 권력자들은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그런 가짜 천국이 아니라 진짜 천국을 이 세상에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가짜 천국에서 진짜 천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들의 천국 속에 살아갔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빼앗기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들의 천국이란 다름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돌리는 존경과 명예, 그리고 물질들이었이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천국으로 쳐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짜 천국을 가짜 천국으로 바꾸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천국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다시 자신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진짜 천국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천국의 선봉장인 세례 요한을 옥에 잡아넣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투옥을 이런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고, 진짜 하늘나라와 가짜 하늘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시작된 가짜 천국과 진짜 천국 사이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짜 천국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가짜 천국으로 사람들을 붙들고 있는 사탄은 결코 그들의 나라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계속 진짜 천국과 비슷한 가짜 천국을 만들어 자신들의 나라를 유지시켜줄 사람들을 현혹하여 그리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침략은 교회 안에서도, 그리고 성도 개인의 삶과 신앙 속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짜 천국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천국에 온전히 속하게 되면 가짜 천국의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 백성과 영토를 빼앗기는 것이니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유혹도 하고 협박도 하고 실제로 불이익도 당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 세상에, 그리고 성도들의 삶 속에 반복해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하늘나라는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가 우리 하나님의 영토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삶과 마음 속에 허락해 주신 하늘나라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그리고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하늘나라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조금씩 조금씩 사탄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 안에서는 이미 이런 일들이 심각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두 나라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어느 나라인지 구분하기가 힘든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나라를 지켜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나라, 우리에게 허락하신 진짜 하늘나라를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우리의 삶과 마음, 그리고 교회를 사탄에게 내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늘나라를 지켜내는 힘입니다. 하늘에서의 영광은 이 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천국을 잘 지켜낸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그렇게 사느라고 작은 자가 될지라도 인내하고 견디어 내었던 그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에 속해서 그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은 적어도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해 두어야만 하는, 마치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오실 메시야여야만 했던 문제만큼이나 절실한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절실함과 진지함이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하늘나라를 전투하듯이 빼앗으려고 한다면 우리들 또한 그 나라를 전투하듯이 지켜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짜 하늘나라를 빼앗기면 우리는 영원한 영광과 기쁨을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적어도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나에게서 진짜 하늘나라를 빼앗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사탄이 그런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시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진짜 하늘나라를 위한 절실함과 절박함이 회복되게 해 주시고, 그래서 그 나라를 위해서 정말 전쟁하듯이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를 하늘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사로 세워주시고, 그 싸움을 끝까지 싸우게 하셔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 모두가 하늘의 큰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