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본문 : 예레미야 33장 3절
신년특별기도회 첫날인 오늘 새벽에 함께 묵상할 본문은 ‘기도’하면 생각나는, 기도에 대해서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들 중의 하나인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입니다. 다 외우고 계시죠? 한 번 함께 외워보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다시 한 번 외워보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정말 울지 않으면 떡 하나 더 얻어먹지 못합니다. 울어야, 떼를 써야 마지 못해서라도 떡을 입에 넣어줍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얻을 보장도 없는데 줄 때까지 떼써보자 해서 떼써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정말 어마어마한 약속을 붙여 놓으셨습니다. 오늘 본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그리고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전에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이런 놀라운 약속을 미리 주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성도 여러분, 기도는 이미 보장받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도장을 찍으신 계약서에 우리의 도장을 찍어 보장된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그런 행동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정말 말씀 그대로 부르짖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그런 큰 일을 보여주시겠다는데, 그것을 믿는데 우리가 왜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기도해야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좋은 약속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상합니다. 왜 이 좋은 것을 말씀하시면서 명령을 하시는지 말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고 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도 그랬지만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키기는 해야하겠는데, 좀처럼 공부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명령하는 것입니다. “공부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명령가지고 들을 놈이면 이미 공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여 주어야 합니다. 바로 상입니다. “공부해. 그러면 용돈 줄께. 피자 사줄께.”이렇게 해야 비로소 슬슬 움직입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과 똑같죠? 그래서 주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중에 기도하지 않아도 될만큼 온전하고 풍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니께 기대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는 도저히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들도 놓치고 만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기도하라고 명령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냥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지 않을까봐 기도하면 받게될 상도 듬뿍 덧붙여서 말입니다. 만약 기도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향해서 “기도하라, 내게 부르짖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에 속한 모든 의무들이 그렇지만 기도 또한 그 누구를 위한 의무도 아닌 우리 자신들을 위한 의무입니다. 그것도 가장 복된 의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라고 명령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좋은 것들을 다 놓치게 되고 마니까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진실된 필요도 모르고, 그 필요를 채울 방법도 모르면서 무심하게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또 영적으로 너무 욕심이 없고 무감각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이 얼마나 좋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지낼 때도 많습니다. “기도하라, 부르짖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바로 그런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해서라도 기도하게 만드시고, 그래서 우리 삶을 참으로 복되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저는 때로 저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래서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그저 답답한 심정으로 기도를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힘들어 하는 진짜 이유가 떠오르고 게다가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저 힘들어서 부르짖은 것인데 그렇게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됩니다. 정말 ‘크고 은밀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응답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고 또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응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반드시 “크고 은밀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통해서 지금은 감추어져 있는 큰 일을 보여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기도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절실하게 찾는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에는 하나님의 놀라고 보장된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란 우리 눈 앞에 있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보물상자를 여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열쇠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 열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든, 그리고 어떤 종류의 것이든 이번 사주간 우리는 하나님의 이 복되고 위대한 약속을 붙들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그 약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기도회 기간을 통해서 정말 크고 은밀한 일을 보게 되는 그런 은혜를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형태로든 감춰 놓으셨던 가장 놀랍고 큰 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번 기도회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감추신 것을 드러내시는 그런 기도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